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긍휼

에베소서 2:4 긍휼


‘공짜’, 상당히 신나 보이는 개념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공짜에 목숨걸라면 걸겠습니까?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저 주심’ 앞에서도 주저하게 만듭니까?


그것은 기존의 것이 와해되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교체를 요구합니다. 기존의 것에다 더 보태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예측을 실시합니다. 지금 가진 것보다 더 월등한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긍휼이 교체를 요구하게 됩니다.


기존의 것은 ‘없음’이 되어야 합니다. ‘없음’의 자리로 가야합니다. 이 ‘없음’의 자리는 꼭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붕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말도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살면서 자신이 평생 일구어온 것이 하나님의 긍휼 앞에 무의미하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우리는 ‘미리’ 주신다는 점에 착안해야 합니다. 즉 죽을 때에 숨겨놓은 긍휼을 하나님께서 내어놓으신 것이 아니라 미리 긍휼이 마중을 나와서 성도를 천국쪽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즉 ‘교체’가 계속해서 반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긍휼이 미리 찾아들게 됩니다. 성도는 ‘긍휼’인 것과 ‘긍휼 아닌 것’을 구분하게 됩니다.


나 자신의 것을 계속 붙들게 되면 이는 ‘내 목숨 내가 챙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 됩니다. ‘긍휼’의 내용이 오늘 본문에 보면 ‘큰 사랑’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큰 사랑’이 어느 정도의 사랑인가는 짐작이나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자신에게 꿈과 이상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조차 다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사람이 나름대로 꿈과 이상이 있으면 자신의 모든 정력과 노력에 거기에다 다 쏟아 넣게 될 것입니다. ‘큰 사랑’은 바로 인간의 이러한 집념이 ‘사랑’이 아님을 고발합니다.


버려야 될 무가치함을 알려줍니다. 필요 없는 정도로 아니라 하나님의 ‘큰 사랑’을 훼방할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긍휼은 ‘싸움’입니다.


The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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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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