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슬람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이슬람교(Islam)

  

1. 한국의 이슬람 현황

 

유엔 통계조사국에 의하면 2006년 현재 세계인구의 약 25%인 15억 명 정도가 무슬림이라고 한다. 지역적으로는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에 이르는 소위 중동지역과 옛 동부 소련(중앙아시아), 터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서부, 중국, 인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한편 북미지역과 유럽 지역에도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있으며. 기타 한국, 일본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무슬림이 분포되어 있다. 이슬람이 한국에 전해진 것이 고려시대라는 설이 있다. 고려 가요 중, '쌍화점(雙花店)'의 가사 "쌍화점(雙花店)에 쌍화(雙花)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에서 '회회아비'가 아라비아 사람(回敎徒)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 무역항인 예성강 하류의 벽란도는 이슬람 지역을 비롯해 각국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북적이는 국제 무역도시였다. 당시 이슬람인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지금의 개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고유 의상과 언어, 문화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이슬람 사원도 건축했다고 한다.

 

              

                   

                                     경주 괘릉 무인상                              악학궤범에 나온 처용탈

 

한편 아랍인들이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들어왔다는 설도 있다. 8세기 통일신라 원성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경북 경주 괘릉 앞에 세워진 8척 무인상은 서역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도 신라 왕실에서 일했던 서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질 문화가 배척되면서 이슬람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슬람의 한국 전파가 본격화 된 것은 6.25 전쟁 중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군을 통해서이다. 그들 중 일부가 전쟁 중에 천막으로 이슬람 성원을 세우고 한국인에게 이슬람을 전했다. 그 결과 1965년에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가 조직되어, 1967년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 법인으로 등록하고, 1976년 한국 정부와 아랍 이슬람 국가의 지원으로 이태원 서울중앙성원이 준공되었다. 현재 서울성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이와 같은 성원이나 이슬람 센터가 인천, 수원, 부산, 광주, 전주, 안산, 안양 등 지방 여러 곳에 있다. 2009년 8월 12일자 인터넷 한국일보 기사 “이슬람의 편린들 그 베일을 벗기다”에 의하면, 한국이슬람교중앙회측은 국내 이주 무슬림 인구가 10만-20만 명, 한국인 무슬림은 3만 5천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76년에 세워진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2. 이슬람교의 배경과 무함마드(571?~632)

 

꾸란에 의하면 하나님(알라)은 세계를 창조하셨고, 그 이후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아담이다. 아담의 후손은 노아에 이르고, 그는 셈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셈족의 기원이 된다. 셈족의 후예들은 아브라함까지 연결된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아라비아 일대에서 성장하게 된 그의 후손들이 무슬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들 이스라엘까지 하나님께 바치는 순종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 순종에서 이슬람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스마엘의 후손 가운데 6세기에 무함마드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세계는 한마디로 무지몽매함 그 자체였다. 사막이라는 환경에서의 삶은 한시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종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책임의식을 갖지 않았다. 기본적 산물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산적 떼가 출몰하고 그것이 자연적인 생존 방식이 되었다.

 

6세기경에 이르러 아라비아의 중심 도시인 메카의 정치적 파국과 통치기관의 몰락은 이 일반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술 취함과 방탕이 다반사였고, 무절제한 충동이 난무했다. 당시에 풍미했던 종교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방관만 하고 있었다. 온통 애니미즘적 다신론으로 묘사된 종교들은 황량한 사막에 '진'(Jinn)이라 불리는 동물적 정령들이나 악마들을 살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잠재적인 내면적 성찰은 전혀 가능성이 없었고, 돌연한 분쟁과 피의 복수만 계속되는 가운데 세상은 구세주를 갈망했다. 그 무렵 코레이시 부족에 속하는 하쉼 가문의 일원으로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다(570년 경).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백부 아부탈립의 밑에서 자라났다. 무함마드는 성장한 후에 시리아로 상인을 이끄는 삼촌을 따라 곳곳을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는 새로운 문물을 많이 보았다. 특히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인의 종교생활을 직접 보았으며, 또한 비잔틴 제국의 문물을 본 것은 그에게 커다란 자극과 감명을 주었다.

