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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편지
고린도후서 3:1-3 그리스도의 편지편지를 보낼 때는, 그것을 읽어낼만한 역량이 있음을 감안해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 지음 받은 자들이 분명히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시는 신호입니다. 이들은 편지를 육적으로 읽어내는 자들이 아니라 영적으로 읽어내는 자들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을 예수님께서 중간에 내세웠지만 영적인 피조물들은 이 편지를 예수님이 보내신 편지로 이해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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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의 기능
히브리서 1:4-7 천사의 기능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천사와 비교시키십니다. 인간과 비교시키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천사를 동원해서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 세계와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 세계는 하늘나라 형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 세계가 분주하게 돌아가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내막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땅의 사정은 어디까지나 하늘나라 활동에 종속됩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서는 무슨 취지가 작용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과 협의하거나 의논하지 않으시고 오직 독단적으로 자신의 독생자를 따로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이는 곧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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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로 오라
디모데후서 4:9-13 내게로 오라 사도는 죽기 전에 디모데를 불렀습니다. 마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함입니다. 마가는 오순절 성령이 내려오던 날 120명을 위한 장소를 제공한 사람이요 마가복음을 쓴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가는 1차 전도 때, 바나바를 따라 중도에 포기하고 사도 바울과 헤어졌습니다.(행 13:13) 그런 마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드로아에 두고 온 겉옷과 책, 양피지 문서가 가져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데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보입니다. 데마는 한때 사도의 복음전파에 조력자였습니다. 바울이 첫 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될 당시에 바울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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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안에서의 사랑
고린도후서 10:14-18 예수님 안에서 자랑사도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을 보면서 어떤 면을 중점으로 살피느냐 하며는, 그들이 무엇을 자랑하느냐는 겁니다.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인간은 자신을 자랑스러운 존재로 변모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그것이 또한 자신의 일상을 움직이는 추진력이 됩니다. 남들 보기에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기를 바라기에 남들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의식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의식하는 마음과 병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자기가 자체로서 자랑거리가 되기를 원하면서 어떻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만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혹독한 자아 파괴가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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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벨의 믿음
히브리서 11:4 아벨의 믿음 아벨의 믿음은 반드시 가인이라는 존재와 만남에서 비로소 형성됩니다. 따라서 ‘아벨의 믿음’을 생각하기 전에 ‘가인의 믿음’부터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가인의 믿음’은 자신의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한다는 사실이 들어있지 않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7:22-23에 보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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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과 이스마엘
히브리서 11:17-19 이삭과 이스마엘 갈 곳이 상호 다른 두 명의 인물이 성경에 나옵니다. 겉으로 보기에 별 차이없이 보입니다. 겉으로 봐서 이 두 사람 사이에 갈 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갈 곳을 먼저 생각하는 자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생존함이 우선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인간들은 죽어서도,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집착이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언약)의 개입으로 이삭과 이스마엘의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이삭에게는 있는데 이스마엘에게는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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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당한 자들
골로새서 3:12 선택 당한 자들선택의 의미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방민족들이 생각하는 선택과 이스라엘이 역사적 체험 속에서 알게 된 선택이 상호 다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언약이 맺어진 관계입니다. 이 언약 속에는 인간 세계에서 알지 못하는 선택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선택개념은 ‘버려짐’을 통해서 발췌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선택입니다. 계속 제거해 나가는 겁니다. 육의 세계를 계속 파헤쳐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반박하고 반격하는 세력이 마중 나옵니다. 이들 세력은, ‘내가 나를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세력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이방민족은 필연적으로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이방민족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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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아래 가두어짐
갈라디아서 3:18-22 죄 아래 가두어짐가두어지는 것을 원하거나 좋아할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모든 인간은 필히 가두어져있는 형편입니다. 가두어진 채로 자유를 원하고 자율성을 챙긴다. 하지만 인간이 생을 살면서 알 수 없는 공포와 위협을 느끼면서 가두어진 것이 현실에서 필연임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본인들이 원치 않는 현실 속에 놓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현실에 가두어진 것’과 ‘죄에 가두어진 것’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에 가두어진 상황’이라는 것은 날씨나 기후의 예상 밖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획이 틀어질 때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감수합니다. 때로는 하늘도 원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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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을 부르심
히브리서 11:8-9 아브라함을 부르심 이 세상이 인간의 세계일까요, 말씀의 세계일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요, 아니면 나타나는 식으로 생긴 걸까요? 이 질문을 위하여 오늘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보이는 것은 고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자연이라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아브라함과 후손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은 ‘나타나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부르심을 받다’라고 나옵니다. ‘부르심’이란 인간쪽에서 당첨받기 위한 그 어떤 준비동작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조치입니다. 따라서 당황하는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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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의 수고
갈라디아서 4:16-20 해산하는 수고“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마 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까지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최종태는 십자가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러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계약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 십자가 취지를 확대시켜 나가면서 필히 ‘핍박’이라는 것은 각오해야 합니다. 핍박 안할 사람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복음전파에 있어 욕심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초적으로 복음 소식에 대해서 핍박하고 기피하고 배척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음전파는 바로 그 핍박의 양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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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에 관한 약속
