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 덩어리
구박 덩어리
히브리서 10:32-34
구박 덩어리 이 세상은 이미 한 마음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세계는 결국 동일한 목표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목표가 같으니 안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살기’입니다. ‘나 살아남기’입니다.
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이 인간 세계에서 탈락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중도 탈락되지 않고 오랫동안 ‘이 세상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는 방법은 자기‘산업’을 갖는 겁니다. 소위 ‘전문직’을 갖는 겁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그것으로 남들 앞에 당당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치된 삶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이질(異質)적인 요소가 끼어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질적인 사람들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내가 결정할 게 없다”는 겁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2-23)
여기서 ‘부르심’이 나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처음 불러주신 그 능력에 의해서 빡빡하게 연속적으로 막혀있는 이 지옥의 밀도를 통과하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특징은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그만큼 기존의 세상에서는 통용되고 날아다니는 각종 의미에 휘둘리고 농락당하고 속고 산다는 말입니다.
따로 주님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았기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으로 철저하게 이 세상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심하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달리게 됩니다. “너는 뭔데 우리의 지시와 요구에 따르지 않느냐”고 하면서 구박이 가해집니다.
만약에 이 구박을 견디지 못해 그들과 같은 의식을 갖는다면 이는 애초부터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