 

무함마드는 부유한 과부인 하디자의 고용인이 되어 성실히 일한 결과, 25세 때 40세의 이 부인과 결혼하고 6명의 자녀를 두지만 딸 하나만 살아남고 모두 죽었다. 그는 동굴에 은둔하여 명상에 힘쓰던 중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통하여 "너는 주의 이름으로 외우라"는 명령과 함께 계시를 받았다. 이 첫째 계시를 받은 것이 무함마드의 나이 40세였다. 그 후 그는 52세가 될 때까지 계속 환상을 보며 계시를 받았다. 무함마드는 그 모든 계시를 받아서 외웠다. 그가 외우는 것을 그 뒤에 친구들과 추종자들이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꾸란이다. 그가 히라산 동굴에서 최초로 하늘의 계시를 받은 후 맨 처음 그의 아내 하디자가 무슬림이 되었다. 이처럼 가족들을 통해 가르침을 확산하던 중, 무함마드는 613년부터 공적인 장소에서의 가르침을 시작했다. 그러나 메카의 집권자인 코레이시족의 박해가 날로 심해지자, 622년 9월에 메카 북방에 있는 메디나로 피난하게 된다. 이 메디나 행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라고 하며 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3. 이슬람 경전 꾸란

 

이슬람 최고의 경전인 꾸란은 보통 '순나'와 '하디스'로 나누어지는데 순나는 무함마드의 생애와 교훈 그 자체를 말하고 하디스는 순나를 해석한 주석서이다. 꾸란은 신약성어의 4/5정도의 분량이다. 그 외의 경전으로 '토라'(모세의 율법), '수우읍'(선지자의 글), '자부르'(다윗의 시편), '인질'(예수의 복음서) 등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함마드는 40세 경,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서 천사 지브릴을 통해 처음 계시를 받았는데, 그가 610년 이후 23년간 알라에게 받은 계시를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 꾸란이다. 무함마드가 죽자마자 이후 제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 시절에 꾸란을 한 권으로 만들고자 시도하였고,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은 꾸란 결집위원회를 조직하여 최종적으로 집대성 작업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내용이 잘못된 필사본은 모두 폐기하고, 정통본을 암송자인 하피즈와 함께 이슬람 각지로 파견하여 전파하도록 했으며, 이것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꾸란의 정본(定本)이다. 또한 이것을 달리 '이맘본' 또는 '오스만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쓰이는 꾸란은 이 정본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

 

 

꾸란

 

무슬림들은 알라의 계시가 아랍어로 계시되고 기록되었기 때문에, 꾸란을 아랍어로 이해할 때만이 그 의미에 가장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원뜻을 훼손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슬람교는 다른 언어로 번역된 꾸란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어로 번역된 꾸란도 ‘한국어 꾸란’이 아닌 ‘꾸란의 한국어 해설’로 불린다. 한국에는 1980년 김용선 교수가 펴낸 《한역주해 코란 역편》과 최영길 교수의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 번역본으로 나와 있지만, 아직 완벽한 한국어 꾸란 번역본은 나와 있지 않다.

  

4. 교리와 사상

 

이슬람의 신앙은 '이만'(믿음), '이바다트'(수신) 및 '이흐산'(덕행)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만과 이를 실행하는 이바다트는 개인적인 수련이기 때문에 이흐산을 하기 위해서 먼저 갖추어야 한다. 이만은 이슬람 신앙이 진리라고 마음으로 믿고 혀로 고백하는 것으로, 이슬람 교인들은 공식적인 신앙의 선언인 여섯 가지 조항 1)알라, 2)천사, 3)성서, 4)예언자, 5)최후의 심판과 부활, 6)정명(定命)을 믿어야 한다. 이바다트에는 1)신앙고백, 2)예배, 3)자카트(종교세), 4)단식, 5)순례 등 다섯 가지의 수련이 있다.

