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남자...내 팔자 펴야 정의(正義)다.
낙서노트 2010.01.27 13:45 자근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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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19. 받는 이 : [email protected]
1. 신이(딸)가 원하는 두가지 일을 해주다. 사회탐구 참고서 사다주는 일로 중앙동 대동서적에 왕래했고 오후 자율학습을 가정학습으로 대신한다는 확인서를 써주다. 대동서적에 갔다가 철학 인문 심리가 나란히 있는 코너에서 책냄새와 제목구경만 실컷하다 집에 사놓은 책을 언제 다 읽나 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 약간 그리고 한숨 절반 그리고 체념절반쯤을 하다. 이걸 다 버무려서 그릇으로 빚으면 귀신도 도망갈 거다. 으흐흐흐허이킬킬킬컬컬켈켈...........그러다 늑대로 변하고 말걸.
확인서 건은 참 우습다. 못믿겠다 못 믿것다 아무도 못믿겄다 하고 서로 서로 악을 쓰는 꼴이라니. 언어의 신뢰가 개인의 인격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배후의 힘에 의존되어 있다. 얼마나 탱탱한 돈의 근육이 버티고 있느냐에 따른다. 일단 못믿겠다고 질러놓고 돈의 힘이 다시 신뢰를 매겨줄 때 그것도 일시적으로 그때그때 잠시 나타났다가 금시 사라지는 형국이다. 그 사라짐을 있음으로 다시 조립하려는 눈물겨운 노동의 흔적들마저 돈의 힘은 다시 잠식 또 잠식하고야 만다. 아예 체념하고 그냥 놀아나야 편하고 정신차리면 차리는대로 놀아나면 놀아나는대로 자아는 환영처럼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유령놀이를 계속하고 신들린듯이 무엇에 몰두해서 미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미쳐야 산다. 살려면 미쳐라. 미칠 대상을 다오. 제일 싼 것 라디오 그 다음 텔레비 그 다음 영화 그 다음 휴대폰이나 엠피 갖고 놀기 신문이나 잡지보기 얄팍한 책읽기, 연애는 꿈도 못꾸지. 사치일 뿐이고 바라보지 못하는 꿈같은 것. 일용직 노무자에게 스키장이나 골프장 같은 것. 자본의 유령이 자비의 신으로 둔갑하고 천년묵은 여우마냥 환생해서 설치는 데가 교회. 오늘도 난 님(돈)보러 왔나이다 오늘도 나는 뽕(돈)따러 왔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게 하여 주시되 그저 대박나게 하옵소서. 수능대박 건강대박 가정화목대박 가문번창대박 사업대박 승진대박 여기서 반드시 이게 들어가야 맛이다. 나 빼고 다른 놈들 다 쪽박!
2. 비가 내린다. 비도 아내의 은유중의 하나다. 부슬부슬 청승맞게 내려야 옳다. 이게 아내의 은유가 내리는 정의다. 이렇듯 정의는 자기팔자에서 나온다. 내 팔자 펴야 정의다. 이 세상에 정의롭지 않은 인간 하나도 없다. 나보다 더 옳은놈 나와 보라고 해라. 아니라고 하면 그 놈이 나쁜 놈이다 서로 인정하지 내가 제일 옳다. 서로 서로 인정하고 서로 서로 세상에서 제일 착한 놈 되고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위선자가 되고 가장 자기밖에 모르는 살해자 살인자 된다.
그런데 다 죽으라고 한 그 대상 속에 자기 아들만 살려낸 신이 버젓이 살아 있고, 그 신의 주장이란 그 아들의 주장이란 ‘나 외에 옳은 자가 없다’이다. 세상을 악하다 증거했다 이다. 너 나 마음에 두기 싫지? 이다. 나 빛인데 너 어둠 맞지? 이다. 이 어둠을 비집고 톡톡 새순 돋듯이 튼살 비집고 새살 나오듯이 나오는 새 피조물, 곧 창조란 이제 증거자 혹은 목격자라는 방편으로 뿐이다. 도구라는 방편, 그릇이라는 방편, 전달자라는 방편, 웃음소리 와하하 웃어 내용만 남기고 형식을 안개처럼 흩날리고 사라지는 바람의 자식들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데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나를 나되게 하신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 따로 계셔서 이렇게 만들고 계셨군요...
