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약,구약 중간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3. 마카비가와 하스몬 왕조기

안티오쿠스 4세의 유대교 박해는 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왕은 특별히 천성적으로 잔악한 바키데스에게 병력을 주어 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고문했다.

박해와 핍박에 대해 순교와 무저항으로 소극적이던 저항운동은 점차 적극적인 공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폭동의 불길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모데인이라는 마을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는 하스몬가의 마타디아스라는 제사장이 다섯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시리아의 한 관리가 이 마을에 찾아와 이교의 제사를 강요했다. 마타디아스는 거절했으나 배교한 자들을 죽였다.

이것을 계기로 마타디아스는 그의 아들들과 산으로 도망쳐 많은 유대인 열심파들과 합류하게 된다. 저항운동은 마타디아스의 세 아들 즉, 마카비라는 별명을 가진 유다(BC 166-16)와 요나단(BC 160-143) 그리고 시몬(B.C142-134)에 의하여 차례로 주도 되었다. 이들의 저항운동은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고 BC 165년 12월 25일 유다의 지휘 아래 성전이 청소되고, 재봉헌되고, 예배를 다시 드리게 된다. 안티오쿠스 4세의 뒤를 이어 당시 8살의 그의 아들인 안티오쿠스 5세가 왕위를 물려받으며 리시아스가 섭정을 하게 된다. 이 때 리시아스는 유다에게 관용을 베풀어 절기를 마음대로 지킬 수 있도록 완전한 종교적인 자유를 허락하게 된다.

핫시딤은 그들의 목표인 종교적인 것의 달성으로 마카비에 대한 후원을 멈추지만 유다는 종교적인 자유를 넘어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유다도 참패를 당한 후 BC 160년 엘랏사에서 살해되고 그 지도권은 요나단에게 넘어가게 된다. 요나단이 민족주의 유대인들의 지지로 지도자로 부상했을 때 시리아는 왕권의 문제로 여러 사람들이 경쟁을 하며 음모를 꾸미던 시기였다.

BC 153년 데메트리우스 1세(BC 162-150)와 알렉산더 발라스의 정쟁에서 두 사람은 요나단을 서로 끌어들이려고 했고 요나단은 발라스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발라스의 승리가 굳혀지고 요나단의 푸른 계절이 도래한다.

발라스는 요나단을 왕의 친구로 부르게 되고 자주색 옷과 금관을 보내오게 된다. 요나단은 왕과 제사장을 겸하게 된다. 한편 발라스는 왕위에 오르자 술과 여색에 탐닉하게 되고 부도덕한 행실이 잦아지자 백성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당시 이집트의 왕이던 그의 정적 데메트리우스 2세가 왕위를 주장하며 발라스를 공격하여 전투 중 발라스는 살해된다. 수리아 제국의 통치자로 데메트리우스 2세가 등극하고 그동안 요나단은 힘을 비축하게 되고 외교적 수완으로 권세를 누린다.

수리아는 분쟁을 계속해서 겪으면서 알렉산더 발라스의 아들이 수리아의 왕으로 추대되니 그가 안티오쿠스 6세다. 이 때 실세는 수리아의 장군인 트리포였고 왕위를 노리던 트리포는 수리아 왕좌와 가까운 요나단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요나단을 초청하게 된다. 아무 의심 없이 성내로 들어오던 요나단과 경호병들은 체포되어 처참하게 살해되고 만다. 요나단의 뒤를 이은 사람은 마타디아스의 둘째 아들인 시몬으로 그 집단의 지도자로 추대될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나와 나의 형제들과 그리고 우리 가문이 율법과 성소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한 사실과 우리가 치른 전쟁과 고통이 어떠했는가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위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나 하나뿐입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절대 내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형제에 비해 조금도 나은 점이 없습니다. 나는 내 민족과 성소를 위해 그리고 여러분의 처지를 위해 원수를 갚을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이 지금 우리를 없애버리려고 중오심에 불타 모여 있습니다.

