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와 한 분
다수와 한 분
히브리서 7:23-25
다수와 한 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주님의 패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패배한 것만큼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 그 많고 많은 사람이 있어도 모두들 죽음을 슬퍼합니다. 슬퍼하는 이유는 죽음을 패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땅히 패배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위치가 저주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패배당하기 싫어서 온갖 성공 사례 같은 들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냅니다. 위대한 문명의 발전상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자기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할 용납된 자유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온갖 거룩과 경건과 성스러움으로 포장된 종교단체, 종교집단을 창안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의 경우와 같이 자결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실패성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공중에 신속하게 날아가는 지경입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인간들의 모두 한쪽으로 편향된 죽음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인간 전체를 ‘다수’라고 표현되는 이유는 그 어떤 인물이 제사장의 자리에 들어와도 ‘죽음’으로 대변되는 실패의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제사 직분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인간과의 접속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어린양의 죽음과 제사장의 반복적 죽음이 대비가 됨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 제도를 통해서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를 밝히 보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제사를 통해 만족스러운 인간 관계가 기존의 인간으로 충족되지 않음을 나타내십니다.
제사직의 완성은, 반복적인 제사장의 등장을 대체할 종결적 인물의 등장으로 성취됩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드신 제도와 시스템을 책임지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실패자이기에 누구도 들어설 수 없는 제도와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의 응답으로 이 영원히 거룩한 시스템에 들어와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