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므온(들으셨다)-참된 들으심은 하나님 안에서!
창세기29:33
1. 베냐민(보라 아들이라)은 참된 아들이 누구냐는 것을 질문하게 합니다. 야곱의 첫부인 레아를 통해서 낳은 시므온은 참된 들으심의 방법은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질문합니다. 먼저, 그의 출생의 내력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에 주목합시다. 첫아들을 낳고, 보라 아들이라!고 하여도 야곱이 사랑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부관계는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시므온’(들으셨다)고 하는 것은, 다시금 야곱에 대한 관심의 촉구라고 하겠습니다. 그저 육신적인 것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일종의 영적인 협박을 한 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33절)고 합니다. 인간적인 연민과 애련을 갖게 하지만, 이런 레아의 모습은 적절하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부르짖어야 하는데, 남편의 사랑을 위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응답이어도 참된 응답을 못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 이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르우벤의 성품은 안정적이지 못하였다면, 시므온의 성품은 다혈질적이고 거칠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심이 만만치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형 대신에 자기가 뭔가를 주도하려고 하는 성품이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둘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2. 가령 예를 들자면, 막내동생 디나가 세겜성읍의 왕자 세겜에게 욕을 당하였을 때(창34장), 형 르우벤은 가만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세겜성읍을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은 시므온과 레위였고, 그중에서도 시므온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디나와는 레아를 같은 어머니로 두고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한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창34:31) 하였을 때, 야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조부나 부친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셨던 예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야곱이 당당하게 책망했어야 했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야곱의 자녀양육은 큰 문제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는 꿈이야기를 하면서 형들이나 부모까지도 자기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그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형은 시므온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어떻든 살려보려고 하였지만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는 일에 앞장섰던 형이 시므온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지만, 나중에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선 이 형들 중에 가나안 집으로 다른 형들은 돌아가지만, 시므온은 감옥에 남겨 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한데, 유대인들의 전통이 강하게 전승되어온 탈굼역본에 의하면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3. 시므온의 후손들의 성격도 시므온과 유사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땅에 입성하기 바로 직전에 벌어진 유명한 사건들 중에 하나가 고스비사건입니다. 싯딤이란 곳에 머물러 있는 중 발람 선지자의 유혹을 받아서 가나안예배(바알브올숭배)에 이스라엘사람들 몇이 참석하게 되고(민25장),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모압 여자 고스비를 데리고 진중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이 ‘시므리’이고,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민25:14)라고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므온족속의 범죄는, 레아가 그 이름을 짓는 맥락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면서 ‘여호와께서 들었다’ 하면서 그 이름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또한 시므온이 세겜주민들을 살해하면서 할례언약을 빙자하였던 것처럼, 이곳 싯딤(바을브올숭배장소)에서도 음란한 우상숭배에 참여한 것으로서 변질된 예배였습니다. 시므온지파의 죄가 그저 단순한 죄가 아니라, 더욱 깊은 죄였습니다. 예배를 가볍게 하고 경홀히 여기는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4. 이런 성향을 간파하였는지, 야곱은 죽을 때(창, 시므온을 향해서 축복아닌 축복을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니라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7). 나눠지고 흩어지는 모습입니다. 이름이 “들렸음”인데, 그의 수고와 노고가 전혀 들림이 안 된 모습입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서 떠나는 각 지파의 인구수를 보면, 시므온 지파는 떠날 때는 군인들만 5만9천3백명이었는데(민2:13), 여행을 마칠 때쯤에는 2만2천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민26:14). 모세의 축복이 선포되는 신명기33장에는 시므온지파에 대한 언급조차 없습니다. 또한 각 지파가 가나안땅에 제비뽑기를 통해서라도 그 몫이 배정될 때에도 시므온지파에게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제비를 뽑기는 뽑는데, 유다지파의 기업 중에서 그 몫을 갖게 되는 방식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자기들 지파만의 토지가 분배되지 않은 것입니다. 유다지파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백명씩 집단을 이뤄서는 유다지파의 지경을 넘어서(세일)까지도 흩어지곤 하였습니다(대상4:42-43). 