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행함

꿈과 행함

꿈과 행함


 


꿈이란 예상되는 어려운 일을 놓고서 나름대로 해결책을 강구하는 심적 활동이다. 꿈의 내용을 통해서 사람이란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늘 만족스럽고 늘 완전을 즐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가상적인 실패를 끄집어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가상적인 실패상과 거기에 대처하여 나름대로 해결에 나서는 분투노력이 꿈을 통해서 절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전혀 축산에 대해서 모르는 자가 난데없이 소를 키우면서 생업에 나서는 상황이 꿈에 등장하게 되면, 그의 꿈의 내용은 축산에 실패하지 않으려는 분투노력으로 일관하게 된다. 이는 곧 인간이란 전 분야에 대해서 항상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적인 불안감을 표출한 것이다.


 


축산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으니 억지와 무리와 그리고 초능력으로 소를 키우는 장면들이 꿈에 등장한다. 허무맹랑한 내용들이면서 꿈속에서는 더 이상 포기를 시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에서의 인간들의 삶이란 선택과 포기, 포기와 선택의 연속으로 버릴 것인 버리고 채택할 것은 채택하는 식으로 일관해 오고 있는데 평소의 선택 행위에서 제외당한 자투리 현실들이 꿈속에서는 재집결하여 ‘당신이 현실을 일방적으로 버릴 자격 없음’을 외치고 덤벼드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이 강제되어진 현실 속에서 소를 키워내어야 한다. 이 와중에서 평소에 미워하고 싫어하고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인물이 등장해서 그에게 원치 않는 축산 기술이라도 배워 기어이 소를 힘들게 키워내야 한다. 굴욕적이고 기분 더럽다. 그것은 원치 않는 현실이기에 꿈속에 아니라면 얼마든지 외면하고 기피한 현실상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꿈이란 현실 자체를 두고 우리가 늘 배제하고 혹은 선별하는 식으로 극히 일부의 현실만 현실이라고 채택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의도적으로 외면한 그 많은 현실에 대해서 당연히 불안과 근심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잘 할 수가 없고 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꿈 속 상황이 밤에 잠자는 시간대가 아니더라도 의식이 깨어있는 시간대에 항상 잠재되어 있어 그것이 대낮의 ‘행함’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곧 인간의 모든 행함의 바탕에는 불안과 걱정이 깔려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온전한 행함이란 있을 수 없다. 항상 원인도 이유도 모르는 채 불안에 싸여서 나름대로 분투노력하는 식으로 행동하게 되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행함을 가지고 ‘의로운 행위, 완전한 행위, 성령에 의한 거룩한 행위’라고 우길 수 없다. 도리어 이러한 강조가 뭔가 잔뜩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사실을 표출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함을 스스로 알기에 대외적으로 들키고 싶지 않아서 무슨 언어로도 강하게 감추고 싶은 것이다.


 


즉 인간은 계속 꿈을 꾸고 꿈속에서 사는 것이다. 꿈이 모아져 현실이 된다. 대낮에도 꿈은 영속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늘 미흡함과 모자람에 쫓기면서도 그래도 본인을 완전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애처로운 분투노력이 들어있다. 이로서 인간에게는 믿음이라는 것은 아예 없고 오직 행함 뿐이다.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쉬지 않는 선택과 선별행위만 믿을 뿐이다.


 


성령께서는 이런 인간을 수시로 십자가 소식을 듣게 하신다. 왜 예수님께서 성도를 위하여 죽어야 하는 지를 늘 되풀이해서 깨닫게 한다. 반면에 성령이 오지 않는 자는 평소에 불안에 쫓기는 그것을 자꾸만 성경 용어와 신앙적 용어도 포장하면서 버티고 있다. “십자가 피만으로 안 돼!”를 되풀이하면 대외적으로 외치게 된다. 왜 ‘십자가만으로 안 됨’을 외칠까? 그것은 십자가 능력이 실제로 경험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해야 될 선택 대상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십자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사항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에 자신이 미처 선택하지 않는 것이 따로 있는 마당에서 자신이 배제시킨 상황이 온전히 경험하지 않는 이상, 십자가만으로 온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 말고 다른 것도 경험해야 비로서 자신이 온전해 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다”는 예수님이 제시한 명제에 해당된다.(요 3:6)


 


반면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평소에 불안과 공포와 꿈같은 현실에 휘말린다고 해도 십자가 피 앞에서 모든 것이 마땅히 죽어야 될 육이고 지옥인 것을 되풀이해서 믿어지게 된다. 즉 십자가만이 온전하고 완전하기에 이 세상 현실은 그것이 무슨 현실이 되었던 ‘지옥재구성’이 됨을 십자가 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서 성도는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본의 아니게 쉴 새 없이 죄를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 앞에서 “그게 육이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증거하게 된다.


 


꿈같은 현실 속에서 예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한 현실이 그 사람에게 침투되어 있는 상황이다. 육에 속한 자는 이 현실을 모르기에 그저 자신이 분투노력으로 다듬는 현실에 쫓기는 지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함을 외치면서 꿈 속에서 깨어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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