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배반-김혜선

믿음의 배반-김혜선

믿음의 배반

인간의 축복에 대한 갈망과 허기짐에는 끝이 없다(잠30:15). 인류 역사가 이 축복을 차지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적나라한 기록이며 현재도 진행 중이고 멸망의 날까지 계속될 축복의 쟁취 욕구는 결코 그 누구와도 나눌 수도 없고 나눌 생각조차 허용되지 못하며 자신의 생존의 욕구를 넘어서 배타적인 탐욕의 결말인 약탈, 학살, 인종 말살 등등으로 나타난다.

인류의 문명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서구 학자들이 전부) 서구 문명이 어떻게 인류를 이끌어 오늘의 찬란함(?)을 이루었는가 하는 자화자찬의 논문이나 책에서 그들의 대부분 동의하는 주장 중의 하나는 중세시대까지 동양문명에 한참 뒤졌었는데 약 500년 만에 주도권이 서구로 넘어온 데는 기독교 정신이 서구인의 사상을 지배함을 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축복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희생, 봉사, 박애, 진취성, 아무튼 좋다고 생각되는 인간의 탐욕을 기독교 정신으로 포장하여 그 정신으로 투쟁하고 쟁취하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므로 오늘의 인류 문명으로 발전시켰다는 논리이고 동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서구 문명에 뒤졌으며 뒤진 동양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와 민족들은 자신들의 지도와 편달을 받아야 하며 현재의 상황이 이를 말해주고 있고 자신들이야 말로 미개한 지역과 민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명의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는다(마28:19-20).

이 논리들이 유럽 열강들의 아시아, 아프리카 침략과 식민지 획득에 대한 논리적인 정당성과 합리화의 기본이 되었으며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미개한 민족들이 문명을 누리게 되었고 구원받게 되었으며 그들이 행한 약탈, 파괴, 억압에는 대의를 위해서 불미스러운 일은 항상 일어나는 것으로 치부하고 침묵했다 라고 현대 역사가들은 평한다.

이 사상이 21세기의 한국에서 아주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음에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한국 교회들이 이들의 정신으로 무장되어서 가난한 나라들과 개발 안된 지역을 상대로 서구인들을 뒤따라 이 사상을 조금도 손상 없이 이 순간에도 실행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온갖 곳에 미친 짓들을 저지르고 어지럽히고 있다.

$(달라)가 이들의 경전이며 구원의 투구로써 어떻게 하면 자신들처럼 단기간에 많이 주어 모을 수 있으며 그 방법과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공식을 몸소 보여주어 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열광케 하여 자신들은 야곱임을 확신하는 다 목적을 노리는 것이다.

이들은 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정신은 선교를 가장한 서구인들이며 속셈은 그들도 서구인들과 동등함을 증명하여 비록 지리적인 위치는 동양이지만 서구인의 자리에 앉아 우월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물임을 세계에 인정 받는 자랑스러운 기독교인의 모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열등감에서 나타나는 발작적 몸부림 현상이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한국인들을 서구인으로 지리적이나 정신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정받은들 아무 의미 없는 헛된, 미련한 자들의 뒤를 쫓는 또 다른 미련한 자들로써 불 속으로 휩쓸려 가는 구더기들 중에 굴러가는 구더기가 기어가는 구더기에게 자기가 더 빠르게 휩쓸려 내려감을 자랑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우리는 성경에 애처롭고 가련한 장면들 중의 하나인 에서가 이삭에게 축복을 눈물로서 호소하는 믿음의 배반 장면을 만날 수 있다(창27:38). 축복은 당연히 장자인 자신의 몫이며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았다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차례가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당한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신21:17).

이삭이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주었으므로 에서에게 줄 축복은 남은 게 없다는데도 끝까지 눈물로서 간구하는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하신 장자의 축복은커녕 말씀을 믿음에 대한 배반인 저주가 그의 몫이다.

또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배반을 볼 수 있다. 예례미아가 하나님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장면으로 평강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칼을 보내신다니 이런 배반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렘4:10).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축복은 자신들의 몫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기도를 들으셔야 하고 자신들에게 반드시 축복을 주셔야만 하고 당연히 믿는 자들을 도우신다는 것이다(창12:2-3). 여기에서부터 에서처럼 인간들의 애처로운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은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부터 잘못된 출발로서 인간의 출발은 저주이며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자비 외에는 어떤 것도 바라볼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지신 자만이 믿는 자이며 인간은 무슨 짓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진리를 자신들에게 확대 적용하는 무식함과 용맹함으로 무장하여 절대 가련한 존재인데도 믿는 자라는 오해를 전제로 얻지 못한 축복에 대한 불만과 원망의 일생이며 자신들의 기도와 요구는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에 찬 미신과 허망한 꿈과 막연한 근거 없는 기대감이 인생 전체를 파멸과 피폐함으로 몰고 가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간섭하심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이는 것으로 증명하려 하며 성경의 말씀으로 각색하는 눈물겨운, 정말로 눈물을 흘리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자신을 중심으로 이 세상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간주하는 오해가 평생을 지배하며 이끌어 하나님의 중심은 인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눈을 감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진실은 하나님께서 눈을 감기심이다.사6:10.)

자신들이 원하던 이루어지지 않은 축복으로 인해 비록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켜 불행과 역경을 지나왔다고 자신들의 믿음을 자찬하며 하나님마저 자신들의 믿음에 감탄하게 만들며 자신들의 삶을 영웅적으로 미화시켜 불행한 삶에 대한 합리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자신들의 불신을 감추는 위장의 가면으로 사용하여 믿음의 주재자이신 하나님마저도 웃으실 수 없는 코메디 상황을 연출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은 믿는 자라는 자기 기만으로 불 속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믿는다는 인간들에게 저주를 주시므로 하나님의 축복은 야곱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주신 것임을(창27:27-29) 확정하시었고 욕구와 욕망을 위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몫이 아니며 그나마도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인간들이 바라는 축복이나 평강이 아니라고 말씀 하신다(마5:3-10; 요14:27).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배반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말씀대로 실행하시며 주님의 창세 전의 예정하심에 의한 선택(엡1:4)으로 야곱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믿음으로 야곱이 되는 것이 아니며(롬9:13) 인간들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은 모두 가짜임을 들어 내신다(롬3:4).

믿음은 인간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며 어떤 희망도 없다는 절대 절망이 기쁜 소식이다.

Wednesday, September 12, 2012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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