아사왕 때(대하15:9)와 요시야왕 때(대하34:6)의 기록을 보면, 나중에 북이스라엘지파에 흡수되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유다지파의 기업에서 흩어져 있어야 하는데, 북이스라엘의 10지파의 구석구석으로 흡수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도 결국 잘못된 예배를 따르고자 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소망이 별로 없는 지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땅의 기업을 물려받는 일에 있어서는 흩어져 버려서 그 기업을 상실해 버린 지파였지만, 하늘의 기업은 물려받는 지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요한계시록7장을 보면, 14만4천명 중에서, 1만2천명이 바로 “시므온지파 중에서” 계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7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6.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대제사장의 흉패에 보석같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기도에 의해서 지킴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우선적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단지파의 경우에도 흉패에 새져져 있었는데, 14만4천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면(그 이유는 나중에 살펴볼 것입니다!), 이것 외의 다른 이유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시므온지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므온의 길을 갔는지는 몰라도, 그 안에 소수의 사람들 중에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숫자를 1만2천명으로 헤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아사왕때나 요시야왕때에 남유다왕국, 곧 그들이 원래 있어야 할 그곳으로 되돌아오거나 개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사사기1장3절을 보면, 유다지파와 함께 가장 먼저 정복전쟁에 앞장섰던 지파가 시므온지파였습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진정으로 회심하고 거듭나서 참된 예배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부르짖고 참으로 응답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땅한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면서, 주의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태어나서 8일만에 정결례를 행하게 될 때, 예루살렘에 있었던 노인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시므온과 안나인데, 안나의 경우 아셀지파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시므온은 지파이름이 안 나옵니다. 그 이름으로 지파이름을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몬 베드로의 이름, 시몬이 바로 시므온의 헬라어 형태입니다. 동일한 이름이란 뜻입니다. 바울이나 사울이나 같은 이름인 것과 같습니다. 사실, 시므온지파 중에서 유딧같은 가경상의 인물도 유명하지만, 저는 시몬 베드로가 시므온지파를 대표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버려진 지파였지만, 이렇게 주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아서 주님의 교회와 나라에 기초석이 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흩어진 자들 가운데서도 주님이 불러 모으신 자들로서 말입니다.
4. 레위(연합)-참된 연합의 원리
창세기29:34
1. 레위는 야곱의 첫 번째 부인 레아의 세 번째 아들입니다. 레위는 ‘연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뜻의 이름을 붙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분명히 나옵니다: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연합’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 번째인 유다를 낳기까지는 말입니다. 유다는 ‘찬양’이라는 뜻인데, 나중 12지파중에서 메시야가 출생하는 지파가 된다는 면에서, 유다를 거쳐서야 레위가 진정한 연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연합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사실, 레위와 레위지파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바로 이 참된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대제사장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연합의 원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2. 먼저, 지난 번에 살펴보았던 야곱의 저주, 둘째 시므온과 함께 세겜성읍을 살해하는 살인극에 동참하였다가 받은 저주를 살펴봅시다: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49:7). 나눠지고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래서 유다지파 가운데서 나눠지고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유다지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모세는 시므온을 언급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나눠지고 흩어지는 측면에서는 레위지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나눠지고 흩어지는 것은, 저주가 아니고, 오히려 축복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눠지는 그런 의미로서의 나눠짐이고 흩어짐입니다. 여섯 개의 도피성과 48개성읍을 배당받습니다(수20-21장). 모세는 이렇게 상당히 길게 예언합니다: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위에 드리리로다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신33:8~11절). 그 양으로 치자면 유다지파에 대하여보다 더 많고, 요셉지파에 대한 축복과 버금갑니다. 