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싸움과 기도(4)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단호하게 꾸짖는다. 심지어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가 사단은 아니다. 베드로의 배후에 숨어 있는 세력이 사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꾸짖는 것이다. 베드로를 하나님보다 앞서게 하는 베드로의 배후에 있는 사단을 꾸짖는 것이다. 즉 베드로를 넘어지게 하는 사단을 꾸짖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하는 사단을 꾸짖는 것이다.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제거되지 않고는 예수님이 결코 십자가를 질 수 없음을 알기에 베드로를 꾸짖는 것이다.그리고는 24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무엇보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모든 관계를 단절하다”라는 의미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할 때와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이 말은 예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다.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자기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정욕, 명예, 물질, 성공,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고,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다.바로 ‘자기 자신’이다.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은 ‘나’다. 제일 무서운 싸움의 대상은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이지만 자기를 못 이기면 다 지는 것이고, 실패하는 것이다.영적인 의미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옛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이 내 안에서 죽는 것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자기의 야망, 사심(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자기가 죽는 것은 사심이 죽는 것이고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육의 사람, 육의 생각이 죽어야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내 옛사람의 꿈이 좌절되어야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진다. 내 옛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이 살아나고 내가 새사람이 된다.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육의 사람이 죽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또 육의 사람이 죽어야 십자가를 질 수 있다. 육의 사람이 죽어야 예수님처럼 고통과 희생을 달게 질 수 있다. 육의 사람이 죽어야 매일매일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다. 다미안은 문둥병자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자신도 문둥병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며, 실제로 그 자신이 문둥병에 걸려 그들과 함께하며 전도하였다. C.T.스턴드(케임브리지 7인 중의 한 사람)는 영국에 큰 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 조그만 움막에서 생활하였다. 윌리엄 케리는 최초의 인도선교사였고, 아도니람 저드슨은 최초의 미얀마 선교사였으며,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사인데 이들은 모두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해야 철야기도나 금식기도를 할 수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해야 십자가를 질 수 있고, 예수님을 좇을 수 있다. 봉사하고, 헌신하며, 선교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다니엘은 자기를 부인했을 때 왕의 진미를 거절할 수 있었다. 사자굴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스데반은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을 받으며 돌로 쳐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의 통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자기를 부인할 때 되어지는 것이다. 자기 부인 없이 하나님의 통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욕심과 정욕으로 공격하는 마귀의 궤계에 속지 말아야 한다.

(7)교만으로 공격한다(사 14:14)

이 공격은 이 때까지의 공격과 정반대인 마귀의 활동이다. 또한 지금까지 고찰해온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가장 간교한 최후의 적은 자아이며, 한 인간에 있어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그 자신과의 전투이다. 실제로 모든 죄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첫 번째 타락은 마귀의 타락이다. 이 마귀는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한 재능과 능력과 힘과 이해력을 가진 완전한 자로 창조되었다. 마귀는 하나님의 궁창에서 하나의 빛나는 별이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교만하여 넘어진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였다(사 14:12).마귀는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불평이 대단했다. 반역까지 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아지기를 원했다. 교만하니까 하나님과도 비기려고 하였다(사 14:13~14).이렇게 타락한 사단은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한다. 아담과 하와 역시 마귀와 똑같은 방법으로 타락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 의 자만과 자아를 이용했고 부추겼다(창 3:4~5). 이 원리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 우리 성도를 교만하게 만든다.이 방법으로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한다. 더욱이 이 상태는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원인이 된다. 자아는 언제나 그 자신에 관심이 있다. 모든 것은 이 특별한 실체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즉 자아는 만물의 중심이 되고 거기에 따라오는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는 질투와 시기의 원인이 된다. 이런 현상은 고린도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성경에는 이 공격에 대한 해결 방법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 교만하면 누구든지 망한다(잠 16:18). 또한 하나님도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물리치신다(약 4:6, 벧전 5:5).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를 깨고(시 51:17)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겸손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안 바뀌면 절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살아야 한다. 영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었으면 계속해서 새롭게 바뀌어져야 한다. 그래서 참된 영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을 ‘새 신랑, 새 신부’라고 부른다. 결혼 전까지는 낡은 사람들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구태여 새 신랑, 새 신부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새롭게 가정을 꾸린 후부터는 이제까지 살아왔던 각자의 삶의 방식과 습관으로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 새 신분을 가지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습관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새 신랑 새 신부가 되는 것이다.

세례 받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례를 받으므로 세례 받기 전의 정과 욕심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장사되었으므로 세례 받은 후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그러므로 세례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로서, 영의 사람으로서 새로운 질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낡은 생각과 고정관념, 잘못된 습관과 옛 생활들을 철저히 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은혜, 새로운 질서로 살아야 한다.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삶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는 나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높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는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특히 우리는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성도의 소속은 하늘나라임을 기억하고 우리의 목적과 가치관과 의식구조 모두가 다 하늘나라의 백성다워야 한다.

또한 우리 자신은 무능하고 연약하므로 간절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야 한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약함은 강함인 줄 알고 자아와 교만을 버리고 낮아져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8)마귀의 최대 목적은 이간질하는 것이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주님의 종과 성도, 부모와 자녀, 부부, 주인과 종)를 갈라놓으려 한다. 욥의 가정도 마귀의 이간질로 인하여 상상할 수 없는 처참한 고난을 당하였다. 특히 속여서 이간질하기 때문에 이 사단의 궤계를 잘 분별하여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마귀는 속이는 자(요 8:44)이기 때문에 속이는 일을 잘한다. 어떻게 하든 성도들을 속여서 미혹에 빠지게 하고, 함정에 빠뜨려 넘어지게 하고, 자빠지게 하고, 망하게 하고, 죽이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귀의 궤계를 잘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속고 만다. 더욱이 잘 속이려는 ‘긴급한 일의 횡포’를 부린다. 이 ‘긴급한 일의 횡포’는 모든 상황을 급하게 만들어 성도들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믿음을 혼미하게 만들고(고후 4:4) 결국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낙심’, ‘의기소침’, ‘영적 침체’에 빠뜨려 성도들을 늘 넘어지게 한다. 이 낙심이 극대화되면 엘리야 선지자가 로뎀나무 아래에 가서 죽여달라고 간구한 것처럼 자살을 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낙심의 궤계는 사단이 가장 아끼는 무기 중 하나이다. 낙심의 궤계는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너무 쉽게 속기 때문에 이만큼 가장 보편적으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 무기가 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마귀는 성도들을 무조건 넘어지게 하고 자빠지게 한다. 여기에 늘 깨어 기도하므로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과 성령께서는 늘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일어나 가서 외치라”(욘 1:2), “일어나라. 함께 가자”(마 26:46)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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