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 13-14 성령의 거룩하심
성령이 아니면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이 성경구절에서는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가 결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거룩’ 자체가 우리 행위의 연속성과 만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행함과 거룩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꼭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놓고 자신이 먼저 평가하고, 조금이라도 내세울 만한하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에게 내놓게 됩니다. “저는 이 정도까지 해내는 괜찮은 자입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왜 이런 태도를 거룩하다고 보지 않느냐 하면, 성령님의 출발점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니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한 자는 인간쪽에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세례요한은 여전히 최종적 안목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최종적 안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성령을 택한 자에게만 제공할 때나 가능합니다.(행 2:33)
‘최종적’이지 않다는 말은 최종적인 거룩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거룩 ’이란 ‘분리된 영역에 속한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즉 제대로 된 거룩성은 ‘분리성’을 완벽하게 갖추게 됩니다.
‘전에 나에게 없었다’ 정도가 아니라 ‘전에 나는 예상도 못했다’가 되는 거룩입니다. 즉 ‘선악지식’으로서 기대하는 거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분리성이 철저하게 성사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분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태가 거룩의 핵심 요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인간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상, 행함으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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