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경과 죄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성경과 죄

  

아더 핑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아무런 영적 유익을 얻지 못했다고 믿는 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부언하자면 말하기가 몹시 두렵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사실 이것은 아주 심한 말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요구하는 것보다 심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선물은 오용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비도 남용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는 것은 그 열매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도 과학을 탐구할 때와 동일한 열성과 기쁨을 갖고 성경 연구에 임할 수 있고 , 흔히 그렇게 한다. 그럴 경우, 성경에 대한 그의 지식은 늘어나고, 그의 자부심 역시 늘어난다. 과학자가 아주 흥미로운 실험에 참여할 때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지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은 그 탐구를 통해 무엇인가를 발견할 때 무척 기뻐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후자의 기쁨이 전자의 기쁨보다 더 ‘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과학자의 실험 성공이 대개 그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자기보다 한 수 아래인 사람들을 얕보게 하는 것처럼, 성경에 나타난 숫자, 예표, 예언 및 그와 비슷한 다른 주제들을 깊이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

 

 

 

우리는 다양한 동기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문학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 어떤 집단에서는 성경을 모르는 것이 교육적 결함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개략적인 지식을 얻는 것이 고상하고도 일반적인 일이 된다. 또 어떤 이들은, 여타의 다른 유명한 책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 성경을 읽는다. 또 다른 이들은 자기가 속한 교파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 그들은 자기 교단의 특별한 신조들에 정통하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여기고 ‘우리의 교리’를 입증해 줄 구절들을 부지런히 찾는다. 또 다른 이들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목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영적 성장에 대한 갈망도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혼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말씀이 주는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이 이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제공해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에 생략된 것들에 주목하라.,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지적 만족’이나 ‘세상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온전케 함으로써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다른 성경 구절들의 도움을 받아 이 가르침 더욱 발전시켜 보자.

 

 

 

 

 

 

1.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부패를 드러내고 타락상을 노출시키며 사악함을 알려 주는 것이야말로 말씀의 첫 번째 기능이다.

 

 

 

어떤 사람은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완벽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의 가슴과 양심에 말씀을 적용하셔서 죄를 보지 못하던 눈을 열어 하나님을 향한 그의 태도와 관계를 알게 하실 때, 그는 “화로다 내가 망하였도다” 하고 절규하게 된다.

 

 

 

참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나니...”(눅 5:31).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이 병자라는 것을, 그것도 죽을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성령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씀을 적용하실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우리가 죄가 우리 안에 만들어 놓은 끔직한 참회를 절감하는 것은 회심 직전에 겪는 초기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느끼게 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적용해야 할 첫 번째 기준이 있다. 성경에서 여려 사람들의 실패 사례를 읽을 때, 나는 자신이 안타깝게도 그들과 얼마나 같은지를 깨닫는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되고 완전한 생애에 관한이야기를 읽을 때, 나는 자신이 비참하게도 그분과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는가?

 

 

 

 

 

 

2. 자신의 죄를 슬퍼하게 된다

 

 

 

성경은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마 13:20-21)라고 말씀한다. 반면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죄를 깨달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그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행 2:37)고 말씀한다.

 

 

 

동일한 대조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설교나 강론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진리를 듣는다. 그런 강론은 말하는 사람의 뛰어난 웅변술과 지적인 기술을 보여 주지만 대개는 양심에 호소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을지 모르나 아무도 그 강론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기거나 하나님과 더욱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신실한 주님의 종이, 가장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경험했던 비참한 실패를 보여 주는 성경의 교훈을 우리의 성품이나 행위에 적용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럴 경우 많은 이들은 그 설교자를 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게 하는 그 메시지에 감사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하고 부르짖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f때도 마찬가지다. 성령께서 그런식으로 말씀을 적용해 주실 때, 우리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타락상을 깨달아 참된 복을 받게 된다. 예레미야 31장 19절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당신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성경 공부를 통해 심령이 상해 하나님 보좌 앞으로 겸손히 나아간 적이 있는가? 성경 공부가 그런 식으로 당신의 죄를 알려 주어서 당신이 매일 회개하면서 그분 앞으로 나간 적이 있는가? 유월절의 어린 양은 반드시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했다(출 12:8). 그러므로 우리가 실제로 말씀을 먹을 때, 성령께서는 말씀의 ‘단 맛’을 알려 주시기 전에 먼저 ‘쓴 맛’을 보게 하신다.

 

 

 

요한계시록 10장 9절에 나오는 순서에 주목하라.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리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경험상의 순서는 늘 그렇다 위로를 받기 전에 애통함이 있어야 하고(마 5:4). 높임을 받기 전에 낮아짐이 있어야 한다(벧전 5:6).

 

 

 

 

 

 

3.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성경은 책망하기에 우익하다(딤후 3:16). 따라서 정직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세상적인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나와 같은 죄인을 긍휼이 여기소서”하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이 우리를 소성케 할 때마다 우리에게는 생생한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나며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새로운 회개가 일어난다(시 119). “자기의 지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가슴에 숨기는 자는 형통하거나 과실을 맺을 수 없다(시 1:3).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자만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될 것이다.

 

 

 

고백하지 않은 지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은 참된 의식의 평안을 누리지도, 참된 마음의 안식을 얻지도 못한다. 평안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털어놓을 때 찾아온다. 다윗의 경험을 주목하라.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 당신은 이런 은유적이지만 강력한 표현을 이해하기가 어려운가? 아니면 당신의 영적 경험이 이것을 잘 설명해 주는가?

