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4-15 대신 죽으심
사람들은 왜 자신이 힘들게 사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힘들게 생존에만 집착합니다. 근본 원인을 그때그때마다 병원 의사에게만 묻는 식으로 살려고 합니다.
성경 말씀보다 의학지식이 더 선호되는 이 현상마저 이미 ‘모든 인간은 죽은 상태’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죽었다’는 표현이 과학만이 최종 진리의 기준으로 인정받는 시대에서 ‘숨을 거둠’으로만 이해됩니다.
하지만 복음에서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집요하게 생존에 매달림’으로 표현합니다. 죽음에 대한 개념이 이처럼 다르게 된 것은 개개인의 죽음을 한데 모아 공통점을 찾아내어서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처참한 ‘살해당함’을 죽음의 원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죽었다’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죽였으며, 왜 죽었는가’ 차원에서 죽음을 규정하십니다. 곧 ‘하나님이신데 왜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의해서 죽어야만 하는가?’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은 형인 가인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이 죽음의 유발하게 된 것은 아벨과 가인으로만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아벨을 아벨되게 하신 하나님과의 적대관계에 의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원형’은 두 세력이 대적하는 관계를 보여주게 됩니다. ‘영원히 살겠다’는 쪽에서 ‘영원히 죽이겠다’는 쪽을 향하여 공격한 그 결과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따라서 ‘영원히 죽이겠다’는 예수님쪽은 인간에 의해서 살해당해 패배한 것이 되고, ‘영원히 살겠다’ 패가 승리한 것이 되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영원히 살려내어야 될 책임을 진 처지가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전략은 이러합니다. ‘죽음 속에서도 만들어진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규정하시므로서 인간과 사단을 영원한 죽음의 대상자로 천명해버립니다. 이제 인간과 사단은 할 말을 잃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영원히 증거할 자를 결실물이 예수님의 죽음의 열매로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신 죽으심’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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