시몬은 지도자가 되면서 헬라파와 하시딤 그리고 마카비파를 통합했으며 수리아의 합법적인 왕이던 데메트리우스 2세 협정을 체결한다. 데메트리우스는 유대를 독립적 동맹국가로 인정하고 유대인들을 모든 조세에서 면제하여 주고 정치적 독립을 허락한다. 유대인들은 시몬에게 절대군주의 지위를 제공하고 국가 통치자의 직위를 그 가문에서 세습하도록 결정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다른 신실한 예언자가 일어나기까지 시몬이 계속해서 대제사장이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고 그 또한 그를 받아들여 대제사장직에 오른다. 오니아스가에서 세습되어 오던 대제사장직이 그가 파면된 후 이제 하스몬 계통에서 세습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유대는 독립적인 국가로 세워지고 대제사장이 민간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군사 지도자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시몬은 로마와 협정을 체결하고 욥바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1번 국도를 장악했으며 절대군주의 상징인 자국의 주화도 발행하게 된다. 그는 유대인 배교자와 이교도를 추방시켰으며 술사들을 교수형에 처했다. 시몬이 통치하던 시절에 대하여 바카비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시몬이 다스리는 동안 유대 땅은 평온한 나날이었다. 그가 마음 쓴 것은 자기 민족의 행복 뿐으로 날마다 백성들은 그의 권위와 영광을 환영하고 기뻐했다. 그는 욥바를 취하여 자기 항구로 만들었고 해로를 터놓았으며 영토를 넓혔고 온 나라를 안전하게 다스렸다. 백성들은 평화롭게 자기 땅을 가꾸었고 노인들은 거리에 나와 이야기꽃을 피웠으며 젊은이들은 화려한 군복을 입고 다녔다. 시몬은 여러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고 무기를 공급하여 방위를 튼튼히 했다. 그는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고 이스라엘에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사람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았으며 모든 원수들이 그 땅에서 사라졌다. 시몬은 연약한 백성들에게 힘을 북돋아주었고 스스로는 율법을 엄수하면서 율법을 저버린 자들과 악한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고 기물들을 많이 갖추어 놓았다.

시몬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노력과 계획의 열매들을 즐길 만큼 오랫동안 살지 못하고 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BC 135년 시몬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여리고 평원의 요새를 시찰하던 중 환영 만찬에 참여했다가 왕위를 노리던 사위 프톨레미에 의해 그의 아들들과 함께 살해되고 만다. 그의 부인 또한 인질로 잡혀 있다가 살해된다. 마카비가의 영웅적인 헌신과 희생은 BC 165년부터 BC 135년까지 유대를 살리고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유다와 엘르아살은 전쟁터에서 죽었고, 요한과 시몬 그리고 요나단은 반역자에게 살해된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조그만 도시국가인 예루살렘이 통일왕국으로 성장하고 성전은 이교도로부터 정결케 되고 유대인은 다시금 대제사장과 세습 군주를 갖게 되고 종교적 자유를 누리며 정치적 독립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어서 하스몬 왕조하의 유대인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하스몬이라는 말은 하스몬가에 속했던 마타리아스와 그의 아들들의 가족명에서 유래하게 된다. 프톨레미는 그의 장인과 처남을 죽이고 왕위를 얻고자 했으나 시몬의 셋째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가 도피하여 살해의 음모에 대한 경고를 받으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이 아버지가 담당했던 대제사장의 직임을 받게 된다.

