꿈속의 꿈

꿈속의 꿈

꿈속의 꿈


 


 


꿈속에서, 꿈에서 못 깨어나서 괴로워하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꿈이야. 이 꿈을 억지라도 깨어서 빨리 꿈밖의 현실 세계로 되돌아와야겠어”라고 용을 쓰다가 드디어 그 꿈을 깨는데 성공하여 소위 현실 세계라는 곳으로 되돌아와보니 그것마저 실제 현실이 아니라 꿈속이었다는 황당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 철석같이 믿었던 구분 짓는 꿈과 현실이라는 대조도 역시 꿈이 조작해 낸 허구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실제 세계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내가 아직도 예수가 안 믿어지는 것은 아직 때가 안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지요 목사님?” 이 분은 두 가지를 구분지어 대조시켜 놓고 있다. 즉 ‘예수 믿는 나’ 와 ‘예수 믿지 않는 나’를 나름대로 구분 짓는다. 어느 입장에서? 예수를 안 믿고 있다고 자부하는 본인의 기준에 입각해서 구분 짓는다. 과연 이 질문이 합당한 질문인가?


 


도리어 이 분에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예수 믿는 나’와 ‘예수 믿지 않는 나’가 어떤 차이가 나는지 경험해 보시고 이런 구분을 하셨는지 하는 바이다. 예수 믿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자아가 과연 예수 믿는 자아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을까? 이 분이 짐작하는 ‘예수 믿는 상태’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 믿지 않는 나’를 근거로 만들어내었기에 충분히 망상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궁금했던 것이 이 질의자께서 염두에 두고 있는 ‘예수 믿는 자’의 모델을 어디서 가져왔느냐 하는 점이다.


 


마치 여전히 꿈속에 꿈을 꾸고 있으면서 그 안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셈이다. 어떤 시나리오? “나는 지금 가위눌려서. 빨리 이 답답한 꿈에서 깨어나야 제대로 현실 속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니 억지로라도 이 꿈에서 벗어나야 돼”라는 시나리오를 꿈속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 목적을 달성하고 보니 그 자체가 또한 외곽에 놓여 있는 꿈의 굴레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꿈의 외각의 외각’ 또 있을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 믿는 상태’를 그대로 이분에게 증거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제가 아직도 예수를 못 믿는 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마저 우리 주님의 은혜 맞지요?”라는 고백이 나올 경우다. 쉽게 말해서 “내가 가위눌려 있는 이 답답한 꿈속을 벗어나서 바깥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그것마저 또한 여전히 또 다른 꿈이었다는 사실을 비록 내가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마저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이 곧 ‘예수 믿는 자’의 상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주되심’이란 인간이 스스로 힘으로 도저히 빠져 나올 수도 없고 버틸 수도 없는 그 갇혀 상태 속까지도 십자가의 낮아지심의 원칙과 능력으로 찾아들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꿈같은 현실 세계로 빠져나오고 난 뒤에 비로소 십자가를 믿는 절차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과연 이 현실이 꿈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종잡을 수 없는 지경 속에서도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은 참투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


 


따라서 참으로 정직한 불신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된다. “나는 내가 날마다 대하고 만져지고 보인다. 하지만 예수라는 존재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확실히 인정하는 것은 예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다. 수년, 수십 년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확실한 것은 어디까지 ‘나’라는 존재이지, 결코 여전히 유령 같은 예수라는 존재는 아니다. 물론 여러 차례 진실 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를 믿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수시로 시도한다. 목사까지 하고 외국에 나가서 신학박사까지 따고 목회를 계속 한다 할지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더 확신이 되는 사실은,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를 눈에 보이는 자기 자신보다 더 신뢰하는 자는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도 안 믿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예수가 안 믿어지는 건방지게 지가 뭔데 믿어져… 100% 거짓말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눈에 띄는 목사나 장로나 신학자나 교인이나 모두들 ‘믿는 척’들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남들에게 보이듯이 말이다. 다들 말들은 안 하지만 가만히 보면 모두 이 점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눈치다. 즉 예수란 어디까지나 호기심과 탐구의 대상은 될지 모르지만 몽땅 헌신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들 공감한다. 참으로 정상인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를 위하여 눈에 보이는 자기 자신을 바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혹시, 행여 이 허공에 예수라는 존재와 접촉될까 조심스럽게 탐색은 해보지만 기대는 안 갖는다. 따라서 그동안 ‘은혜’, ‘믿음’, ‘천국’ 이 모든 용어들을 입에 올린 것은, 믿는 신자처럼 행세하기 위함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여기 내가 살아있음’ 이외는 아무 것도 믿을 게 없다! 따라서 소위 ‘예수 믿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위선적인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시비나 걸어 볼까 뭐라도 나오는지… 목사님, 제가 예수를 아직 안 믿어지는 것은 (=아직 복음으로 목회 못하는 것은) 때가 안 된 것 맞지요(=당신 신학 주장대로 라면)?”


 


저의 답변은 이러했다. “십자가 은혜 안에서 그런 불신자 때의 발언까지 소급해서 보면 다 예수님의 주로 살아 계신 증거였습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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