 

 

 

성경에는 개인적인 경험 외에 그 어떤 주석으로도 설명되지 않은 구절들 많다.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구절은 참으로 복되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4. 자신의 죄를 미워하게 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 97:10). “우리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바를 미워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악을 피하고 그것을 계속하기를 거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하며 의분을 품고 대적해야 한다”(챨스 스펄전).

 

 

 

회심했다고 고백한 사람을 시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죄에 대한 그의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마음속에 거룩의 원리를 지닌 사람은 거룩하지 않은 모든 것을 혐오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악을 미워한다면, 말씀이 우리가 악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책망하실 때 감사할 것이다.

 

 

 

다윗의 경험이 그와 같았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쳘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119:104). 잘 살펴보라. 다윗은 단순히 “내가 삼가나이다”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내가 미워하나이다”하고 말한다. 또한 “몇 가지”나 “수많은”이 아니라, “모든 거짓행위”라고 말한다. 또한 “모든 악함”이 아니라, “모든 거짓행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28). 이것은 악한 자들의 다음과 같은 태도와 정반대되는 입장이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시 50:7).

 

 

 

잠언 8장 13절에서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대하는데, 이런 경외심은 말씀을 읽을 때 생긴다. 신명기 17장 18-19절을 보라.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다음과 같은 적절한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죄가 미워지지 않으면, 그것은 극복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죄가 참으로 혐오스럽게 느껴지기 전까지, 당신은 결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죄를 대적해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할 것이다(에드워드 레이너,1635).

 

 

 

 

 

 

5. 자신이 죄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무엇이 주님을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는지 알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성경을 읽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그분과 일치할 경우, 우리는 그만큼 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즉 “진리 안에서 행하는”(요삼 4)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귀중한 약속들이 소개되고 있다. 성령께서 그 약속들에 대해 하시는 말씀에 주목해 보자. 성령께서는 “이 약속을 가졌으니 편안해 하고 만족을 누리자”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하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 여기에 우리가 그것에 비추어 자기를 점검해야 할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나의 행실을 깨끗하게 만드는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하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시 119:9)이다. 그렇다. 단순히 성경을 읽고 믿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의 행실에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악과 실제로 결별하는 것은,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4).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이것들을 피하고”(딤전6:11),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딤후2:22) 등과 같은 권면에 세심할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가능하다. 죄는 고백해야 할 뿐 아니라 “버려야”(잠 28:13) 하기 때문이다.

 

 

 

 

 

 

6. 죄에 맞서 방어전을 쌓게 된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우리의 타고난 죄성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롬 2:23) 수많은 행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 방법과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은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욥 22:22).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명령이자 경고이며 권면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모든 말씀을 자기 것으로 듣고, 소중히 여기며, 암송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밭에 잡초가 무성치 않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곳에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그리스도의 말씀이 네 속에 ”풍성히“(골 3:11)거할수록,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죄가 가동할 여지가 더욱 줄어든다. 성경의 진실성에대해 동의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성경을 애정을 갖고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배교(背敎)의 근거와 관련해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함이니라“(살후 2:10) 하고 말씀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성경이 혀나 정신에만 있어서 단지 말이나 사고의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땅 표면에 떨어진 씨앗은 이내 공중에 나는 새들에게 먹힐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깊이 숨겨라, 귀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게 하라. 더욱 깊은 곳으로 스며들게 하라. 우리가 성경을 애정을 갖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우리 마음을 압도적으로 지배할 때뿐이다. 즉 우리가 그 어떤 욕망보다도 성경을 소중히 여길 때 비로서 그것은 우리에게 들러붙게 될 것이다”(토마스 맨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7:31)라는 고백처럼 사랑으로 수용된 하나님의 말씀 외에 그 무엇도 우리를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지켜주고 사탄의 시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효과적으로 죄에 맞서게 해주지 못한다. 진리가 우리 안에서 양심을 일깨우며 활동하고 참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당할 때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그의 가슴에는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욕망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멸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형언할 수없는 거룩함이며 전능한 능력이다.

 

 

 

우리 주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시험을 받을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듣겠느냐”(사 42:23). 그렇다. 우리는 다가올 비상사태에 대비해 마음속에 말씀을 쌓아두어야 한다.

 

 

 

 

 

 

7. 죄를 거스리게 된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하나님이 “너희는 할지어다”하고 말씀하시면 죄는 “나는 하지 않을 거야”하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이 “너희는 삼갈지어다”하고 말씀하시면 죄는 “나는 할거야”하고 말한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기 길로 가도록 만든다(사 53:6).

 

 

 

죄는 영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무정부 상태이며, 하나님의 면전에서 반역의 붉은 깃발을 흔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반대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무법의 반대가 법에 대한 순복인 것과 마찬가지다.

 

 

 

죄를 거스르는 훈련을 하려면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길을 알려 주는 것이다. 성경은 책망을 바르게 하는 일뿐만 아니라 “의로 교육하기에도” 유익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그것에 비추어 수시로 자신을 점검해야할 또 다른 주요한 원칙이 있다. 나의 사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에 형성되고,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려지고, 나의 행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가?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uy Now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Terms of UsePrivacy Notice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

Home
Gospel
Question
Blog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