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 광야의 그리스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들어서기 전에 그들은 홍해를 건너지 않는 지역인 애굽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살던 지역을 떠나 홍해를 건너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홍해를 경계로 해서 도저히 산 사람은 딛을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이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도 살지 못하는 곳에다가 하나님께서 새로운 민족인 이스라엘을 그곳을 통과케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속의 땅’이라는 광야 후에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 속’에 마련되어져 있다는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통과한 자에게 약속의 땅이란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발소 옆 가게를 찾아가기 위해 이발소를 그냥 급히 지나친 자에게는 그 사람의 모발이 그대로인 것과 같습니다. 이는 애굽에서의 인간의 목적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바뀐 의미는 바로 ‘어린양의 죽음 속으로 참여’입니다. 그냥 억지 자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죽음’이지 ‘자신의 죽음’을 앞 당겨라 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낯선 죽음입니다. 죽어도 경험할 수 없는 죽음입니다. 홍해바다 아무리 수십 번 왔다 갔다 해도 알 수 없는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경험하려면 광야가 통째로 약속을 위한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죽도록 몰아세운 그 낯선 영적 환경이 이제는 이스라엘의 환경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유 있는 생존’이어야 합니다. 즉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살게 되는가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경험한 기존의 의미는 광야에서 꾸준히 삭제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통째로 산 이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어쨌든 안 죽고 살아남아야 돼”라는 정신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죽여주옵소서”. 그런데 바로 원망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집단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반석을 증거해야 될 민족’으로 말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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