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히브리서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3. 히브리서는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4:14 이하, 8:1과 10:20-21에서 나타나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대제사장이 계시며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다. 저자는 예수님의 인격 및 사역의 탁월성을 대조, 비교를 통해 말한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라는 말이 2:9에 처음 나오는데 그분의 사람되심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용된다. 예수그리스도는 구원사역에 있어서 구약의 제도를 완성하신 분으로 제사 제도는 그림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실체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단번의"(once for all) 사역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물질로 된 성전과 모든 제사 행위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좇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다. 모든 피조물은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구약의 말씀과 제도들은 실체가 올 때까지의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실체가 올 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또한 그림자는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실체는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실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1:1) 이다. 이제는 더 이상 눈으로 보는 것만을 좇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과거나 지금이나 비교 우위를 추구하지만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라면 그분이 절대 비교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약하며 죄에 찌든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사역의 우월성을 논증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임을 말하고 있다. 다른 대안은 없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히브리서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성경은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히브리서의 수신자들도 역사적 현실 앞에 직면해 있었다. 의심의 먹구름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어지럽힐 때 그들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종교·사회·정치적 압박을 이기기 보다는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촉구한다. 이것은 인생의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하는가를 믿음으로 결단해야 한다는 외마디 부르짖음이다. 보이는 현실보다는 엄위하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시퍼렇게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영원한 것에 삶의 뿌리를 내리라는 촉구이다. 히브리서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논쟁하는 것만이 아니다. 믿는 자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과 삶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촉구한다. 보이는 현실에서는 안전한 것 같지만 영원에서는 가장 위험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 현실에서는 위험하지만 흘러 떠내려가지 않는 영생과 안식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전자를 선택하면 무서운 저주와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독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랑하는 형제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이리 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경고와 함께 간곡한 권면으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한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의 위대한 삶을 제시하면서 독자들 역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는 인간의 연약함을 충분이 이해하기에 인간들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나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핑계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자고 말한다. 독자들은 자기의 연약함이나 죄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거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제시한다. 아는 것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정보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구상의 여러 잡된 정보(종교적 정보 포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끊임없이 말씀해 오셨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으므로 옛날 정보와 최신 정보 사이에서 독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옛 버전을 고집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최신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계시의 최신(그리고 유일한) 버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지식은 삶에 유형 무형으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자신에게 솔직히 직면하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지식도 자기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피상적인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깨달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우리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소개한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자신을 노출시켜야 된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관계를 갖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 히브리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4:14, 8:1). 우리와 관계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히브리서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참지식이 아니며 쓸모 없다고 말한다. 히브리서가 절정으로 올라가면서 믿음과 인내를 강조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믿음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믿음은 예수님과의 신비한 연합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보이지 않는 예수님,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헛수고라고 말한다거나, 살아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며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오늘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바른 관계를 믿음의 삶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히브리서를 읽는다면 거기에서 시퍼렇게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차원높은 믿음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머리(지식, 사상, 논리)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슴(관계, 사랑, 믿음) 때문에는 죽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굳게 잡을지어다"(히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