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로마서 6:4 -7 세례 ‘세례’라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음’입니다. 함께 있을 때는 필히 둘 중의 한 분은 주인이고 다른 존재는 종이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기의 주인으로 자부하기에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함께 있고 싶어 하지를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일이든 세상에 나가 무슨 사업이 되었든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자기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이 해야 될 일의 일환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일에 자꾸만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인간들의 기본 근성

저주받은 세상

우리교회 2월14일 주보요약 - 이근호 《 설교 요약 》 20010년 2월 14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회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세례로 구원받습니다. 세례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투입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개인적인 구원의지는 소용없습니다. 단지 그 세례 안에서 인간들은 자신이 ‘독사의 자식’인 것을 고백하면 됩니다. 즉 ‘나는 나의 구원을 위해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담는 자가 되기 위하여 세례 받은 겁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본문 : 누가복음 3:15 -17

제사장 직무

로마서 15:14-18 제사장 직무제사장 직무는 제물을 다루는 직무입니다. 곧 ‘죽음’과 관련된 직무입니다. 이는 이 현실을 특수한 ‘죽음’으로 바닥을 장식하겠다는 겁니다. 죽음으로 바닥을 깔면 인간들은 평생 내내 죽음이 주는 냄새와 위력이 시달려야 합니다. 뭘해도 “내가 죽으면 이제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질없는 것들이야”라는 식으로 허무로 정리하면 그 어떤 일에도 의욕이 일찍 시들어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자기 생에 활력을 지속하기 위해서 ‘자아 절대주의’ 종교로 무장합니다. 신과 연결된 죽음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신으로부터 죽음과 관련된 요소를 탈색시키

두 가지 옷

두 가지 옷 이야기옷이 날개란 말이 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 보인다. 인류 역사는 옷의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 식, 주이다.옷을 가장 앞세워 말하는 것을 보면 옷의 가치를 알 수가 있다.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여서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였을 때에는 옷이란 것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창 2장 25절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은 처음엔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고 살았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몰랐다. 인간이 옷을 입게 된 것은 범죄이후부터이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 벌거벗음이 부끄러움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전서 1:4-6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서 만들어낸 것은 인간들이 이 지상에서 만들어내는 것과는 질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은 기존의 것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기존의 것’이란 그 안에 자기 자신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내 것을 내가 키워내는 일’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세상에 대한 말살 정책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 자체가 자멸이 진행 중인 과정에 속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제대로 사신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예수님

소송

고린도전서 6:1-6 소송 소송은 실은 자존심과 자존심과의 대결입니다. 예수님마저 이 세상에서 소송에 의해서 생을 끝냈습니다. 사도들의 이 세상에의 마지막도 그런 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서 재판받고 죽었습니다. 이 세상 자체가 소송에서 시작해서 소송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나는 세상입니다. 영적 소송에 휘말려있지 않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복음이나 십자가를 우선적으로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곧 죽어도 자존심만큼은 양보없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지를 결단 내리는데 있어 천성적으로 타고 났습니다. 목숨보다 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로마서 4:1-8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흔히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가축의 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은 후손이 많아지고 소유된 땅이 새로 생긴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브라함이 ‘그래도 죽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죽어도 축복이었다’를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찾아봐야 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인생 중간에 하나님의 언약을 입어서 의인으로 죽었다가 되었다는 것이 축복 스토리입니다. 이럴 경우에 사람들은 흔히 아브라함의 행함과 자신들의 행함을 비교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함 대 행함의 비교는 마치 가인이 동생 아벨의 제

베드로의 객기

누가복음 22:31-34 베드로의 객기 ‘돌이킨 후’라는 예수님의 언질은 베드로가 자력으로 구원될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겁니다. 인간과 예수님과의 직접 대화는 인간 쪽에서의 오해와 곡해가 어떤 식으로 터져 나오는 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직접 만남이 이만큼 중요합니다. 오늘날 성령을 통해서 성도는 예수님과 직접 만남이 성사됩니다. 이럴 때, 과연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요? 바로 ‘돌이킨 후’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모든 성도들은 전부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돌이킴’을 당하는 식으로 구원되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와 우리 성도들의 신앙 노력과 맞바꿀 수

강청하는 기도

본문 : 누가복음 11: 5-8 제목 : 강청하는 기도떼를 쓴다는 것은 상대방 입장은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 아쉬운 것에 발작을 일으키면서 막무가내로 타인을 괴롭히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평소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지 않는 조건 하에서 즐거운 교제가 가능한 사이입니다. 만약에 상대로 인하여 자신이 괴롭다면 언제든지 관계를 과감하게 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우리 자신이 아프면 다른 이웃에게 그 아픔을 전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 여파는 또 다른 이웃에게 이어집니다. 즉 이웃에서 이웃으로, 그

남자와 여자이야기

남자와 여자이야기 지난 시간 아담에게 있어 돕는 배필이란? 아담이 어디를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하였다. 아담은 "네페쉬 하야"라는 "생령"으로 있어서는 안되고 생명과를 먹고 창세기 1장의 사람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생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영생의 세계로 이끌어줄 돕는 배필을 구하여야 했다. 그럼에도 아담은 자기 수준에 불과한 여자를 돕는 배필로 맞아들임으로서 화를 키우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왜?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고자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아담이 영생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순탄한 길이라면 하나님께선 굳이 돕는 배필을 주실 필요가

