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돌아가라 (창 3:17-19)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번 한 주간은 손 아랫 동서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분주하게 보냈다. 4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친척들 중에는 하나님에게 대 놓고 원망은 하지 않지만 야속하다는 분위기이다. 중 3과 중 1의 두 아들과 80먹은 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야할 처지를 생각하면 어찌 그렇게 말하지 아니할 수 있단 말인가?
동서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너무도 안타깝단다. 그렇게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를 열심히 하던 집사가 하루아침에 심장마비로 급사 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하였겠는가?
조문 오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까운 사람이 너무 일찍 죽었다고 안타깝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라고 한숨들이다.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을 한다. 반대로 오래도록 사는 것을 복이라고 한다.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건강에 투자하는 것도 오래 살기 위함이다.
어떻게 하든지 죽음을 늦게 멀리 맞이하고픈 마음들로 가득 차 잇다. 90먹은 노인에게도 죽는 이야기를 하면 이맛살이 찌푸려지면서 역정을 내신다.
죽음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죽음은 인간의 원함과 상관없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왜? 그토록 피하고 싶고 멀리 하고 싶은 죽음은 인간들에게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방성대곡한다.
그렇다면 성경도 과연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을 저주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저주와 축복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오래도록 살고자 하는 사람에겐 죽음은 저주일 수가 잇다.
그러나 빨리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하늘아래 그 어느 인간이 빨리 죽고자 하는 인간이 있느냐이다. 인간이라면 다 오래도록 살고 싶어하지,,,
오래살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진 인간에겐 죽음은 이래저래 대접을 받지 못하고 피하고 싶은 저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라면 성경의 증거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모든 인간들의 사고방식이 그렇다고 하여도 성도라면 다른 생각으로 죽음을 접근하여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죽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도 인간의 죽음을 저주로 주셨는가? 이다.
인간들 입장이 아닌 하나님 입장에서 죽음을 바라보자.
그럼 인간에겐 어떻게 죽음이 주어졌는지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살펴보자.
오늘 본문은 인간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선악과 속엔 죽음의 기운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직까지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인간은 죽음에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져 호기심만 발동시키는 말씀일 뿐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이 인간들의 호기심을 그냥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접근하여 인간 스스로가 따 먹도록 유도하였다. 인간은 스스로 선악과를 따 먹었다. 이름하여 죄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찾아 온 것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이다. 생명으로부터의 단절이 찾아 온 것이다.
죽음이란? 하나님(생명)으로부터의 단절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말씀 하셨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을 죽음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단절 된 모든 인간은 죽은 자이다.
그럼 산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생명에 붙어 있는 자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자는 산 자이고,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된 사람은 죽은 자이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와 단절된 사람에겐 죽음이란? 저주가 맞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자에게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왜?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자에게 죽음은 축복인지를 상고해 보자.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자 살아갈 땅을 저주 하셨다.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은 가혹할 정도로 처참하다. 땅은 인간 때문에 저주를 머금게 되고 인간은 종신토록 땀 흘리면서 수고하여야 땅에 소산물을 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기껏 땀 흘려 수고하여서 얻은 것이라야 저주를 머금은 땅이 뱉어낸 소산물이다. 인간은 저주를 머금은 땅이 뱉어낸 소산물을 먹고 살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처지가 되었다.
땅에 붙어서 사는 한 저주는 피할 수가 없다.
저주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땅에서 벗어나는 길은 땅의 소산물로 연명하는 생명이 죽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복인 셈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법칙이고 그 다음에 심판이 있다고 증거해 주고 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는 곧 인간은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고 난 후에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2 라운드의 인생이 있다는 말이다.
육신으로 사는 인생사를 1 라운드라고 한다면 죽고 나서 심판을 받고 영생으로 가는지 영벌로 가는지 각자 갈라져 가는 인생사가 2 라운드이다.
계 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장차 죽고 난 후에 이루어질 심판을 보았다.
그 심판은 생명책과 자기 행위에 책이 있다고 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으면 불 못에 던지운다고 한다.
불 못이란? 지옥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죽고 나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심판이 단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서의 행위로 결정이 되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란? 생명책에 녹명되었느냐 아니냐이다.