디도서 1:1-4 영생에 관한 약속인간의 출현은 영원함 이후입니다. 영원함의 시작점에서는 인간이 없었습니다. 인간들이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영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에 의해 친히 보호되고 있었던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하나님께서 때가 되시면 그 영생을 영원 전에 약속하신 내용을 성취할 때가 오신 겁니다. 곧 ‘영생의 성취’입니다. 이 영생의 성취는 예수님 담당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약속 성취에 준해서 완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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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씨
디모데후서 2:8-9 다윗의 씨 다윗의 혈통이란 곧 언약의 혈통을 말합니다. 다윗의 혈통을 인간의 존립을 위해서 유지되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서 자기 사람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담겨 있는 환경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 혈통 속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들을 백성 만들기 위한 조건입니다. 이 조건을 위해서 다윗의 혈통 내에서 ‘억울한 피’가 흘러내려 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마 23:35) 하나님께서 스스로 피해자가 되셔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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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을 전하는 직분
고린도후서 4:1-5 복음을 전하는 직분자연은 하나님의 것으로 꽉 차 있습니다. 가까운 공중에는 새들이 날고 있으며 먼 창공에는 해와 달과 별이 떠 있습니다. 이는 것은 결코 인간들이 임의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권세자’가 있음도 알려줍니다. 그 권세자는 인간들의 마음을 이미 장악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곧 사단이요 악마입니다. 이 권세자의 존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최초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정체가 폭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 권세자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극구 숨기고 싶어합니다. 자신의 존재성을 악마가 숨기니까 인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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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현실
데살로니가전서 1:4-5 복음의 현실말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를 주고 받기 위한 수단입니다. ‘말이 통한다’는 말은 상호간의 의견이 ‘대충 맞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인간 세계란 말(언어)을 통해서 그물망처럼 형성되어 있습니다. 법이 바로 그런 겁니다. 계약서가 바로 그런 겁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늘 협상과 흥정과 조율과 양보와 타협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오로지 인간들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복음이 발생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알리는 말과 글자와 단어들이 기존의 의미의 판에 속하지 않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현지 사용하고 있는 말과 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해될 수가 없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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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입은 자
에베소서 5:1-2 사랑을 입은 자인간이 사랑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성도를 덮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특징은 일단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이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신 일’로서는 매사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부엌에 사랑하는 자가 요리를 한다면, 음식 맛에 대한 괜한 불안감은 없어집니다. 그것은 음식 맛이 어떠한가에는 아예 신경 쓰지도 않고 오직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라는 사실만으로 지속적으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만약에 이런 사랑이 없다면, 이는 따로 자신이 관심 가질 사람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상당히 편한 상태가 된다고 여기시면 큰 오산입니다. 내가 전적으로 쳐다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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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과 낮
데살로니가전서 5:8 밤과 낮 성도의 조건은 환경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조성된 낯선 환경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들의 생각하는 생활환경과는 별개의 환경이 중첩되어 이 시대가 같이 생겨난 게 됩니다. 즉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슨 환경에 속했느냐로 성도됨과 아니됨을 결정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뭔가 일이 잘못되면 자기 행동부터 수정하려듭니다. 곧 문제 해결을 자기쪽으로 개시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행동 수정’이라는 무한 반복만 남길 뿐입니다. 자진해서 인생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나쁜 일이란 옳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일’을 말합니다. 인간들은 자기를 둘러싼 환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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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29-34 날마다 죽노라사도는 “속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속았다’ ‘아니 속았다’를 구분 짓는 근거는 바로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부활을 제대로 아는 자라면 ‘날마다 죽는 자신의 경우’를 통해서라도 부활의 실제성을 증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만큼 그 누구 앞에서도 자신만만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세상에서 당당하게 못하고 움츠리고 사는 태도를 통해서 ‘악한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악한 행동에는 이유와 원인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의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사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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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더러운 것
에베소서 5:3-4 온갖 더러운 것음행과 탐욕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이름’과 결부시켜서 개체화합니다. 즉 ‘이름’이 있는 것들은 일단 온갖 더러운 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됩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깨끗한 개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깨끗한 것으로 간주되는 그 개체들도(=이름들도) 순수함이 퇴색되어 있음을 압니다. 청소년기의 안목으로 대게 순결해 보였던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늙어서 보여주는 사생활은 실망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왜 모든 것이 변할까요? 바로 ‘이름’ 곧 ‘개체성’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성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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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덮쳐진 능력
에베소서 1:19-20 덮쳐진 능력‘강함의 끝’은 죽음마저 말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야 합당합니다. 사는 것이 걱정스럽다는 것은 모든 인간들은 본성상 죽음의 위세에 눌려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죽음이 오게 되면 다 무용지물이다 는 사실을 미리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주는 공포의 그림자에서 못 벗어나 있는 실정을 말해주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도 너를 붙잡지 못한다’는 효과일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죽음마저 물리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빛이 오면 어두움을 물러갑니다.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 속에서 빛이 발산된다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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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이론
고린도후서 10:5-8 세상의 모든 이론“내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내가 알아서 챙긴다. 그 누구로부터도 강요받지 않는다” 오늘날 이러한 정신으로 현대인들은 살아갑니다. 즉 자신이 서 있는 그 위치에서 창조의 비밀로 캐내고 우주의 지식도 캐낸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오직 ‘나를 위한 앎’만 소유하면 된다는 겁니다. 구태여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필요한 지식과 필요치 않는 지식의 구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짓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으로부터 호출 당하기 위한 후보감으로 진열장 속에서 대기되어야 하는 겁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