우상의 제물

고린도전서 8:1- 4 우상의 제물음식이 단순히 에너지 덩어리로서 생존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 보충 차원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성경입니다. 음식을 먹는 그 사람의 위치와 본질을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가지고도 차별 둘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에스겔 44:29-31에 보면,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상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경작과 뿌림

148강 (저주의 내용) 20170827-우리교회 주일 낮 예배말씀을 접하며 다시 또 번쩍!인간세상 – 경작(인간의 모든 노력, 좀 더 확장하면 과학과의 조우)주님 – 뿌림(일방적 조치 – 운명)( )처럼 해석해 봅니다. 그런데 그 뿌림이란 단어는 쉽지만, 감히 인간이 그 내용을 이해함이 가능할까 싶네요. 기껏 제 지식과 경험-그 초라함- 안다고 하는 것이 죄악 인 듯 싶군요.여기서 정말 오랫동안 난해에 했던 말씀을 떠올립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태복음 13:1-23)길가,돌밭,가시떨기----좋은 땅, 육으로 살면서 앞의 3가지를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을뿐더러 열매 조차 맺을 수

미련한 복음

고린도전서 1:19-21 미련한 복음 마태복음 11:25-2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련하다는 비난을 받을 각오로 하고 보내신 것입니다. ‘미련하다’는 말은 ‘전혀 쓸모없

참 신기하네요

마음이 좀 힘들어서 말씀이나 읽자하는데 제목이 ㅡ사는 것이 우선 ㅡ이라는 게 있어 왠지 그 제목이 끌 려 읽었더니 제가 질문한 것들이 쪽집게 처럼 잘 설명 이 되어 있네요!!! 답변이 더 확실해지는 것이 가슴이 후련해지네요. 가면 이야기라든지 자아 세상 은 허상 ㅡ돈키호테 예를 들으셨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 성령은 검이고 골수를. 쪼개기까지 한다더니 인간 심리를 어찌 그리 예리하게 찌르는지 아프면서도 가려운 곳을 긁은 거 처럼 시원하네요ㅡㅎㅎㅎ

나의 멍에을 메고...

마태복음 11:25~30참으로 이 말씀에 많은 것이 함축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전에는 못 보았던....ㅛㅛ29절 나의 멍에를 메고....여기서 마음이 덜컥합니다.하지만 30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알듯 모를듯 고개를 갸우뚱하다가......25절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에....여기에 열쇠가 있는 듯 합니다.보충 설명 부탁드립니다.

큰 환란과 진노

본문 : 누가복음 21 : 20-24 제목: 큰 환란과 진노형벌과 진노가 언급되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살던 그 땅에 이미 성전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성전이 파괴되면서 그 근처에 있는 자들이 먼저 화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동안 대단히 위험한 곳에 살고 있었던 자들이 유대인들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듬뿍 담은 인생으로서 세상만방에 증거거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중심처’가 있다는 말은 희망처럼 들릴 수는 있지만 실은 위기의 상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만의 세상이라면 구태여 중심처를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서

혼인

고린도전서 7:1-7 혼인 주례사는 혼인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한 덕담이지 헤어지라고 종용하는 험담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주례사는 이혼의 여지를 둔 주례사입니다. 즉 어떤 시점에서 이혼해야 하느냐를 통해봐야 왜 결혼이라는 것이 성립되는지를 안다는 겁니다. 이혼할 각오로 결혼하라는 겁니다. 이는 곧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결혼은 인간의 힘으로 성사될 수 없다는 겁니다. 같이 산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둘이 마음이 맞는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혼인생활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혼 당사자 인간들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늘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도올의 기독교종교에 대한 비판에서 십자가복음은 뭐…

“얼어 빠질~”도올 김용옥의 어퍼컷,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붓다의 선언 “이 세상은 변화하잖아요?”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오마이뉴스의 오마이TV에서 강의한 것을 인터넷으로 들었는데 모두 귀가 확 트이는 듯한 내용이었다. 도올 선생에 대한 강의는 유튜브에 모두 올려져 있다. 그 중 인상깊었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은 변화하잖아요?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습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하는 그 모습을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느냐. 왜 기독교는 이 변화를 저주하고 불변의 하나님이라든가 천당이라든가 이념이라든가 이런 불변의 로고스를 사랑한다. 그것이 지금 데

드러난 비밀

로마서 16:25-27 드러난 비밀드러남이란 시간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항상 미결 상태로 이어집니다. 만료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미래에 드러날 것까지 본 내용이 다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왜 자꾸만 이어지는 겁니까? 이는 거꾸로 역사를 삭제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창세기로 되돌아가는 현상입니다. 카펫은 주요 인사들이 행사 참석할 때에 밟아라 고 펼쳐놓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사가 다 끝나면 돌돌 도로 말아 넣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역시가 창세기 쪽으로 돌돌 말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겉으로 보이지 않고 밑에

주의 소식

로마서 15:18-29 주의 소식일루리곤이라는 곳은 사도 바울이 전도한 지역 중 가장 서쪽에 있는 곳입니다. 마게도냐의 북쪽 드라기아의 서쪽에 해당하는 아드리아 바다의 동쪽 지방입니다. 아드리아 바다는 현재 이탈리아 반도와 그리스 사이의 바다를 말합니다. 그래서 현재 이 지역은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 영토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까지 복음을 전한 지역은 모두 예루살렘이 이 일루리곤 사이에 있다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사도는 이 지역을 서바나(지금의 스페인)까지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복음의 지역의 확장은 사도의 본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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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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