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

[2016.5.15. 성경모임-히 5장]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


 


히브리서 4장은 인간에게 안식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번제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번제물 사이에는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번제물과 하나님 사이에도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큰 대제사장은 기존의 대제사장과 다릅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하듯 히브리서 5장 또한 이 큰 대제사장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제사장은 죄 때문에 생겨난 직업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목적이 죄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인을 살려두는 죄의 용서란 없습니다. 죄인이 죽어야 함을 대신 보여주는 흠 없는 동물들이 제사장의 손에 죽습니다. 제사장은 죄 없는 동물이 왜 죽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실상 죄인의 피를 받아내고 있는 것이죠.


 


죄의 삯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죄인과 죄의 행위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이 점이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A가 거짓말이란 죄를 지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인간은 A와 거짓말을 분리합니다. 그리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거짓말로 인한 다른 사람의 피해를 해결하면 된다는 논리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A가 거짓말 한 것은 A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거짓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았다고 주장한다는 거죠. 거짓말 하고 있는 자의 실체(죽음)를 공개함으로써 지금 살아있다는 현상 자체가 거짓이요, 죄임을 증명하는 방식입니다. 십계명 등 율법을 주신 것은 잘 지켜 천국가라고 길을 열어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째서 그 어떤 계명도 지킬 수 없는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죄이고 죄의 끝은 죽음이므로, 율법은 천국으로 가는 길의 폐쇄를 의미합니다.


 


‘천국 가는 길, 폐쇄!!!’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대제사장입니다. 물론 그도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당신은 사람이기에 천국 못 간다고 합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묻겠지요? 당신도 같은 사람인 주제에 왜 그런 막말을 하느냐고. 대제사장도 당황스럽습니다. 저 사람들의 말이 맞다. 나도 같은 인간인데 인간에게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 역시 육신의 부모님이 계신다. 나 역시 인간일 뿐 아닌가? 나도 짐승을 잡을 때 불쌍하고 더럽고 토할 것 같다. 누구에게 맞으면 아프고 자존심 건드리면 폭발한다. 십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맞다. 나도 그냥 인간이다. 죄인이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대제사장이 되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는가?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히 5:4은 대제사장은 다른 인간과 달리 존귀한데, 존귀는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존귀한 대제사장이 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히5:6)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아들이라는 부름(히5:5)입니다. 대제사장 자리는 멜기세덱처럼 예수님처럼 인간적인 자격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부름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히5:1)


 


그렇다면 왜 반드시 인간이 대제사장을 해야 합니까? 천사를 부르거나 피조물 중 다른 것으로 그 부름의 자리를 채우면 되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제사가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히5:1) ‘제사가 사람을 위한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을 용서하는 형태로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이 한 자리에서 겹치게 되는 겁니다. 사랑과 죄인이 대제사장이라는 인물 속에서 포개지는 것이죠. 히5:1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염두 해 둔 것입니다.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이라고 한 이유는 예수님 안에 모든 대제사장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몸 안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모두 몰려들어온 셈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그 몸에서 죽음의 제사, 사랑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죄와 용서의 구별이 십자가 사건 속에서 통일되어 이제는 죄도, 용서도 오직 십자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슈퍼맨이니까 자동차를 들어 올리듯, 십자가를 질 만하니까 진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용서할 수 있는 탁월함이나 넉넉함에서 나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인과 똑같이 시험을 받은 자(히4:15), 자기도 연약함에 싸여 있기에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히5:2)할 수 있는 겁니다. 죄인과 온전히 하나 됨. 이것이 용서할 수 있는 자 즉 부름의 자리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온전히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런 탓에 각자의 개성을 실현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다릅니다. 온전히 다른 사람의 자리, 나를 찾을 수 없는 자리, 그 어떤 자부심과 대가도 요구할 수 없는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대제사장은 창조와 죽음 그리고 재창조의 틈바구니 속에서 비밀로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히5:12)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비밀로 두지 않고 무언가로 대체해서 설명하려는 태도입니다. 설명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놓고 다른 것들을 그 기준에 맞도록 조작하여 논리적으로 엮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초보는 율법을 기준으로 놓고 십자가를 율법처럼 조작합니다. 죄와 의, 죽음과 생명이 통 체로 해소되는 십자가는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설명 가능한 행위를 따져서 인간의 법처럼 책임의 경중을 묻습니다. 부름의 비밀인 대제사장은 사라지고 다시 율법사만 남아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자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습니다. 선악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인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선악의 판단자로서의 자신을 포기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장성한 자, 그는 십자가 안에 있는 자입니다. 죽은 자 같지만 살았고, 넘어진 것 같지만 일어서있고, 갇힌 자 같지만 자유롭습니다. 십자가 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만이 든든히 운행합니다. 성도는 그 운행 아래에서 죄인으로 살면서 의인으로 부르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여 의인으로 살려 하다가 죄인으로 발각됩니다(히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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