 

1)신앙의 여섯 교리 : 이만

(1)알라 : 알라는 아랍어로 신, 하나님을 말한다. 이슬람 신앙의 기본은 우주의 창조자이며 보존자, 전지전능자이며, 선악의 조정자, 마지막 심판자인 알라의 명령에 복종하는 데 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의 순종이라면 이슬람에서는 종과 노예의 관계에서의 복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은 유일신 종교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2)천사 : 이슬람은 '가브리엘', '미가엘', '이즈라일'(죽음의 천사) '이스아휠'(마지막 날 죽은 자를 깨우는 나팔을 부는 천사)로 구분하며, 무함마드에게 신의 계시를 전해준 천사는 가브리엘이다. 꾸란은 가브리엘이 처녀였던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가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을 예언했다고 전한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는 두 천사가 있어서 한 천사는 오른 쪽에서 그 사람의 선행을 기록하며, 다른 한 천사는 사람의 왼쪽에서 악한 행실을 기록한다고 믿는다.

(3)성서 : 성서에는 모세의 오경 다윗의 시편, 예수의 신약성서, 무함마드의 꾸란이 있다. 이 네 권의 성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래는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꾸란을 제외한 3권의 성서는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수정, 삭제, 가필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꾸란만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한다.

(4)예언자 : 꾸란에 언급된 예언자의 이름은 28명이다. 28명의 예언자는 모두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으나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 혹은 예언자, 또는 경고자로 불린다. 특히 예언자와 알라의 사도의 개념을 구별하여 전자는 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이고 후자는 신의 말씀을 책으로 인간에게 전달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예수는 특별한 선지자에 해당된다. 그가 기적을 행한 것은 하나님이 보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는 그의 모양으로 변신한 다른 사람이라고 하며, 예수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시실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5)최후의 심판과 부활 :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주가 소멸시킬 날이 심판의 날이며, 살아난 인간들이 모두 창조주 심판 앞에 서고 각각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활의 날에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무덤에서 부활한 육체에 영혼이 들어오면 다시 생명을 부여받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승천한다고 믿는다.

(6)정명(定命) : 모든 만물의 움직임과 정지, 변화, 발전 등은 신의 섭리, 즉 그의 계획이며 뜻이라는 것이다. '인샬라'(알라가 뜻하는 대로!)

 

2)신앙의 다섯 가지 수련 : 이바다트, 다섯 기둥

 

(1)신앙고백(샤하다) :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사성)이다" 이 두 구절은 무슬림이 가장 빈번하게 읊는 말이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와 임종 시에 읊는 말이기도 하다. 이 두 구절만 믿으면 명목상으로 누구나 무슬림이 된다(꾸란 4장 136절)

(2)예배(살라트) : 무함마드 생존 시부터 세계의 모든 무슬림은 일정한 시간에 메카의 카바를 향해(키블라) 행한다. 금요일의 집단 예배 참가는 모든 성인 남성 무슬림에게는 의무 규정이다. 그들은 '이맘'(집단예배 인도자)의 인도 하에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듣는다. 이 예배 의식은 자유방임적인 아랍족에게 절제 있는 질서의식의 확립에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또 혈연적인 연대의식을 대체하여 교우간의 형제애를 함양하였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신호는 '무에진'(예배하러 오도록 부르는 사람)이 이슬람 사원 건물의 뾰족탑에서 신자들의 집합을 알리는 구절을 큰 소리로 읊음으로써 시작되는데, 이 부름은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구절로 시작되고 종결된다.

 

 

매일 이슬람 세계의 모든 남성을 신실하게 기도의 자리로 부르는 무에진의 목소리가 하루 다섯 번 울려 퍼진다.

