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죽여야 우리가 행복하다
사형제도 족속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폐지해야 하는지 논쟁이 오고간다. 사람들보고 “살인하지 말자”고 국가가 외치면서 국가가 앞장서서 ‘사형’이라는 이름으로 살인할 수는 없으니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복수’가 없는 세상은 ‘정의’도 없는 세상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살인 당한 자의 가족이 느끼고 있는 아픔과 사형당한 자의 가족이 느끼고 있는 아픔 중 어느 것이 아픔이 더 센가를 놓고 비교해보는 것이다. 사랑하고 동고동락 했던 가족이 난데없이 죽어서 곁에서 사라질 때에, 참으로 그 고인을 사랑했다면 더 이상 세상 살고 싶지 않다. 어서 죽어도 자신도 고인이 간 곳에 합류하고 싶어진다.
이처럼 죽음은 그것이 어떻게 생긴 죽음이든지 상관없이 인간 세계는 비극으로 통한다. 곧 행복을 훼손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2004년 4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일어나서 20여만 명이 죽었다. 자,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 자연에 대해서 복수할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과 귀한 재산을 잃고, 혹은 평생 장애인 신세가 되어 구걸하면서 여생을 심적, 육적 고통 가운데 보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이 원한을 갚아야 될 대상자는 누구란 말인가?
뿐만 아니라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통해 일거야 평생 불행해질 수 있다. 평소에 반듯하게 운전하고, 정의롭게 사는 운전자가 저항할 수 없는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나 혹은 상대방 가족을 풍비박산내고 자신을 뻔뻔스럽게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가 있다. 이로 인해 평생 안고 갈 죄책감을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야? 이런 슬픔을 안겨 준 자가!
사람이 아무리 잔인해도 자연보다는 덜 잔인하고, 자연이 아무리 잔인해도 하나님보다는 덜 잔인하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영원토록 뜨거운 지옥불에 집어넣어 놓고서도 스스로는 만족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단지 주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그런 무서운 저주를 서슴없이 퍼붓다니!(고전 16:22) 성령의 일보다 육에 일에 우선했다고 영원히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 하신다.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자기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인간의 입장에서 이대로 당할 수 없는 없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일상에 있어 대책이 있는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매일같이 죽어버리면 된다. 하나님을 짓밟고, 말씀을 짓밟고 복음을 짓밟고 살면 이제 나를 심판할 자가 없이 무슨 짓을 해도 행복하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바로 이 사고방식에서 십자가 사건이 생겼다. 성령께서는 이 십자가 사건을 오늘도 전 세계에 들이대신다. 교회에도 들이대신다. 너희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남은 것은 성령을 통해 매일같이 죄 용서받는 일 뿐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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