즉 어떻게 살았느냐! 로 묻지 않고, 생명에 붙어 있었느냐! 떨어져 있었느냐! 로 판단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안에 있었느냐! 예수 밖에 있었느냐! 이다.
그래서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자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불 못으로 던져진다고 한다.
그런데 생명책에 녹명되고 안되고는 이 세상에서 결정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겐 1 라운드의 인생사 속에서 2 라운드의 인생사가 결정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군대 이야기로 한다면 현역병으로 있을 때의 계급이 제대 후에 계급으로 고정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 세상엔 생명책에 녹명된 자와 녹명되지 않은 자들이 살고 있다.
즉 예수 안에 있는 자와 예수 밖에 있는 자가 있다는 말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죽어서 심판을 당할 때 생명책에 녹명되었기 때문에 영생으로 들어간다. 이름하여 천국이다.
반대로 예수 밖에 있는 자들은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름하여 지옥이다.
천국에 들어갈 자도 죽고, 지옥으로 들어갈 자도 죽는다.
모든 인간은 다 죽는다.
예수 안에 있는 자도 죽고, 예수 밖에 있는 자도 죽는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천국을 가기 위한 죽음이므로 반가운 죽음이 되지만, 예수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의 죽음은 지옥으로 가는 죽음이므로 저주스러운 죽음이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장차 뱀의 머리를 깨트릴 여자의 후손이 오실 것이라고 약속 해 주셨다.
그러면서 가죽옷을 입혀 주었다.
아담과 하와가 입은 가죽 옷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구원의 옷이고 은혜의 옷이다. 이는 곧 장차 가죽옷의 실체가 오셔서 아담과 하와를 구속에 주실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범죄한 인간으로서 저주의 대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린양의 희생으로 가죽옷을 입고 구원을 받게 되는 모습이다.
결국 아담 속에는 구원 받을 인간과 저주 받을 인간 두 인간의 군상이 담겨져 잇는 것이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처럼 한 아담의 후손임에도 어떤 인간은 구원을 받고 어떤 인간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담에게 떨어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는 죽음이 명령은 어떤 사람에겐 저주의 소리가 되고 어떤 사람에겐 축복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알다시피 인간은 일평생 땀 흘려 수고하고 살아가도록 땅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인생사는 수고와 슬픔의 인생사이다.
모세는 일찍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 사실을 알았다.
시 9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39:4-5=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모세는 인생을 한마디로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이라고 한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수고와 슬픔의 연장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인생이란? 수고와 슬픔뿐인 형벌임을 아는 지혜를 알기를 간구하였던 것이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수고와 슬픔을 많이 겪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것이 복일 수가 없다.
오래 살수록 수고와 슬픔은 가중되어 덮쳐온다.
늙은이의 주름은 수고와 슬픔의 흔적들이다.
그래서 욥은 태어나지 않음이 더 복되다고 하였다.
욥 3:9-13=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었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찌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였고 내 눈으로 환난을 보지 않도록 하지 아니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욥 10:18-19=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겼으리이다”
욥은 태어났으면 일찍 죽는 것이 복이고, 일찍 죽는 것보다 안 태어 난 것이 더 복되다 고 하였다.
이미 태어났으면 일찍 죽는 것이 수고와 슬픔을 적게 겪는 것이므로 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에게나 이해되어지는 말씀이다.
즉 예수 안에서 죽으면 2 라운드 인생사에선 천국에서 안식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에게나 일찍 죽는 것이 복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성도는 사나 죽으나 복된 인생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소멸하는 것으로 말하지 않고 쉬는(잠)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였다.
시 127: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잠으로 보지 않는다.
쉬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죽음 앞에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것이다.
사 57:1-2= “의인이 죽을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하나님은 의인을 일찍 데려가셔서 침상에서 쉬게 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의인의 죽음을 더 수고하고 슬픔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안식하는 것이므로 복된 것이다.
병든 나사로가 죽은 것은 나사로를 쉬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마르다와 마리아는 쉼으로 보지 않고 고통으로 보고 슬퍼하였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르다와 마리아 처럼 관념으로만 부활을 알고 형제의 죽음을 슬퍼한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주 안에서 쉬고 있음을 몰랐다.
그래서 슬퍼하였던 것이다.