3. 참을만하다. 견딜만하다. 약간의 우울 잠시의 격랑같은 울분, 다 나의 육의 일부요 육의 잔재요 함께 숨 끊어질 날까지 싸들고 갈 도시락같은 것이다. 내 세포 세포가 이런 지저분한 것 먹고 산다. 자아가 먹는 양식은 자존심 하나뿐이다. 그래 먹자, 썩을 양식이 아니던가. 이것조차 참된 양식인 피뿐임의 증거용으로 바닥에 지천에 깔려줘야 하는 먹어도 죽는 양식, 원망과 대듦과 대적의 흔적들로서 기쁘게 언약완성의 재료로서 말씀의 수거작용의 일부이다.
누룽지처럼 박박 긁어서 쓸어담으시는 주부의 섬세하고도 야멸찬 살림솜씨를 오늘도 믿자. 집안 살림 거덜날일 없다. 한푼도 허투루 새어나가지 않도록 틀어막아 한푼조차도 자기입으로 다시 되가져가시는 말씀성취의 공로회수의 권세에 이끌려 우리가 부활의 세계에 덩달아 회수당하고 있음의, 시간정지의 순간들을 맛보게 하옵시기를. 그래서 ‘내가 과연 이 나라가 내 나라아니다’ 하신 그분의 세계에 속한자인지를 확인해 주옵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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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달하는 그릇
아이들놀이터 2010.01.24 17:26 자근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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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이 "호박이파리"
오늘 여기 눈와
많이는 아니고 그냥 쏙쏙 빠지는 식으로 한 알 한 알 떨어지고 있어
하늘은 잿빛이고
여기 도서관 앞에 흐르는 하천의 물도 잿빛이고(이 물은 갯물이라 늘 저렇지)
저 물이 잿빛이라 그럴까 여기 새들도 색깔이 다 저래. 좀 칙칙하달까
이젠 제법 눈이 오네. 아까와는 또 다르게 보이는 눈.
이런게 인간이 뭔가를 관찰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한계라고...
잠시 전의 것을 관찰하고 표현한 그것은 이미 아까 것이고 지금것은 아니잖아.
지금 보는 태양이 지금 것이 아니라 빛이 달려오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8분전의 태양을 보는 거래. 예를 들어 빛이 150년 걸려서 도달하는 곳에 있는 별을 우리가 보고 있을라치면 그 별은 150년 전의 별을 보고 있는 것이지.
150년 전에 그 별이 이미 사라졌다면 그걸 아는데 150년 걸린다는 거야.
머리가 좀 아픈 이야기지.
그래서 플라톤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하는 것들로 알게 되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한것이지. 맨날 변하니까 맨날 달라지니까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흘러 오늘날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우리가 느끼고 맛보고 하는 그것 말고 또 뭐가 분명한게 있느냐? 그렇게 되었다고.
눈으로 보지 않고는 안되고 맛보지 않고는 안되고 느끼지 않고는 안된다는 거야.
뭐든 나에게 해당 안되면 다 없는 것이고 의미도 없지.
그게 요즘 사람들의 머리속에 든 생각이라고.
그런데 오늘의 세상에서는 눈으로 보고 맛보고 느끼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게 뭐냐?
돈이야.
왜 그런지 좀 설명이 필요하지
모든 것을, 세상의 모든 것들을, 국가라는 거대한 기관이 관리하고 통제해.
학교 병원 어른들이 다니는 모든 직장 혹은 애들이 다니는 유아원까지 다 그래. 동네 빵집이든 약국이든 다 그래.(이게 공산주의하고는 관리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나기는 하지.)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느냐
돈이 되는 쪽으로, 사람도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처럼 잘팔리는 물건,
높은 값을 받을수 있는 품질좋은 물건으로 만들듯이 관리하는거야.
그래서 가는데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러는거야
그 말은 어서 높은 품질의 인간, 높은 가격을 매길수 있는 질좋은 상품의 인간이 되어라, 그 말하고 같은 말이 되는 거지.
이게 말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돈되는 인간될수록 더 많은 것을 누리고(뭔가를 가질수 있고 또 줄수도 있고 또 다른 인간들을 부려먹기도 하고 하면서) 맛보고 느끼는 면에서 남과 차이지도록 한다고. 남과 자꾸 비교하게 만들어서 경쟁시키고 그 경쟁속에서 이긴자는 보너스를 주고 진자는 실망감과 패배감과 쓴맛을 보게 하는 이런 구조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생각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돈만 밝히고 원하는 거야.
