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박온정 성도님의 글

환상과 현실-박온정 성도님의 글

 


개혁주의 신학은 환상이다. 아니라면 천사거나 유령이라는 뜻이다.


환상이 아니라면, 천사거나 유령이어야 한다.


 


세계기독교회사를 이제 이해할 것 같다. 복음이 그것을 알게 하셨다.


바울이 눈에 비늘이 벗겨진 뒤에 '안목'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그들은 한때 누군가에게 의해 사용되고 버려진 역사다.


거짓 역사다. 또는 물거품이다. 안개다. 풀이다.


습관적으로 되뇌였지만 진의는 뒤늦게 주어졌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시인들은 허무한 인생을 표현하기를 안개 또는 풀이라고 했다.


거품이라고 노래 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그들의, 기독교인으로서 저지른 만행들을 고발하고 있다.(예를들어 칼빈의 살인행각등)


나는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만행조차도 '이유 있음'으로 이해하려 애썼던 적이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겨냥하여 싸운다.


한쪽은 그것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 하고 자기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날을 세운다.


이단이 이단을 공격하는 양태로 진행되는 기독교라는 이름의 육의 역사다.


 


그 전통을 후학들이 잘 유전해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샤머니즘적인 면모를 자극하여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공유하는 현상, 그것이 '기독교'라는 이름의 기독교다.


 


이 세상조차 환상이라는 것을 알겠다.


한때 솔로몬의 타락의 끝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거울이 주어졌음을 알겠다.


끊임없이 삶이 환상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이라는 주연급 대상을 놓고 가르쳐 오셨다.


인생은 이스라엘을 부리는 분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면에서 인간은 환상의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노리개라는 뜻이다.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는,


'나는 나다' 하셨던 분.


모세를 통해 '스스로 있고 있는 이'라고 공개하셨던 분.


 


우리의 생은 모두 환상이고 오직 그분 자신만이 실재임을 드러내시고자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십자가의 피흘림을 통해 자신의 약속을 확증하셨다.


구약 역사의 무수한 증거들이 있지만 십자가의 피흘림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분만이 줄 수 있는 천국이라는 실재를 이스라엘이라는 모델을 통해 나타내셨다.


그 문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분의 명령에 의해서만 열린다.


 


우리의 몸은 환상을 사는 도구다.


이스라엘 역사는 그 몸의 환상을 믿지 말라고 주신 하나님의 증거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선악과'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영원한 도정에 있다.


그 길 위에서 버려지거나 택해지거나 한다.


그것을 사람은 일찍이 '운명'이라고까지 점쳤다.


 


인간의 내밀한 곳에 점지해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의 발로 탓이다.


그 작은 빛을 감지한 두뇌를 그것을 '운명'이라고 이름으로 신을 대신해 왔다.


 


개혁주의 신학이 환상이라는 말은 곧 나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거울이고 거울은 짝패의 원리를 제공한다.


인간의 누구나 피상적인 것들만 보는 것이다.


 


그들의 성화를 믿지 않는다.


왜?


나는 짝패니까.


 


인간에게 '성화'는 없다.


있다면 각기 다른 삶의 형태만 있을 뿐이다.


그 형태는 감자를 갈아 놓았을 때 가라앉았던 앙금으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허용된 '위선'은 곧 마귀의 함정이다.


하나님께서 허용한 마귀의 속임수를 믿어지게 했다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파놓은 함정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개혁주의가 환상이라면


인간의 모든 삶이 환상이라면


살 필요가 없는 건가?


자기가 살고 싶지 않다고해서 안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 짜놓은 구조에 갇힌 삶이기 때문이다.


세상 철학자들은 그러한 인간의 구조를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밝혀냈다.


 


인간은 또한 몸이라는 구조에 갇혀 있다.


환상인 것을 안 바울이 몸을 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는 비명이 곧 '곤고함'이라는 단말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갇히고


몸에 갇히고


몸이라는 구조에(껍데기) 갇혀 있으니 각자 삶의 형태에 갇히게 된다.


 


다른 게 있다면, 누군가는 버려지고 누군가는 거둬진다는 것.


신이 있고 악마가 있다는 것.


예수님이 있고 인간이 있다는 것.


어둠이 있고 빛이 있다는 것.


땅이 있다면 천국이 있다는 것.


 


 몸은 껍데기다. 흙이다.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시간(kairos)이 도래하면 그때는 언제일까.


우리는 지금 요한계시록의 시대 한 복판에 있다.


하나님의 시간은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확, 스며든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파의 시간은 알고 있다.


인간과 타협하지 않고 세우신 시간이었다면


그 오메가의 시간도 하나님 홀로 성취하실 것이다.


 택한 자들은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영광돌리고 살다가


그 오메가의 떄에 주님 재림을 볼 것이아고 한다.


 


자신이 욕망의 주머니라거나 껍데기라거나 안개라거나 풀이라거나


알아도 잊어버리고 살거나.


그러면서 '의무감' 또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수식하면서 살아간다.


누구도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결혼하고 자식낳고 사회에서 성공하고 물질을 모으면서 인생을 '안개'로 가득 채운다.


욕망의 덩어리는 죄의 덩어리라는 표현이다.


그것은 또한 신의 부재라는 표식이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어리석은 동물인 것이다.


 


마음껏 속여 살다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간다.


안개처럼 소멸된다.


끝까지 '안개'였음을 고백하지 않은 채 흙으로 간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천국은 그때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천국을 보고 왔다는 자들은 도대체 어디를 보고 온 것일까?)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uy Now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Terms of UsePrivacy Notice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

Home
Gospel
Question
Blog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