이는 제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요 11:11-17=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잠잔다고 하였지만 제자들은 죽은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시니까 나사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는 줄 알고 참 안 되었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안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마르다와 무리들을 위해 울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통분히 여기시고 잠자는 나사로를 깨우신 것이다.
깨우시면서 너희들 눈에는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예수 안에서는 자는 것임을 알려 주셨던 것이다.
그러니 예수그리스도를 믿다가 죽는다 해도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통하여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죽음에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더 없이 위로의 말씀이고 축복의 말씀인 것이다.
아담에게 수고하고 슬픈 인생사를 쉬라는 것을 죽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성도라면 성도의 죽음을 바라 볼 때 아! 하나님께서 수고와 슬픔을 그치고 쉬게 하시려고 데려가시는구나! 를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은 소원이 일찍 죽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살아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전할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살아도 복이고, 죽어도 복이다.
이미 생명 안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들에게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주 안에서 자는 자는 복 되도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복인 줄 모른다.
예를 들어서 중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사람을 산소호흡기로 연명시키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을 더 오래도록 유지하게 하는 고문행위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예수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잘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프고 병든 사람이 성도라고 한다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그 힘들고 모진 군대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을 붙잡고 몇 달만 더 군대에 남아 있다가 제대를 하십시오 라는 것과 같다.
제대하는 사람을 붙잡고 제대하지 말라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하루 하루 수고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시므온은 늙은 몸으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시므온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주여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하였다. 즉 “나를 죽여주시니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다.
아! 이젠 쉬게 되었다는 말이다.
누가 시므온의 이 말을 건방지고 교만한 말이라고 하는가?
시므온이 객기를 부리고 이런 말을 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시므온의 이런 고백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복이라는 것을 아는 자만이 토해 낼 수 있는 고백이다.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하였고, 스데반이 이런 고백을 하였다.
바울이 하나님께 빨리 가고 싶다는 말을 누가 시건방지다고 말하는가?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말한 것이 쇼라고 생각하는가?
신앙이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믿는다는 것이 현실 속에서 삶으로 피어나야 한다.
죽기를 소망하라는 말이 아니라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망 없는 자들처럼 죽음을 울고불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된 말씀을 주셨음에도 그것을 저주라고 이해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하나님께서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감사합니다.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군요 라고 해야지,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뭘 잘못 했습니까? 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히스기야처럼 등신짓 하지 말라.
이 시대 목사들이 병자들을 찾아가면 상투적으로 말하는 것이 히스기야가 기도하여서 생명을 연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 열심히 해서 건강해져서 오래 오래 살라고 한다.
그러면 교인들은 아멘 하고 좋아라 한다.
이를 어째야 하나?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그러게 무식하면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주로 듣고 오래 오래 살라고 하면 복으로 듣는 것이다.
오호라 통재라!
주여 종은 어느 때에 평안히 놓아 주시렵니까?
=지나간 이야기=
오래 전에 가까운 집사님의 어머니가 간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심방을 좀 해 달라고 해서 찾아갔다. 병원에서 이미 선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때에 이 말씀을 드렸다. 흙에서 난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그러면서 솔직하게 현실을 말씀드리겠다고 하면서 흙으로 돌아갈(죽을) 때가 되었으니 예수님께 맡기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울면서 제 손을 꼭 잡고 현실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함께 기도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게 해 달라고,,,주님 품에 평안히 안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믿지 않는 남편은 뭐 이런 목사가 있느냐 고 고래 고래 소리 지르면서 죽이겠다고 덤벼들었다. 본 교회 목사는 와서 기도해 주고 빨리 낳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당신은 뭔데 죽는다고 말하느냐 이다. 왜? 환자가 안심하도록 위로하지 못하고 재수 없는 말을 하느냐고 욕을 끌어 부었다. 결국 집사님 어머니는 재수 없는 이 나쁜 목사의 기도 때문인지 그날 밤 죽어 흙으로 돌아갔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닥치면 그 땐 어찌하여야 하나?
오래 오래 사세요 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고 해야 하는가?
<퀴즈>
군대에서 듣기 싫은 말과, 듣기 좋은 말을 골라 보세요.
1). 아주 말뚝 박으세요
2). 빨리 제대 하세요
이 시대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과,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골라 보세요.
1). 오래 오래 사세요
2). 빨리 죽으세요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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