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성결은 믿음으로 순간순간 주를 의지함으로써 유지되는 완전이다.
하나 더 고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웨슬레가 성결한 신자도 무지, 실수의 가능성 등 인간의 연약성(infirmities)을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성결(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이면에서 많은 학자들이 웨슬레는 불가능한 가능(impossible possibility)을 말한다고 비판한다. 웨슬레는 주장하기를, 성결한 신자는 무지, 실수의 가능성 등 인간의 연약성을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정죄함 없이 거룩한자(성도)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사람이 그런 연약성을 지니고 죄악 세상에서 살려면 범죄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사실상, 범죄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웨슬레의 성결론은 하나의 이상(ideal)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성급한 성결론 자들은 이런 반론에 응수하기를, '실수(mistake)는 죄가 아니라고 변명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알 것은, 양자 모두 웨슬레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변론이다. 이런 질문이나 반론은 웨슬레의 신학방법론을 이해 못하고서는 해답될 수 없다.
웨슬레는 그의 설교에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짓는 죄 곧 유의적 죄(자범죄, The voluntary transgression of the known law of God)를 주로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신자가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죄도 죄라고 인정한다. 이를 전자와 구분하여 '무의적 죄 (The involuntary transgression of the perfect law of God)'라고 불렀다. 이 죄는 자신이 알았던 몰랐던 간에 하나님의 법을(the perfect law of God, known or unknown)범한 죄다. 이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 없이는 하나님의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고 웨슬레는 말한다. 혹자가 웨슬레는 자범죄 만 인정하고 후자는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어찌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 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웨슬레에 의하면 성결의 은혜를 받은, 완전한 기독자(the perfect)도 그들의 연약성으로 인하여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완전한 자라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웨슬레는 말한다. 그러면은 루터가 말하는 대로 신자는 의롭다 함을 받아도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attor)이라는 의미인가? 신자는 성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인가?
여기에 양자의 입장이 아주 흡사한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웨슬레는 논리적인 추리나 추상적인 접근(speculative approach)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그의 신학적 인간론에서 그랬듯이, 구속론적인 콘택스트에서 무의식 중에 범죄 하는 신자의 무의적 죄(involuntarytransgression of the perfect law of God)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레는 성결한 자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순간 순간 의존하는 순간 그가 무의식 중에 범하는 죄는 우리 죄를 씻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성결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죄에서 계속 씻으시는 것이다. 웨슬레는 '신자의 회개'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신을 사랑하여...당신의 죄를 그의 몸으로 친히 감당하신 예수를 계속하여 믿으시오! 그는 항상 효험 있는 그 보혈로 인하여 당신을 모든 정죄 함에서 구원하십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은 상태에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 . .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나에게는 순간 순간 당신의 죽으심 의 공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주여,
나에게는 순간 순간 당신의 죽으심 의 공로가 효험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의 중보의 기도를 믿음 으로 말미암아 순간 순간 새로워져서 아주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 리에게는 지금 정죄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 활을 깨끗하게 씻으시므로 전에 있었던 형벌에 대한 두려움도 지금은 없기 때 문입니다.
바로 이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순간 순간 우리 위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느낍니다. . . 이 믿음에 의해 우리는 영적 생활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웨슬레는 무의적으로 범죄 하는 신자의 고백과 믿는 자에게 효험 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험과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함을 강조한 것이다. 바울이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처럼.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종교개혁자들보다는 보다 더 깊이 그리고 다이내믹하게(dynamic)보는 은총의 낙관주의자였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의 차이는 우리의 생명력 있는 눈(eyes)과 물질인 안경(eye glasses)에 적절히 비유된다. 안경은 아무리 철저히 물로 닦아서 써도 조만간 먼지가 안는다. 청결함을 유지할 수가 없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물질을 다루듯이 이 교리를 접근하면(thing-thinkingapproach in theology), 신자는 순간적으로 씻음을 받아도 그 성결을 유지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눈은 먼지가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정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은 먼지가 눈에 안 들어와서가 아니라, 이 눈에는 눈물이 항상 흘러 먼지를 씻기 때문이다. 성결한 자가 자신의 연약성 때문에 무의식적인 죄를 범할지 몰라도 그가 그리스도를 계속 의지함으로 주의 보혈의 효험으로 계속 씻음을 받아 성결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웨슬레의 이해는 바로 이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레가 말하는 성결한 삶은 신자가 자기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내재적인 죄와 자기 무능을 회개하며 예수를 믿음으로 온전히 성결 해 질 뿐 아니라, 바로 그 믿음으로 순간 순간 주를 (회개와 믿음으로) 의지하고 걸어감으로 유지되는 성결이다. 따라서 성결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다. 이는 소극적 의미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 두려운 없이 서게 할 뿐 아니라, 적극적인 면에서는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아가는 헌신과 사랑의 삶인 것이다.
3.5. 교회 갱신과 부흥의 원동력이 된 성결론
이와 같이 웨슬레가 그의 구원론에 있어 성화론을 강조함으로 신자와 교회의 생활에서의 새로워짐을 촉구하게 되었다. 18세기의 교회의 갱신과 사회변화는 바로 이 효과를 역사적으로 증명한다.
웨슬레가 주장한 온전한 성화(성결) 또는 기독자의 완전은 신자를 향한 도전이었다. 신자는 모름지기 초보의 믿음에 머무르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깨끗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의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설교의 메시지는 18세기 영국 교회와 사회를 부흥케 하였다. 이런 운동은 19세기 미국에서의 성결 오순절운동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이런 성결의 메시지와 강조는 명목상의 신자 (nominal Christians)들이 성령 충만의 생활을 추구하게 하였다. 이 성결의 메시지는 명목적인 신자들로 가득 차있는 오늘의 교회에 큰 도전과 호소가 될 것이다.
IV. 맺는 말
간단히 요약해서 웨슬레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격하여 선교하는 도장에서 형성 된 것으로, 그의 신학과 설교 메시지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웨슬레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세계를 나의 교구로 여긴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전도할 것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의 선행적이요 계속적인 역사로 인하여 인간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 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이해함으로 웨슬레는 설교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강조와 동시에 사람의 책임을 아울러 주장했다.
두 번째로, 웨슬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외치되, 사람과 교회 및 사회를 변화 시키는 성결론을 중심 하는 구원을 외쳤다. 그가 강조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이었다. 삶과 사회를 변화 시키는 성결의 복음이었다. 우리 죄인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안에 마련하신 구원은 온전한 구원, 온전한 복음 (the whole Gospel, Full Gospel)이다.
최근에 로잔 세계복음화 운동에서 보듯이, 우리 (모든 교회)는 온 세계에게 복음을 전하데,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을 전하여야 한다. 이렇게 새로이 재발견된 복음운동에서 우리는 웨슬레의 메시지가 메아리치고 있음을 본다. 이런 메아리는 오늘의 강단에서 다시 울려 18세기,19세기에서 보았던 뜨거운 부흥과 교회와 사회의 갱신을 보게 되기를 기원한다. 끝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