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사랑하는 자들아
디도서 3:12-15
사랑하는 자들아 두기고는 본디 터키 사람으로(행 20:4) 에베소와 골로새 등지에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한 사람입니다.(엡 6:21/골 4:7)
또한 사도 바울은 디도를 니고볼리로 불러내면서 율법 학자인 세나와 바울의 동역자이자 담대한 전도자인 아볼로(행 18:24-28/고전 1:12,3:4-6)를 그레데 교회로 파견하여 영적인 부족함을 조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레데 교인들은 이들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물자와 의복 등을 도와주므로서 선행과 봉사를 실행하게 했습니다.(행 15:3/롬 15:24/고전 16:6/빌 2:25) 사도 바울이 뭘 만들고자 한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탈출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도 이 탈출이 집단적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4-46) 특히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되어 있습니다.(행 4:32)
이 효과는 성령에 의해 말씀이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곧 부활로 인해 성립된 새로운 세계의 모습입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 4:33) 인간적으로 역사적으로 지탱해 온 기존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세계’ 곧 천국이 나타나게 조치하셨습니다.
그 특징은 ‘나의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그동안 이 세상의 생활이 지옥 생활화된 것은 ‘내 것’에 대한 집착, 이외에 다른 목적에 두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즉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고 지배해 왔던 겁니다. 살기 위해서 필히 소유할 게 많아야 된다는 생존 본능에서 인간들은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다는 소식뿐만 아니라 그 부활의 상태가 이 세상 안에서 실제적으로 성령에 의해 구현되어버린 겁니다. 말씀의 세계만 실제 세계였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