그 내용으로 보자면, 우림과 둠밈, 부모자녀형제를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그들과 더불어 세속의 일들보다는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일, 곧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데 헌신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런 지파를 향하여 재산이 풍족하고 대적자들을 대적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전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3. 어떤 이들은 모세와 아론이 레위지파였기 때문에, 이것은 특혜였었다고 합니다. 편파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집에 종으로서라도 충성스러웠던 모세에 대한 보상이었다고도 합니다. 역사적인 사례를 든다면, 시내산정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금송아지숭배에 빠져들며 방자히 행하였을 때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는 모세의 말(출32:26)에 레위지파가 다 모여 우상숭배자들 3천여명을 죽인 신실함이나, 싯딤에서 바알브올의 우상숭배에 빠진 시므리와 고스비를 배를 꿰뚫어서 죽였던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헌신(민25:8)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 일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모세의 말 속에서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듯이, 그들은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신33:8)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투었던 자들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하나님과 다툰 자들, 하나님과 시비를 걸고 싸웠던 자들입니다. 맛사의 경우(출17:1~7, 므리바라고도 함)에는 반석을 한 번 칩니다. 므리바의 경우(민20:1~13)에는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지 못하고 혈기 때문에, 모세 자신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버립니다. 이 두 사건을 두고 시95편8절에서는,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고 하는데, 신약성경 히브리서3장15절에서도 인용하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다툰 지파였던 것입니다. 이런 예들이 많이 나옵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민12:1-3).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가 르우벤자손과 더불어서 당을 짓고는 모세를 거스렀습니다(민16:2). 사사시대에는 더욱 타락해서 레위지파 사람으로 인하여 지파간 전쟁까지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다윗의 시대에는 다윗을 대적하여 압살롬을 편들다가 자기꾀가 안먹혀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살을 하고 맙니다(삼17:23). 말라기서 전체는 이 구약의 제사장지파인 레위지파와 하나님께서 다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야곱)을 사랑하시고 에돔(에서)는 미워하셨는데, 왜 너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4. 신약에서의 결정적인 다툼은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을 대적하여 바로 레위지파의 제일 마지막 끝에 있던 안나스와 가야바가 다투었습니다. 이들은, 다윗시대에 아비아달의 길을 거부하고 사독과 더불어서 다윗과 솔로몬을 끝까지 따랐던 사독의 후예들이지만, 시대를 따라서 변질되어버려 사두개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다투면서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그 제일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님을 심판하는 중, 가야바는 자신의 옷을 찢으면서 신성모독하였다고 예수님을 사형판결을 내리고, 세상법정으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5.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싸움과 다툼 가운데서 매번 치심을 당하였던 반석은 그렇게 내침을 당하시는 중에, 레위지파의 모든 불의와 죄를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레위지파만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지만, 레위지파가 그것을 대표하였습니다. 제사장지파였기 때문입니다. 레위지파를 대신하여, 모든 백성들, 모든 자녀들을 제사장으로 삼기 위해서, 그리하여 제사장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출19:6)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전 작정과 예정, 그 기뻐하시는 뜻에 그 이유가 있고 원인이 이것에 있는 것입니다. 레위에게, 혹은 모세에게, 아론에게, 이 지파에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서 싸우기만 하고, 놀라운 특권을 주었는데도 그 특권을 악용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싸울 빌미만 찾고 있던 자들이 레위지파였습니다.
6.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순종했던 구약의 인물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희미하게 나마 자기 지파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상하신 계획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믿었습니다. 소망하였습니다. 모세는 두말할 것도 없고, 비느하스, 에스겔선지자 같은 이, 사독같은 이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바나바이고 그 사촌인 마가 요한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그가 누구인줄 아십니까? 바로 우리 자신들이 레위지파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레위지파요,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이들은 이제 하나님과 다투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다투던 그 죄까지도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1만2천명의 성도가 되어서(계7:7),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며(계7:17; 14:4; ), 어린 양과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계22:5).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