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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날
고린도후서 6:1-2 구원의 날 구원의 날을 언급하면서 사도는 이사야 49:8을 언급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약속의 땅을 상속받는 상황’을 말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넉넉하고 넓고 윤택하고 기름진 땅이 있는데 혹시 누가 땅을 더 준다고 한다면 크게 좋아할 처지는 아닐 것입니다. 현재 자신의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에, 구원은 성사될 수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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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 믿음
히브리서 11:22 요셉의 믿음 요셉은 자신의 형편이 곧 미래에 오신 메시야의 모습을 대행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미리 ‘현재’ 속에 같이 섞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같은 ‘현재’는 아니라는 겁니다. ‘미래’가 ‘현재’에 섞이게 되면 ‘현재’은 ‘미래’의 의해서 고발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현재’ 자체에서 ‘미래’를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창작해 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자신의 사이즈를 키워서 미래에 닿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지만 현재를 자신들에게 꼭 살아야 될 의미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대체물로서 ‘해골’을 지정합니다. 인간들에 있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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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과 복음
디모데전서 1:7-11 율법과 복음 율법이 나쁜 것을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선해도 너무 선하고 완벽하게 선하기에 모든 세상의 죄는 모조리 그 율법으로 다 들추어낼 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달리 말씀드리면 이러합니다. “율법을 만드신 분 외에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가 됩니다. 마치 주관식 문제 시험 출제자 외에는 진정 그 주관식 문제에서 어느 학생도 만점을 맞을 수가 없는 겁니다. 즉 어느 인간도 율법의 진정한 뜻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적용되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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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남은 고난
골로새서 1:24-25 예수님의 남은 고난 로마서 10:15에 보면,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연락관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인류의 희망은 철저하게 이 연락관의 존재의 등장으로 인하여 막혀 있다는 말도 됩니다. 소용없다는 겁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함’이라는 형편을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준수하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이미 예수님께서 이 지상생애에서 겪었던 고난입니다. 의도적으로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를 만드는 유일한 작업과정입니다. 교회,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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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처소
에베소서 2:19-22 새로운 처소 죽은 이와 현 살아있는 자들과 계속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보통 현재 유효한 단체나 집단은 산 사람들의 집합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거할 처소는 이미 죽었던 사람과 현 산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여기에 가담하십니다. 그래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새로운 사회가 성립됩니다. 이런 단체에 대해서 인간이 손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스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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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보
고린도후서 8:1-5 연보연보는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연 성도가 언약으로 구원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언약이 전개되어 펼쳐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성도가 돈을 신에게 바쳐서 구원되었다면 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겠지요. 연보와 관련해서 특히 명심해야 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49:6-8의 말씀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재물을 바치는 것이 헛수고인 이유는, 그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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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체와 몸
에베소서 4:15-16 지체와 몸 몸과 지체란 한 신체를 같이 구성하기에 따로 보이지 않고 한 눈으로 다 보이는 법입니다. ‘몸이 움직인다’라는 말보다 보다 구체적으로 ‘지체가 움직인다 ’하는 말이 옳게 보이는 법입니다. 단 몸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은닉된 몸을 소개하는데 있어 눈에 보이는 부분을 ‘지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한 표현입니다. 결국 교회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몸’을 지향하면서 지체로서만 활동합니다. ‘지체로서만’ 활동한다는 말은 그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쥘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식하면서 살아오는 자들에게는 항상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만 휘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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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있는 성소
히브리서 9:23-26 하늘에 있는 성소 ‘하늘에 있는 성소’의 위치는 지상의 형태가 대비되어서 주어지는데 이 사항을 보여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계 15:5-8)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모든 종교 시설과 현실 문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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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집의 구성요건
히브리서 3:4-6 하나님 집의 구성 요건 사람이 태어날 때, 부모들은 ‘우리 집의 속한 아기’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이 아기들이 모여서 국가에 속하면 국가는 제일 큰 덩어리의 집이 됩니다. 구성원들을 그 집의 식구들이 됩니다. 사도행전 12:21-23에 보면,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 왕은 유다 통치 3년에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에 잠시 방문하려 왔는데 이는 그쪽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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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거룩하심
데살로니가후서 2: 13-14 성령의 거룩하심 성령이 아니면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이 성경구절에서는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가 결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거룩’ 자체가 우리 행위의 연속성과 만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행함과 거룩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꼭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놓고 자신이 먼저 평가하고,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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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의 몸
