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어기는 재미 어떠세요?
2011년 3월 1일 화요일 오후 2:16:10 김대식
요즘 법 어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즉 이 법 어김은 상대적으로 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 상대방을 그렇게도 법을 귀히 지키면서 어렵게 어렵게 법을 지킨 자신의 보람을 만족해 할때에
보란 듯이 법을 우발적으로 어기는 자가 나타나면
상상할 수 없던 것이 튀어 나온다. 곧 살인이다.
법을 어기는 목적은 살인유발이다.
법을 지킨자 자신이 상상도 못할 법어김이 튀어나올지 도저히 알수 없는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살인이다. 죽음이다.
예수님은 깨작 깨작 저들의 법 지킴 앞에서
일부러 법 어김을 보란 듯이 보인다.
빨리 빨리 죽여라 라는 것과 같다.
가인이 제사 라는 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아벨을 죽일 리가 없다.
또 아벨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맞아 죽을 리가 없다.
감히 말야 형 보다 제사를 더 나은 제사로 드리다니?
형을 무시하고 융통성 없게 동생인 자신이 이쁨 받아?
감히 형(남근:오이디푸스)이라는 법을 어기고 말야?
여기서 더 나은 제사란 법을 어긴 제사다.
사실은 법을 의도적으로 어겨서가 아니라
법을 가로지르는 법의 탈주인 사랑과 용서와 긍휼(불쌍히 여김)을
유발케 하는 낮아진 마음이(피와 기름 분리 곧 거룩 곧 차이성)이 덮쳤기 때문에
미래완료인 십자가의 의미를 일방적으로 예수님이 해석해 버렸기 때문에
법을 가로지는 사랑, 딱딱한 유기체 제사를 가로지르는 물컹물컹한 사건덩어리인 탈유기체(육의 자랑의 반대, 차이)가 바로 더 나은 제사가 된 것이다. 곧 특이성이다. 잃어버림이다.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잃어버림은 곧 되찾는 자의 개입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의인이란 독자적이니 혼자가 다 알아서 한다. 누가 구지 개입할 필요성이 없다. 사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죄인은 독자적일 수가 없다. 누구의 개입을 요청할 수 밖에 없는 차이나는 몸의 자리로써 다른 몸을 요구하는 자이다.
가인의 제사는 누구의 개입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누구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것이 분리 작업에서 일방적인 예수님의 믿음이 개입 된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에 예수님 자신의 운명을 걸어버렸다.
그렇다면 가인은 법이 된 자신의 제사를 버리고
빨랑 빨랑 아벨의 제사에 동참해야 한다.
즉 법을 어겨야 한다. 곧 또 다른 존재로부터 법 어긴 이유로 맞아 죽어야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인은 그 법의 자리에 앉아버렸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출애굽은커녕 출제사는커녕 그 독자성을 띤 자리는 도리어 예수님의 주의 주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더더욱 퍼지고 확대되고
반드시 이런 가인의 마귀적인 제사를 뒤 엎어버리는
예수님의 제사의 차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확장 증식이 된다.
이런 마귀 사상이 퍼지고 모든 인간의 사고방식을 장악하는 가운데(마귀의 3가지 시험 속에 나타난 유대인을 장악한 마귀의 제사 곧 돌이 떡 되게[경제:먹음직], 거룩한 성전 뛰어내려도 안 죽는 기적[보암직:종교:편애],온천하영광얻기[정치:거룩한왕의완벽한자리] 라는) 마귀사상을 도리어 하나님 선민으로 가득 가득 차서 확장 증식이 된 바벨탑인 육체가 바로 유대인의 계보이다.
이 육의 배경을 깔고(역사의 배경을 깔고) 특이한 몸이 아벨의 몸처럼 법을 여겨 죽어야만 하는 몸으로써 등장한다. 이것이 묵시라고 한다. 묵시란 시간도 공간도 어떤 개념도 아닌 구체적인 인물이다. 즉 묵시란 누구냐 라는 말과 같다. 곧 인자다.
안식을 며칠이냐? 또는 쉬는 개념이 아니라. 안식이 누구냐 라고 역사적언어(선악적언어)을 탈주해서 가로지르는 표현이 바로 묵시적 언어로써 안식은 예수님이다 라고 한다.
자 그럼 더 나은 제사란 역사적 언어에서 해석 불가이다.
더 나은 제사란 어떻게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누구냐 이다.
더 나은 제사는 예수님이다.
그렇다 이제야 눈치를 채 셨는가?
더 나은 제사는 아벨에게 믿음으로써 본 예수님을 말한다.
법을 어겨(탈주:가로질러)야만 볼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로 여김 받았다는 로마서의 말씀은
상대적으로 제대로 지킬수 있는 완벽이란 완벽을 지켜본 바울의 입에서만 나와야 하고
우상 조각가(제사의 달인) 입에서만 나와야 하고
율법적으로 4배나 적용하는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다윗의 입에서만 나와야 한다.