수리아의 공격으로 유대는 위기에 처하나 수리아에서 또다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므로 이스라엘은 강세를 유지하게 된다. 힐카누스의 통치는 괄목할만한 것으로 솔로몬 시대의 지역을 확보하며 31년간 통치를 하게 된다. 힐카누스는 주화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최초의 유대 군주가 되며 번영을 누리다가 BC 106년에 사망하게 된다.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런데 그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야망가로 친헬라적이며 그리스문화를 장려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모친을 투옥하여 아사시켰고 형제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했으며 한 형제는 구금했다. 그는 자기 형제의 죽음을 멀리하려는 고뇌 속에서 죽게 된다. 그는 죽기 전에 그의 계승자로 자기 부인을 지명하게 되고 부인인 알렉산드라는 시동생인 알렉산더 얀내우스를 해금하여 대제사장에 임명하고 얼마 후 그와 결혼하여 그를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 그 또한 인물됨이 잔악했으며 야심가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미 힐카누스에게 대제사장직을 내놓으라하여 사이가 좋지 않았고 더욱이 다윗의 후손이 아닌데 왕으로 자칭한 것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알렉산더 얀내우스가 그 형제의 미망인과 결혼한 것에 대해 대제사장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으로 바리새파 사람들의 노여움을 가중시켰다. 얀내우스는 차츰 종교적인 직분보다는 왕권의 강화와 주변국을 치는데 주력했으며 급기야 장막절 제사에서 제주를 땅에 쏟으므로 제의를 의도적으로 모욕하게 된다. 백성들은 분노하여 그에게 항의하고 화가 난 그는 군대에게 명하여 바리새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게 된다. 백성들은 그를 혐오하게 되고 그가 죽은 후 왕권은 그의 부인이었던 알렉산드라에게 넘어가게 된다. 알렉산드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바리새인들과 함께하며 태평성세를 누리게 된다. 알렉산드라는 9년간 나라를 통치하면서 신하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그녀는 바리새인들을 중용했고 유대교 예식을 회복시키며 성전 유지를 위한 인두세를 부과하고 모든 유대인 자녀들에게 의무 교육을 실시한다. 알렉산드라는 왕좌에 앉으면서 그의 큰 아들 힐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에 임명했다. 힐카누스는 바리새파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들의 세력은 차츰 커졌다. 이로 인해 곤란해진 사두개파는 작은 아들인 아리스토불루스 2세를 충돌질하게 된다. 알렉산드라가 죽자 아리스토불루스는 군대를 동원해 여리고 근처에서 그의 형을 격퇴시키고 왕과 대제사장이 되어 BC 66년부터 BC 63년까지 계속 통치하게 된다.

동생으로부터 축출된 힐카누스는 이두매의 안티피터의 후원과 충돌질 속에 재기를 꿈꾸게 되고 결국 형제간의 싸움은 로마를 자연스럽게 팔레스틴에 끌어들이게 된다. 성은 함락되고 왕권은 또다시 힐카누스에게 돌아가고 아리스토불루스는 로마로 압송된다.

지금까지 설명된 마카비가와 하스몬 왕조하에서의 유대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대인들의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얻게 된다. 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왕위 다툼으로 인한 외세의 세력을 끌어들임으로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마카비가의 영웅적인 투쟁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얻어진 자주권과 독립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팔레스틴에 세력을 갖고자 했던 로마의 패권 정책이 유대 자국의 내분으로 인하여 쉽게 연결되게 되고 역사의 한 정점을 향하여 줄달음치게 되었다.

4. 로마 통치기

로마의 세력이 자연스럽게 팔레스틴에 들어오고 주도권을 쥐게 된 안티파터는 폼페이 장군을 지지하다 BC 48년 그의 몰락을 보면서 시저를 지지한다. 그 결과 시저는 안티파터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고 로마 시민권까지 주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너무 의존하는 안티파터를 싫어했고 열광적인 유대인에 의해 그는 독살당한다. 유대는 그의 큰아들인 당시 유대 군대 사령관이던 파사엘에게 넘겨졌고 작은 아들인 헤롯은 갈릴리 분봉왕으로 있었다. 이 때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인 안티고누스는 그의 왕위 계승권을 시인해 주는 파티안스의 지지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대제사장으로 있던 힐카누스와 파사엘은 옥에 갇히게 된다. 파사엘은 자결했으나 헤롯은 피신하여 로마로 가게 되고 거기서 유대 왕으로 임명되어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미 유대를 차지하고 있는 안티고누스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는 로마의 도움으로 안티고누스를 죽이고 드디어 헤롯 대왕으로의 통치를 시작하게 된다. 헤롯과 그의 아들들이 통치하는 동안 헬라화 정책은 급진적으로 추진되었으며 헤롯은 많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불루스 3세의 여동생이며 힐카누스 2세의 손녀이며 마카비 왕가의 공주인 마리암네와도 정략적으로 결혼하기로 했다. BC 20년에 시작한 예루살렘의 새 성전 건축도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고자 의도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헬라적이며 에돔인이었던 그의 생각과 신분은 유대인들을 기쁘게 할 수 없었다.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던 헤롯은 자기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대제사장에 앉혔다. 그것도 세습제도를 철폐했다. 헤롯은 곳곳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헤롯은 정권 때문에 가족내에 암투를 벌여 부인과 아들들까지도 살해했다. 역사에 남는 잔인함은 BC 6~5년으로 추정되는 때에 베들레헴에서 유아 학살 사건이다.

