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을 부르심
아브라함을 부르심
히브리서 11:8-9
아브라함을 부르심 이 세상이 인간의 세계일까요, 말씀의 세계일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요, 아니면 나타나는 식으로 생긴 걸까요? 이 질문을 위하여 오늘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등장합니다.
보이는 것은 고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자연이라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아브라함과 후손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은 ‘나타나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부르심을 받다’라고 나옵니다. ‘부르심’이란 인간쪽에서 당첨받기 위한 그 어떤 준비동작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조치입니다. 따라서 당황하는 쪽은 부르심을 받은 쪽입니다. 왜냐하면 아부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본토 아비집을 떠나기를 종용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슬픈 일이라고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이 인간들 세계 속에서 자신들만 살아 있는 존재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친히 활동함을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형편, 자신의 미래도 잊을 정도로 감격스럽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되지?”를 고려할 자격 자체가 박탈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1-2)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취지는 ‘갈 곳 없음’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위한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미래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해서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과 후손을 하나님께서 난처하게 만드실려고 하십니다. 자기 미래와 인생에서 대해서 손 놓게 만드시는 식으로 이끄십니다.
해답도 진리도 아브라함은 알바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다 ‘부르심’또 ‘부르심’ 안에 들어 있을 겁니다. ‘나의 일’에서 ‘주님의 일’로 바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