차이성(분리 작업) 때문이다. 이것이 거룩이다.
거룩이란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
마귀적인 것에 상대적인 차이를 말한다.
마귀가 천사 같이 굴면 성도가 마귀 같이 구는 것이 거룩이다. 왜? 차이성이기에
반대를 위한 반대이기 때문이다.
가인은 이런 죄의 소원을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길이 없다.
자 그럼 아벨은 무슨 수로 벗어났는가?
간단하다. 자신의 제사 솜씨를 거부하는 법을 어기고 예수님의 개입에 맡겨 버렸다.
그러니 개 죽음 당한 것이다.
예수님의 개입을 요청한 더 나은 제사를 제대로 드렸기에
마귀가 화가 나서 죽여버린 것이다.
이 관계를 확장 한다.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과의 전쟁 구조에 벗어날 수 없도록
주님은 아벨의 제사를 안 받을 수가 없다.
(창 3:15, 개역)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자신의 개입이기 때문에 자신 만의 숙제 이기 때문이다.
이 약속을 확장 시키는 주의 주 되심 때문에 우리는 아벨의 운명일 수 밖에 없다.
법 너무 너무 잘 지키는 놈 코 앞에서
얄밉게 법을 어겨 가로지르는 더 나은 제사인 예수님의 믿음이 덮쳐 개 죽음 당하는
그 소멸성을 은사 라고 한다. (소멸의 누락처럼 허무하고 헛되게 보이는 광야의 소리)
변론(탈주:평탄케 매끄러운빈자리만들기) 이라고 한다.
(마 3:3, 개역)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막 1:3, 개역)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눅 3:4,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요 1:23, 개역)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ps)
법 어기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그 심판이 옳았다.
항상 그 심판을 엉뚱하게도 주님이 아닌 딴 놈이 몽둥이를 쥔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그것 조차도 주님의 뜻이다. 말씀은 오로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 만을 보란 듯이 벌어지는 사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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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전 9:57:56 김대식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가짜 휘발유를 파는 범인을 잡는 경찰들의 새로운 범행수법에 대한 대처법으로써 새로운 장비와 새로운 수사방식이 동원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옥에 넣겠다는 것이다.
법이 많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죄가 점점점 지능화 되고 복잡 다양으로 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죄에는 새로운 법이 따라 붙게 된다.
인간은 법 없이는 못 산다.
법이 없는 세상은 곧 경찰이 없는 세상이 되고
경찰이 없는 세상은 곧 범법자들만 난무 하는 세상이 된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쁜 놈이 된다.
법을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의문의 증서를 도말하신 분은 의문의 증서를 준 그 당사자 이다.단순히 도말 즉 찢으신게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곧 육체와 함께 말이다.
율법에 저촉받는 그 육체를 찢어 버리셨다.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법 없이는 못 사는 인간에게 법을 없애 버리게 되면
무법 천지가 된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보아온 목사들의 근심꺼리를 보게 되면
한결같이 그 걱정은 딱 하나다.
법 없어 질까봐 하는 두려움이다.
교회 법을 만드는 이유도 그러하다.
무질서가 되는 개판 5분전이 되면 그것처럼 발 동동 구르는
기가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기에 오른팔 왼팔로써 장로들까지 그 정치세력에 합류한다.
패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힘의 우위에 따라 왕따가 생기고 집권세력이 생긴다.
이거 농담이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랬고 오늘날 교회는 정치세력과 동일하게 움직인다. 벗어날 수가 없다. 그 왕따받는 자들도 세월에 따라 뒤짚어지면 또 다시 가해자 세력으로 변모하고 만다. 그래서 법이 곧 힘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더 지능화되고 복잡다양하게 확장 증식하게 된다.
법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세력 즉 힘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그러면 취미생활인 정치를 못하게 된다.
두 세 명이 모인 곳에서 하물며 힘 과시(자랑)가 있는데
여러 명이 모인 곳에서 큰 소리 칠 줄 모르게 되면 그거 무슨 맛으로 살 것인가?
다들 부러워 죽는 판국에 그 부러운 자리에 누구든지 한 번 앉고파 난리다.
꼭 큰 소리를 치는 것이 힘이 아니라.
부드러움 조차도 정치세력으로써 힘 과시가 된다. (대중을 이끄는 인기요소가 된다. 또는 새벽기도로 히트 치거나? 레크레이션? 등등등)
이 부드러움의 정치는 주로 여성목사들에게서 나타난다. 마음 여린 남자 목사도 마찬가지다.
어째꺼나 저째거나
법이 없으면 곧 죄도 없게 되니
힘이 사라진다.
힘이 사라지면 인간은 죽는다. 죽어 !!!
