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주심
자신을 주심
디도서 2:13-15
자신을 주심예수님은 자신을 주셨다는데 우리가 받은 적이 없다면 어디서 배달 사고가 일어났지요? 인간은 주님을 인간 쪽에서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멸망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는, 그 독생자와 더불어 이 세상 전부를 저주 아래 두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은 곧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인간들이 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살해하고 그 뒤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들은 자신의 결정이나 선택이나 행함에 비중을 두고면 평소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신에게 뭘 주더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게 되면 고마워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모독하고 자신을 근원적으로 부정해버리는 것을 주게 되면 그 준 쪽에게 분노를 갖고 달려들어 죽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은 것을 ‘자신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표현합니다. 즉 예수님의 몸을 원한 자는 이 인간 세상에 아무도 없는데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몸을 주셨다’고 단언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내어 주심’이라고 이해하는 새로운 피조물의 창조를 염두에 두시고 하신 행위입니다.
즉 없는 데서 새로운 백성을 주님 자신에 의해서 조성해 내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새로 생긴 백성은 오직 하나만 압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자발적 주심’은 이 십자가 외에 그 어떤 것도 섞거나 의미 두지 않는 조건 안에서 구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나아가 성도의 삶이란 더는 자기에게 의미두지 않고 오직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다 ‘예수님의 자발적 주심’을 유일한 심판 기준으로 벌써 적용한 그 결과임을 감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 성도에게 있어 자기 삶이나 세상 일은 그저 십자가 사건의 확장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일하게 ‘선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