 

예배하기 위해 무슬림들은 기도 전에 반드시 정결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신에게 예배하는 것 이외의 다른 생각을 모두 떨쳐버렸음을 상징한다. 예배동작은 먼저 차려 자세로 서서 기도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알라는 위대하다"와 '샤하다'(신앙의 증언)를 읊은 후 곧 꾸란 제 1장과 다른 장을 외운 후 허리를 굽혀 절하고, 그 다음 앉아서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두 번 큰 절을 한 후 다시 일어선다. 경건하게 서 있는 자세는 자비를 호소하는 것이며, 허리 굽혀 절하기는 신의 위엄에 압도당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 전체를 한 '라카트'(엎드림)라 부르는데 새벽에는 2라카트, 정오에는 4라카트, 오후 4시에는 4라카트 해진 직후에는 3라카트, 잠들기 직전에는 4라카트의 예배의식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3)자카트(종교세) : 꾸란은 신실성에 대한 외적인 징표이면서 구원의 수단으로써 '자카트'를 정기적으로 낼 것을 명한다. 자카트는 자발적인 것과 의무적인 것으로 구분하며, 후자는 개인 소득의 1/40을 지불하여 이슬람공동체의 재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카트는 세금이 아니고 '신에 대한 대여'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국가에 의해 징수되고 이슬람을 위해 갖가지 목적에 사용된 일종의 세금이며, 이 돈으로 빈민이나 과부 또는 고아를 구제하고 노예가 자유를 사는 것을 돕고, 성전을 위한 병사를 양성하는 데 사용한다.

 

  

▲라마단 기간 중 기도하는 무슬림들

  

(4)금식 : 꾸란에서는 금식을 꼭 지킬 것을 말하고 있다. 금식기간은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의 30일 동안의 낮 시간이 모두 해당된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이슬람 신자가 아닌 외국인이라도 금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먹거나 마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외국인들이 먹거나 마시려면 금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떨어져야 한다. 라마단은 무함마드가 꾸란의 계시를 최초로 받은 달이며, 예언자의 군대가 메카의 적에 대해 첫 승리를 거둔 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 중의 군인, 여행자, 어린이, 노약자나 건강이 나쁜 사람,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여성, 월경 중인 여성, 중한 병자 등은 금식의 의무가 완화된다. 하지만 이후에 라마단 기간 중에 금식을 하지 못한 일수를 반드시 채워야한다. 금식은 신자들에게 인내와 자제력을 가르치고, 소외된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금식은 또한 신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금식의 계율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개인적인 과실과 악행을 속죄하고, 천국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금식 기간은 신앙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5)순례(하지) : 순례는 12월에 행해지는데 무슬림은 일생에 한 번은 메카로 거룩한 여행을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지역에서 무수한 신자가 메카로 모여듦으로써 이슬람에서만 있을 수 있는 동포해가 싹트며, 같은 복장을 한 순례자들에게 신 앞에서는 빈부귀천, 인종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게 된다. 순례의식의 시작날인 이슬람력 12월 8일 메카에 들어간 순례자들은 곧장 카바 신전에 가서 그 '검은 돌'에 입을 맞추고 신을 찬양하는 기도문을 외우면서 신전 주의를 일곱 번 돈 후 가까이 있는 두 개의 작은 언덕 사이를 일곱 번 달려서 왕복한다. 9일에는 순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메카에서 약간 떨어진 아라파느 평원에서 거행되는 데, 아브라함이 우상숭배자들에 반대해서 취했던 엄숙한 의례를 행한다. 10일에 거행되는 희생제는 전 세계 무슬림에 의해 경축되며 이 희생제가 끝나면 다시 메카로 귀환해서 카바를 일곱 번 돌고 부근의 언덕을 일곱 번 달리고 순례를 끝낸다. 이렇게 순례를 하고 고향에 돌아온 신자는 '하지'라는 칭호를 얻어 무슬림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게 된다.

 

 

카바 신전이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는 매년 약 200 만 ~ 300 만 명의 순례자가 모여든다.

순례자들은 메카의 중심인 카바 신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7번 도는 의식을 치르며, 가능하다면

신전의 성묘에 입을 맞추거나 손으로 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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