(히 2:6, 개역)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히 2:7, 개역)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히 2:8, 개역)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히 2:9, 개역)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10, 개역)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1, 개역)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 2:12, 개역)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 2:13, 개역)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히 2:14, 개역)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 2:15, 개역)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힘이 사라지는 세상을 인간은 원치 않는다. (이런 인간을 말씀은 창조한 적 조차도 없다.)
그래서 힘의 균형인 법 지키기가 정치적인 분배로써 잘 활용이 되기를 바란다.
법이 사라지면 죄도 사라지게 되니
목사는 죄인 없이는 돈 벌이가 안되고
경찰은 범법자가 없으면 경찰이라는 직업도 사라진다. 뭘 먹고 살겠는가?
판사는 법 어긴 자들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교사는 무지한 죄가 가득한 무식한 학생이 없으면 굶어죽는다. 학원문 다 닫게될 판국이다.
의사는 환자 없이는 못 산다. 병원이 사라진다. 병원 근처면 부동산 값에도 영향이 있는데?
경찰서, 학교, 병원, 교회, 자연공원 이런 주변 부동산 조건이면 에덴동산 아닌가?
(창 13:9, 개역)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10, 개역)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것이 메시아 사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인간의 메시아 사상
곧 마귀 없이는 못 사는 인간에게서
그 메시아를 부셔 버리는 메시아가 나타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임마누엘 전쟁이다.
그래서 인간은 예수님이 싫타
법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법이야 말로 가장 공평하다.
누구든지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자유의지)
못 지키면 징벌을 그 법의 가치에 따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억울하다 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그 억울하다 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그 법을 가지고서 복음을 증거하신다. 그래야 유구무언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헌 옷(법) 앞에서 새 옷(새언약)의 진가는 반드시 헌 옷을 바리새인이 목숨걸고 사수해 주어야만 새 옷의 가치가 빛난다. 빛나는 옷인 영광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법을 없애 버리고 사랑을 도리어 공평화(보편화) 시키면 (팔 어긋맛기:탈주)
이것보다 가장 악한 것이 인간에게는 없다.
이 악하고 못때빠지고 사탄적인 사랑을
편파적이고 독재적이고 배타적인 이 악한 사랑을
미래완료로써 다 이루셨다 라고 외쳐 버리면 (십자가 들이대면)
인간이야 말로 그 가면이 벗겨져서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드라큘라)
십자가의 사랑이야 말로 그들에게는 지옥의 사자 이다.
이것 보다 세상에 억울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룩한 법 법 법 법을 달라고
법을 목숨걸고 지키겠노라고 법 사수에 평생을 소진한다.
법과 몸이 결탁 곧 일치화 되었기에 ...
(인간은 헌옷인 자기만의 예복을 천국의 혼인잔치에서 고집한다.
그러나 천국에서 일방적으로 편파적으로 주문제작한 집단 피 옷(새 언약 옷)인 천국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어둠에 내어 쫏겨 이빨을 갈며 억울해 운다.
이 인간의 몸 곧 율법적인 율법 아래에 갇힌 몸이 아닌 다른 몸 곧 새언약의 몸을 얻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법을 지켜도 지옥에서 이빨을 갈며 억울해 한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상황에서의 천국비유다.)
(마 22: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개역)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8, 개역)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마 22:9, 개역)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 22:10, 개역)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 22:11, 개역)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로지 천국에는 십자가의 사랑만 있을 뿐이다.
(롬 7: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오로지 악마의 세계이기에 정죄함 뿐이다.
(또 생명의 성령의 법 이라고 성경말씀에 적혀 있으니
반드시 법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자들이 있다.
성령이 지킨다는 뜻이다. 이런 육체의 소욕을 성령의 소욕을 매일 매일 쳐 버린다.
그래서 나오는 기도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살려주이소마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저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 뿐이고
반대로 거봐요 법 주니까 저 법 잘 지키잖아요 라는
성전 안에는 반드시 두 기도가 대립되어 있다.
(눅 18:10, 개역)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어 그러고 보니 누가복음은 희년이라는 도저히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들에게 보편적인 집단성으로써 성령이 요엘서처럼 부어지듯이
동시에 심판이라는 보편성으로써 영원히 철두철미하게 가르는 의미이다. 누가복음이 더 심하다. 인간좋으라고 주어지는 구원은 없다. 이 지독한 사랑으로 철저한 단절성인 건널수 없는 강이다. 그 간격을 더욱더 벌려버리는 찢어버림 이다.
마태복음만 유대를 구석 구석 두 조각 내겠다는 철저한 가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누가복음에서는 이방세계를 구석 구석 두 조각 내고 전지구 전우주까지 주의 주 되심을 이루기 위해 구석 구석 빈틈없이 피의 십자가를 들이대시겠다는 무서운 취지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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