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의미

결혼의 의미

결혼의 의미


 


이미 혼인 관계에 접어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한 번도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혼관이 다르다. 현재 혼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결혼은 ‘이상한 짓’한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한다. 마치 남자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 갔다 오는 것이 이상한 짓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서, 누가 과거에 군대 갔다 왔다면, 약간은 특이하다. “거기를 왜 지원해서 갔다 오셨는데요?”라는 묻는 물음도 가능한 것이다. 즉 안 갈 수도 있는데 왜 가셨느냐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결혼관계에 적용시키면 이렇게 된다. “아직도 함께 사세요? 왜 아직 못 헤어지는데요? 불편해서 입니까? 상대방의 신선도가 이미 다 닳아져버렸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 아직 사세요? 자식 양육에 대한 부모로서 책임감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자식이 이미 출가했거나 같이 살지도 않는 날이 온다면 후딱 헤어질 용의가 있습니까?”가 된다.


30대가 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는 것은 결혼이 무섭거나 귀찮거나 결혼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군대는 이 나라 남자라면 강제로 보내지지만 결혼은 군대가 아니라 자신이 나서서 ‘가정’이라는 것을 새로이 만들어야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군대는 이미 ‘있는 조직체’에 합류하는 일이지만 결혼은 없는 단체를 자신이 주도하에 새롭게 만들어 낼 단체다. 예전에 있지도 않았던 단체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는 일이지만, 반대로 기존 있는 것에 눌러 앉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일이 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시집살이하고 장가드는 일’은 있어도 엄밀히 말해서 내가 주도하는 결혼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냥 대대로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가계를 존속시키는 기계로서 가담하는 것이 결혼 목적의 중추였다. 나의 가정이라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집안은 소멸시키지 않는 신종기계로서 몸을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혼관이 개인주의적 분위기로 인하여 의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나는 나를 위한 기계 이어야지 남을 위해서 내가 소멸되는 기계로서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자아가 나의 내부에서 버티게 된 것이다. 즉 이왕 혼인생활을 한다면 이 가정을 나를 위한 가정으로 돌려놓든지 아니면 이쯤에서 각자 자신을 위해 사는 여생을 보내든지 해야 할 판이다. 바로 기성 기혼자들의 이러한 의식 전환에 대해 아직 혼인관계 밖에 머물러 있는 미혼자들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나를 위한 결혼이 아니라면 결혼은 이상한 짓에 해당된다.”것이다. 낯선 이질적인 단체에 자신이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서 그 집안을 유지하는 기계에서 소모되는 동시에 그 집안으로부터 “너는 우리 집안의 정서와 이런 점에서 맞고 이런 점에서 안 맞다”는 일방적인 성토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집안의 어른들은 자녀들을 향하여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독촉을 하지만, 오히려 미혼자들이 기성의 기혼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논리로 계몽이 나서야 할 판이다. “엄마는 왜 자신이 젊을 때 무심코 저 질러버린 결혼 생활에 대해서 이제 와서 필연적인 것처럼 자꾸만 합리화하는 이유가 뭔데? 차라리 솔직하게 젊을 때는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 고 압력을 받았다고 왜 솔직하게 말 못하는데?”하고 따지게 된다.


기혼자들이 미혼자들에게, 결혼하게 되면 이러이러한 점이 유리하다고 설득하는 것은 마치 보험회사 영업직원이 고객들에게 다가서는 판촉 전략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보험 들여놓는 것이 좋다고 해고 다 보험 드는 것은 아니다. 여유가 있고 형편이 요청할 때만 보험 들게 되어 있다. 따라서 참으로 결혼이 전면적으로 미친 짓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 할 수 있으려면 애초부터 “애야,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너 좋거든 해야지 남들 다 한다고 덩달아 하지는 말아라”는 전제부터 필요하다. 달리 말해서 “네 인생, 네가 결정하고 네가 선택해서 사는 것이기에 결혼이기에 재미없다고 여겨지거든 즉시 살라서도 돼.”라는 조건을 필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정기적금도 다급하면 깨는 판인데…. 애초에 없었던 가정이 나 스스로 주도해서 새로 생겨난 것이기에 없애는 권한도 여전히 나 자신에게 주어져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그러면 성경은 이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경은 결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모두 복음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십자가 피 복음에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께서 결혼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식으로 덤벼드는 것은 그 어떤 결론을 가져가도 다 마귀적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도 않는 내용은 일방적으로 덤벼들고서는 왜곡해서 써먹는 격이 된다. 쉽게 말해서 성경은 결혼 제도를 통해서 복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는, “혼자 살면서 주를 섬기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고 (고전 7:40) 다른 하나는 “한 몸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은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조건에 묶여서 사는 것이 인간의 입장이다”는 것이다.(마 19:6) 따라서 주님도 결혼도 하기 싫은 사람이 아무리 혼자 살아도 지옥가고 있는 형편에서는 벗어날 길은 없다. 뿐만 아니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이혼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역시 하나님의 ‘한 몸 되게 하심’에 대한 불만 가득한 반발심이 폭발직전이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이 그러하니 꾹 참고 사는 것도 전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의 태도가 아니라 자기 의로서 하나님에게 시위하는 자이다. 뿐만 아니라 주를 위해 혼자 살겠노라고 스스로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나이 50 넘어 마음에 드는 남자나 여성이 나타났다고 덜렁 결혼해 버리는 것도, 그동안 하나님을 속여 왔음이 들통나는 순간을 보이는 경우다. 그러니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성도야, 결혼생활 자체에 신경 쓰지 말고 복음으로만 감사하고 기뻐하라”는 것이다. “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세상의 혼인제도란, 육이 육을 통해서 육을 유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 제도적으로 얼마나 정당화하는 짓들을 하는지를 발각시키는 일상 중의 하나이다. 결혼했으면 육적으로 하고 싶어서 결혼했다고 말하고, 결혼 안하고 있다고 육적으로 나에게 이용가치가 될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앗다고 말하고, 이혼했으면 상대 배우자가 더이상 나에게 이용 가치가 없다고 말하되 이런 핑계들을 영적으로 정당화하지는 말자.

The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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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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