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의 첫 머리에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고, 교회 또한 성도라 부르심을 입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부르심은 우리 인간들이 소위 말하는 "소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 딸 아이가 "예! 아빠" 하고 응답하는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 하고 있는 부르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생명나무를 지키고 있는 화염검이 철조망 처럼 깔려야 합니다. 즉 완벽한 차단이 필요합니다. 인간과의 소통을 완벽하게 거부한다는 전제하에서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을 고린서전서 2장에서는 비밀, 감춘된 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장의 비밀과 감춘된 바 된 쪽에서의 부르심만이 세상의 지혜, 말의 지혜, 세상의 변사, 총명함을 멸하는 능력이 됩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차단된 쪽으로부터 나오는 부르심이 아니라, 인간쪽에서 반응하고 이해하고 설득해야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쪽이 바로 말의 지혜이며, 말의 지혜는 반드시 십자가를 헛되이 하고 맙니다. 결국 위의 부르심은 십자가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부르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즉, 사도, 성도라는 부르심은 단 하나의 목적인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에 고정된 부르심 입니다. 그 외의 목적은 없습니다. 십자가 이외의 목적은 이미 십자가가 하나님의 죽음이 아닌 인간을 위한 디딤돌 역할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 조차 인간 소통의 장이 되며, 학문의 대상이 되어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할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완벽한 차단을 선포하신 하나님이 한 걸음 물러나셔서 좀 쑥스럽지만, 인간의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아주 옹색해져 버립니다. 이런 하나님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이 이야기 하는 부르심은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인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현실의 적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완벽하게 거절당하고 있는 실체에게 이렇게 놀리는 것입니다. "나, 부르심 받았지롱~~"
이쯤되면 쫓겨난 - 그것도 완벽하게 쫓겨난 - 세상 쪽에서 해야 할 일은 2가지 정도입니다.
첫 째는 그 부르심을 입은 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다는 증거를 은폐하려는 전략입니다. 아벨 노선이요, 그 끝에 예수님이 완성자로 위치 하십니다.
두번 째 방법은 그 부르심을 가짜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방법에는 필연적으로 가짜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가짜를 진짜처럼 설득해야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 때 동원되는 것이 바로 세상의 지혜, 총명, 말의 지혜입니다. 즉 세상의 지혜와 변사는 가짜 하나님을 구축할 때 필요한 것이기에 반드시 십자가를 헛되이 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세상 전체가 하나님을 죽인 살인자라는 증거인데, 그런 하나님말고 다른 가짜 하나님을 자신을 위해 조성해야 하므로 십자가는 그야말로 눈에 가시인 셈이지요. 그 어떤 방법이건 결론은 십자가를 헛되이 하는 쪽으로 그 본색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왜 십자가가 헛되이 되면 안되는가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됩니다. 도대체 십자가가 무엇이길래 그것이 헛되이 되면 안될까요? 왜냐하면 십자가가 참 하나님이라는 유일한 징표요, 창조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막말로 하면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되심이며 그 주되심이 "십자가"로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고린도전서 8장 6절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골로새서 1장 16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창세기에는 십자가가 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의 하나님은 참 한가한 하나님입니다. 전래 동화의 도깨비 같습니다. 방망이를 내리 치면서 말만 하면 뚝딱 다 이루어지는 것이 뭐 하나 고민하거나 희생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설계 방향은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씀과 "생명나무"의 충돌입니다.
창조시 금지된 것은 선악과 말고는 없었습니다. 금지명령이라고 하죠. 금지명령의 특징은 명령권자를 보기좋게 무시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허용명령은 이미 허용되었기에 명령한 자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명령한 자와 명령을 받은 자 사이에 긴장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허용명령 내에서는 명령받은 자가 명령한 자와 구별되는 별도의 "나"(주체)를 확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차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금지 명령은 자연스럽게 명령한 자와 명령을 받은 자를 구별해 내고 별도의 주체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원리에서 중요한 핵심은 그 금지명령의 위반이 바로 "정녕 죽음"을 일깨운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명령을 받은 아담이 별도의 아담 자신을 챙기는 유일한 방법이 명령을 위반할 때 뿐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다른 주체를 고집하게 될 때가 바로 '정녕 죽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바로 이 때 비로소 생명나무의 고유 값어치를 하게 됩니다. 금지명령의 위반 상태, 즉 죽음에 맞부딪치고 나서야 자신에게 허용되었던 "생명"의 의미가 그제서야 빛을 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주체를 따로 확보할 필요가 없을 때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 없는 한 몸 그 자체이기에 - 생명과 하나된 상태이기에 - 별도의 생명나무가 필요없습니다. 생명은 죽음과 대비를 이룰 때 그 대비 한 가운데 서 있는 외로운 주체, 죄인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조치가 완벽한 차단입니다. 화염검입니다. 추방입니다.
이제 에덴동산은 추방의 출발점이요, 단절의 종결자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부르심은 바로 이러한 추방과 단절의 너머에서 날아들어온 생명나무의 부르심이요, 결국 세상에게는 죽음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창조는 그냥 말로 이루어 진 것이라,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기 위한 장치로써 치밀하게 설계된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와 고스라니 모두 들어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십자가야 말로 말 그대로 "기준"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는 죄와 의와 심판의 "주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는 그렇게 내어주심, 즉 죽음까지도 주관하고 계신 참 생명의 내어 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창조는 그렇게 창조주의 죽음을 적나라게 밝히는 생명 작업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것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다는 것 그리고 그 분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는 말씀과 마지막으로 그 분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이 이렇게 압축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을 예수 안에서 확인하시면서, 책망에 책망을 더하시면서 참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려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고전 2장 10-11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 판에 어떻게 인간의 지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고전 2장 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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