사람이 다 돈으로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나도 돈으로 보이고.
만원짜리 지폐로 보인다는게 아니고, 이게 나에게 도움되는 인간이냐 손해되는 인간이냐 따지는 대상으로만 보인다는 거야.
왜? 돈 없이는 느끼는게 안되고 느끼는게 안되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거든
그래서 ‘나 누구야?’ 그 말하고 ‘나(우리부모재산) 얼마 가졌지?’
그 말 하고 같은 말이 되어 버린다고.
성경은 뭐라고 할까?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지.
인간은 예외없이 흙이고 안개라고 하고
언제든지 없어지고 말 대상이라는 거지(이런게 진짜 성경의 화끈하고도 멋진 거라니까)
성경말씀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낮추지.
우리 마음을 찔러서 쪼개고
내가 내 힘으로 살아온 것같은 착각을, 환상을
아주 고운 흙으로 잘게 부수는 것처럼 부수어서 환상을 깨주지.
그럼 산다는게 모야?
하나님이 그런 흙같은 인간에게 안개같은 인간에게 뭔가를 담아준다는 거야
환상을 깨고 부수어서 비워내고 말이야
하나의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어서.
뭘 담아주시고자 할까?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 몸을 내어준 그 사랑이지.
그 사랑은 돈없어도 되고 내 몸뚱아리가 죽어 없어져도 관계없이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지.
그 사랑만 진짜 사랑이라고 담아주셔서, 배달하는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사는 사람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짜 사람이고 그 외에는 사람이 아니라고(짐승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일 매일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담는 그릇으로,
사람같은 사람으로 빚으시고 만드시는 일에 수고하시는거지.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시는 사람은 새록새록 하나님의 수고가 담겨서
그 수고가 생각나게 하신단다.
'아하, 그렇지. 한시도 한순간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지 않은 적이 없구나.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나서 산게 아니구나'라고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지.
그 사랑을 전달하는 우편배달부처럼 매일 매일 눈뜨게 하시고 살게 하시고 매일 매일 할일을 지시하시고 하게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 사라져도 되고 언제 뭉개져도 될 흙의 운명이지만
그 사랑 안에서, 죽어도 사는 예수님의 영광과 한 운명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창밖에는 눈이 펑펑온다.
저 눈이 더 펑펑오든 아니면 내리다 그만두든지
수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별들이 그 운행을 멈추든지
혹은 태양이 빛을 잃든지
그게 수만명을 죽이는 지진이든 해일이든 지구의 멸망이든
혹은 남들이 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데
나한테만 찾아온것 같이 생각되는 어떤 불행같은 것이든지
그리고 정작 이 모든 세상의 움직임 뒤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껏 나몰라라 산 것도 관계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든 말든 관계없이
또 나만 잘살면 최고다 하면서 살았던 것이든지
나보다 이쁘고 착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하는 식으로
의기양양 산것이든 앞으로 그렇게 살든 말든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뭘 어쩌든지 일체 관계없이
나는 흙일뿐이고 안개일뿐이고 죄인일뿐이고 그 죄는 나보다 더 커서 알 수도 이길수도 없어 그저 죄인일 뿐인데
오직 사랑은, 오직 구원은 내 공로가 아니고 나대신 흘린 예수님의 피로만 됨을, 쉬임없이 그 사랑 또 사랑으로 찾아오심으로만 됨을 알게 하신다고.
----------------------------------------아빠가.
참, 작은 방 베란다 문 열어놓으면 방 추우니까 그거 잘 닫아야 돼
그 방은 외풍이 좀 심해서 공기를 따뜻하게 해야 된다고
손 잘 씻는것 잊지 말고
이 잘 닦는 것도
이런 사소한 것들 소홀히 하면 나중에 고생하게 되거든
공부든 뭐든 귀찮아도 사소한 것을 매일 매일 잘 챙기렴
그러면 시간이 희한하게 죽죽 늘어난단다
책 꾸준히 읽고.
게으르면 있는 시간도 오그라들어서 하나도 찾을수가 없게 된다고.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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