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배냐, 거짓 예배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 23-24절)
1996년 8월 둘째 주간에 타코마에 있는 PLU(Pacific Lutheran University)에서 재미 한국어학교 연합회 세미나와 총회가 있었다. 그 모임에 참석한 대표들 절대다수가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11일 주일에 PLU 소강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 예배 시간이 아침 7시에 시작하여 30분 동안에 마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예배를 집례하게 되어서 예배 장소에 막 들어가는데 강당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한 분이 나에게 “오늘 설교하실 목사님이십니까?”라고 묻고는 내가 그렇다고 하자 댓바람에 하는 말이 “30분 안에 모두 마쳐주셔야 합니다. 설교는 10분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강단에 서서 첫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자칫하면 형식적인 예배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다니는 본교회도 아니고, 먼 곳에 회의차 참석하여 주일을 맞았지만 빨리 눈 산에도 구경을 가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도 가야 해서 모두가 마음이 어수선합니다. 단지 주일이 되었으니까 예배를 안 드릴 수는 없어서 이렇게 참석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 예배는 형식적 예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형식적 예배를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으시겠지요. 또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는 가인과 같이 동생을 쳐죽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신다면 우리는 아벨과 같이 형에게 맞아 죽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것을 더 원하십니까?”
그러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렇게 하고서 예배를 시작하였다. 물론 설교도 10분 정도로 하면서 예배를 30분 안에 마쳤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 예배를 은혜롭게 역사해 주셨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아까 그분이 나에게 죄송했다고 사과를 하였다.
하나님은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왔지만,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들떠보시지도 않으신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없는 예배가 된다. 예배는 내 기분에 맞추어서 드리면 안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를 잘 드린 것 같아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1. 하나님이 왜 참 예배자를 찾으실까?
1)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곧 가짜가 많아서 진짜를 찾으신다는 말이다.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제사가 6,000년 전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누가 바른 제사를 드리는가를 보신다. 소돔성에서는 의인 열 명이 있는가를 찾으셨다. 그러나 그곳에는 의인들이 없었다. 그래서 비참하게 멸망되고 말았다.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를 찾으셨다(렘 5:1). 불행하게도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유다 나라는 비참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2) 하나님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예배라고 하면 문자적으로는 하나님께 절을 하는 것이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부르면 아들이 얼른 대답하듯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응답할 때에 비로소 대화가 이루어지고 사귐이 생기고 사랑이 생긴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부르셨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항의할지 모른다. “하나님이 언제 엘리를 부르셨느냐? 성경에 그런 말씀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엘리를 부르셨지만 엘리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다. 죄가 커서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하였던 어린아이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는 그가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따라서 대답할 수 있었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음성을 엘리의 음성으로 착각하고 엘리에게로 세 차례나 갔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하겠다.
3)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찾으신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시는 분이 아니다. 반드시 복을 주신다. 구체적으로 어떤 복을 주시는가? 시편 103:3-5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복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여 천국의 복락을 누리며 살게 하신다.
② 우리의 병을 고치주시는 복이다.
육신의 병은 물론이고, 마음이 병든 것, 영혼이 병든 것, 생각이 병든 것, 가정이 병든 것, 나라가 병든 것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고쳐주신다.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나의 병든 상태를 아뢰고 깨끗이 고침을 받자.
③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복이다.
시편 37:4에도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노래한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의 맛을 본 사람들은
더욱 기도에 힘쓴다. 기도하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고, 복되고, 귀하다(찬송 364장).
우리도 모두 기도에 더욱 힘쓰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④ 우리의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춘 시절을 세속적인 욕심으로 채워서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간다.
그러나 복을 받은 사람은 청춘의 때에 신령한 은혜의 길을 찾아 높이 비상한다. 전도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옳다.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면 우리의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해주신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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