빌립보서 3:21 영광의 몸우리의 몸이 하나님 보시기에 ‘낮은 몸’이라고 평하십니다. 얼마나 인간은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몸을 허무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을 했겠습니까. 갈고 닦고 광내고 윤기내고 하면서 부실하지 않는 몸으로 드러내면서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인간들의 모든 욕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자극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인간의 허망한 눈에 보이는 영광은 하나님께서 숨겨놓았습니다. 허무한 몸이 찾는 영광은 그 역시 시들고 썩을 영광입니다. 로마서 3:13에 보면, ‘열린 무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죄인들의 형편은 무덤이 외부로 향하여 공개된 상태에 있다는 겁니다. 원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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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거
데살로니가전서 4:13-18 휴거강림과 휴거는 서로 취지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부활은 강림 이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에게 그 어떤 혜택이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일단 죽은 자에게는 그 사람의 포부는 묵살됩니다. 그 인간의 포부에 담긴 죄로 인해 그 인간은 죽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뭘 소망한다는 것은 그 욕망에 도취되어 그것이 죄인줄을 알지를 못합니다. 이는 죽어 마땅한 존재가 다시 삶(부활)을 넘본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의 취지를 모독하는 바가 됩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부활’은 어디까지 주님이 결정지을 문제이지 인간이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적인 의사와 상관없이 주님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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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자
골로새서 1:28-29 완전한 자 고린도전서 1:7-8에 보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완전한 자,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 곧 하나님에게 속한 일입니다. 야고보서 1:7에서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위로부터’ 작업이 시작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것’으로 간주하시지 않습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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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나라 농부
고린도후서 9:10-15 하늘나라 농부‘의의 열매’라는 표현은 마치 ‘하나님의 의’가 농사짓는 작업처럼 진행되어 발생한다는 말입니다. 열매란 처음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업 후에는 생겨나는 성질의 것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의의 열매’란 죄인된 인간의 솜씨는 아닙니다. 의로운 분의 의로운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의의 열매’의 공통적 성질을 나타내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의의 제사’를 드린 아벨은 ‘죽음으로서’ 의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를 두고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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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에베소서 4:4-6 하나 몸도 하나, 성령도 하나라면 그 여파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부르심으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름을 받았다’는 말은 ‘나의 하나됨’을 그 부르심이 용납하지 않고 파괴시키신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나의 하나됨’을 붙들고 살게 됩니다. 궁극적이고,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로 남아 있어야 한 것은 오직 ‘나와 관련된 것’ 뿐이어야 한다고 고집부리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믿음이 최종적이어야 하고 나를 위한 행복과 나를 위한 영원한 나라이어야 내가 용납하겠다는 식으로 나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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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에서 벗어남
디모데전서 6:17-21 믿음에서 벗어남 신앙 생활과 종교 생활의 차이는, 인간이 원하는 바는 종교생활은 깨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나란히 정겹게 교회에 출석하면서 종교생활하는 것은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말씀이 그다지 전혀 심각하지도 않고 안 들어도 그만인 그런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부가 교회라도 안 다녔으면, 그들이 지내온 지겹고 숨막힐 공간이었는데 전혀 멕히지도 않을 실없는 말들을 교회에서 들게 되므로서 둘이 백년 회로한다는 것이 얼마나 최선의 인생이었는가를 스스로 파악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반면에 신앙 생활은 늘 본인이 원하는 바는 다 깨트려주기 때문에 본인이 미처 몰랐던 원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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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
갈라디아서 2:19-20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내가 나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십자가 안까지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결국 나를 더욱 더 살려내는 식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나의 죽음’이란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헐어버렸다고 자부했던 율법 행함의 의가 나 안에서 다시 세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이해하려면, 십자가 이후에 어떤 것들이 십자가를 욕되고 하고 모욕하는 태도인가부터 점검해 봐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여전히 나 안에 어떤 요소들이 기어이 내가 나에게 집착하게 만드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는 ‘행함’에 대해서 분석하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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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의 비밀
데살로니가후서 2:4-7 불법의 비밀복음에 반대하는 배도(背道)하는 일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인간이 상대해서 저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이미 인간은 복음을 반대하는 악마의 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형편에 있습니다. 인간의 예술과 정치와 경제와 과학과 종교, 그 어느 것 하나 악마가 시키는 대로 그 결과물을 쏟아냅니다. 지리학이나 철학이나 언어학이나 건축학이나 농업과 어업에 관한 기술이나 광물학이나 고고학이나 역사학, 심리학과 의학, 그 모든 분야에서 악마가 요구하고 바라는 결과들만 깊은 탐구와 관찰하는 애씀을 거쳐 논문이라는 학문적 형식으로 세상 모든 이가 공유하도록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박하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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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기세덱 반열
히브리서 5:5-10 멜기세덱 반열 복음을 결국에 떠나는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저주가 되지를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계속 자신이 자기를 끝까지 챙겨야 한다는 생각과 의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의 악마성과 죄성에 대해서 사도가 제시하는 것은 단 하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다시 비쳐보라는 겁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즉 인간의 최종적 모습은 십자가에서 ‘끝’이라는 겁니다. 십자가를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 너머의 세게는 유일하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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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는 세계
골로새서 2:4-5 속이는 세계 이미 인간들은 자신을 신처럼 여기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만약에 주변에서 각가지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인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행여 자신의 절대적 존재라는 의식이 부정될까봐 염려해서입니다. 즉 나는 나로서만 살고 싶은 본심이 작용하는데 이러한 본성이 비현실적인 태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본심을 숨기는 조치를 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모든 행동을 순수하게, 아무런 의도도 갖지 않고 부담없이 솔직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본인도 모르고 있는 사실을 감추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은 ‘도대체 내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