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황토(아담)-이강진 성도님의 글

노을과 황토(아담)-이강진 성도님의 글


노을과 황토(아담)


 


넓은 황토밭가의 무덤,


그 무덤 잔디 위에 볼품없이 초라한 아담하나가 가뿐 숨을 몰면서 쉬고 있다. 번들거리는 땀을 닦아내며 맥 없이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골똘이 바라보는 그의 생각은 저무는 해가 아니라 붉은 노을이다. 밭이나, 무덤이나, 앉아 있는 자의 눈이나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내일은 해가 아주 좋을 것 같다.


 


"그래, 내일은 흙이 더 잘 마르겠는걸"


"쟁기질이 끝나면 바로 로타리 쳐도 되겠어, 음, 그 다음엔..."


 


오늘 일에다가 내일 일 뿐만 아니라 그 다음 일까지 차곡 차곡 머리속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나선 "날씨만 한 부조 해주신다면 ..."


 


이제 오늘 일을 마치려 피곤한 다리를 곧추 세우려다 문득, 주님의 책망하심이 생각이 난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고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하며 천기를 분별 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 할 수 없느냐고 물으신다.(마16:2,3)


 


우리의 일이 오늘과 내일이라는 틀속에서 오늘일은 오늘 마치고 점검하면서 또, 내일 일을 준비하고 점검해 놓는다. 우리의 일상이 오늘과 내일뿐이다. 그리고 오늘의 그 열매는 내일에 있을 뿐이다. 오늘 그 결과를 얻었는가? 그 열매는 이미 어제라는 내 소유로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의 일이 늘 염려로 다가온다. 내일의 열매 때문이다. 그러니 시대의 표적을 알수가 있겠는가.


 


우리의 괴로움은 오늘이다. 한날에 불과한 것이고 내일 일도 한날에 불과하다. 그래서 말씀하신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마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고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마6:34)


 


이 시대의 표적이란 알수가 없는 것이 비밀이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한 날에 불과하고 한 염려에 불과함을 가지고는 알수가 없는 세계이다. 이 비밀은 하나님의 영광인데, 오늘은 내일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는데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그 말씀이 온 세계에 전해지고있다.(시편19:1-4)


인간만 모르고 있다. 그래서 비밀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시대의 표적을 모른다는 책망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향하여 있다. 이 역시 비밀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수로 알수가 있는가? 그저 나는 오늘의 내 염려속에 있을뿐이다. 바다물속을 달려야만 숨을 쉴수 있는 참치처럼 멈추는 순간이 숨이 막혀 죽는 때이다. 내 염려가 멈추는 곳이 내가 죽는곳이다. 아가미를 열기만 할 뿐 닫을 수가 없기에 달려야만 물이 통과한다.


 


시대의 표적은 오늘이다. 그리고 오늘이 가리키는 표적은 내일이다. 그리고 그 표적을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대로 그 길을 가고 계신다. 표적은 십자가이고 구하시는 것은 그의 죽으심이다. 그 죽으심으로 만드시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이다.


 


밭 가운데로 질러 가는 거대한 고압철탑이 서쪽으로 줄을 지어 지는해를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양팔을 벌리고 벌려서 거대한 십자가처럼 서서는 굵은 고압전선 가닥들을 쥐고있다. 하늘도 땅도 산도 온통 피 빛이다. 철탑도 위에서부터 퍼부어 놓은 선지피처럼 붉은 노을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전선들이 바람따라 서로 부딪치는지 십자가의 망치소리처럼 떠엉, 떠엉거린다.


 


십자가는 이 세상이라는 죽음속으로 그렇게 찾아들었다. 노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와서는 밤과 낮을 갈라 놓았다. 정작 우리가(아담) 바라는 것은 오늘과 내일이라는 내 염려가 아니라 주님의 죽으심이다. 주님의 선악과를 훔쳐 먹었는가?


 


그럼 훔쳐간 선악과를 내 놓아라.


벌써 똥이 되었는데요.


그래? 그 똥이 죽음이다.


어떤 천사가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요.


알고 있다. 그놈도 죽음을 내 놓아야 한다.


내 것을 먹었으니 그 죽음을 내 놓아라


제가 뱀에게 속았군요


내가, 내 살과 피로 새롭게 살린다


이 말씀이 떠엉, 떠엉거리는 십자가의 망치소리이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의 칼끝이 제물이 된 이삭을 겨냥하여 내리 꼬칠때 아브라함이 들은 소리이다.



무덤 안에 누워계시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나 무덤밖의 나나 서산에 걸쳐져 있는 어둠의 경계선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있는가? 그 경계선도 그냥 어두움이다. 이 밭을 갈다가 이 밭가에 묻힌 내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이 기억 된다.



"아! 무슨 일을 그렇게 밤 낮으로 죽어라 하나"


이웃 아저씨의 말에 아바지는 활짝 웃으며 나를 가르킨다.


" 이녀석들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느라면 어쩝니까"


그리곤 두분이 무슨 넋두리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맞어, 죽어야 이 고된 농삿일에서 벗어나지"


"아암~, 그렇구 말구'


"죽어야, 쉬는것이여"


"그렇지?"


"죽은 놈이 무얼 알겠어"


"참, 인생이 잠시 잠간이여"


마지막 남은 노을이 어두움과 함께 십자가의 피 처럼 철탑을 타고 흘러 내린다.


아닙니다.


아버지,


아들이 죽어야 하나님 아버지가 안식하십니다.


그리고요


아버지,


아들의 죽음이 심판이고


이 심판이 모든 것을 죽음아래 두시고자 함이고


그 죽은 아들이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쉼은 아들의 죽으심 속에 있습니다.


아버지,


이 아들의 죽으심만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The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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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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