그 잔인하던 헤롯도 34년의 통치를 마감하고 BC 4년에 죽는다. 헤롯이 죽자 갈릴리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이곳은 그 이후 유대 민족주의의 온상이 되었다. 갈릴리의 폭동은 헤롯의 큰 아들 아켈라우스가 학살을 단행함으로써 위축되고 말았다. 그는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 총독이 되었으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항의로 로마 정부에 의해 추방되고 말았다. 헤롯의 손자 헤롯아그립바 1세가 유대 왕으로 통치한 3년을 제외하고는 이 나라는 로마 총독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헤롯의 둘째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는 신약성경과 제일 밀접한데 불법으로 결혼했다. 그는 침례 요한을 처형했으며 예수를 심문했던 인물이다. 아랍 공주와 이혼하여 전쟁을 치렀고 왕위를 박탈당하고 추방당했던 사람이다. 헤롯의 셋째 아들인 빌립은 아들 중 최상의 통치자로 예수는 바리새인들의 증오심 때문에 이 지방으로 잠깐 피신한 적이 있다. 총독들은 세금을 징수하고 주둔군을 통솔하며 재판업무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활동 시대에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10년간 총독으로 있었으나 유대인에 대하여 잔인했다 하여 AD 36년 고울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그 뒤에도 헤롯 아그립바 1세와 2세 그리고 여러 명의 총독들이 유대인들을 통치하게 된다. 실제적으로 헤롯의 손자인 아그립바 1세가 유대의 왕으로 통치한 3년을 제외하고는 (AD 41-44) 이 나라는 로마의 총독들에 의하여 통치 되게 된다. (AD 6-66) 이 기간 동안에 유대의 민족주의는 점점 강하게 뻗어 나갔으며, 특히 로마인들의 통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던 제롯당의 생각과 행동으로 드디어 AD 66-70년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난다. 원인은 총독인 플로루스가 성전의 보물창고에서 일부를 탈취하자 유대인들이 격분하여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아그립바 왕의 자체 진압이 실패하고 수리아 총독의 원정 진압도 실패하자 로마에서 보낸 티루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고 만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대교의 동질성을 상실케 되고 그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구심점이던 성전 제사가 멈춰지고 유대교의 영향력있는 계급이던 제사장직이 소멸되고 유대인들의 영향력 있는 기관이던 산헤드린이 잠적하고 만다.

그 뒤 주후 115년에 또다시 독립의 시도가 있었으나 트라얀 황제의 진압으로 살육의 전장으로 팔레스틴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궤멸되고 로마 제국 전역에 산재한 유대인들은 혹독한 제한 조치를 받게 된다. 팔레스틴은 이교도가 번성하며 유대교의 종식을 맞게 된다.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싸움은 이로써 끝이 났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지고 말았다. 그러나 헬레니즘이 강압적인 힘만으로 유지될 수 없었듯이 유대교도 군대의 힘으로 멸절시킬 수는 없었다.

어떤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종교와 사상은 주변 여건과 환경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되고 그 흐름을 형성하여 나간다. 로마 통치하에서의 유대인들은 지중해를 내해로 하는 강력한 세계적 국가를 이룬 로마 속의 한 집단으로 그들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고 사상적으로는 헬라문화의 계속적인 지배하에 있게 된다. 또한 억세게도 자신들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수호하기 위하여 몸부림 쳤으며 민족주의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하여 생명을 내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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