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약,구약 중간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대제(大帝) 통치기

이 시기는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진 역사의 장이다. 유대인들은 히브리 사람으로 잘 표현되는데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해가는 역사가 BC 18세기에 시작된다. 요셉을 따라 이집트에 내려갔던 그들은 모세의 영도하에 BC 1300년경 이집트을 탈출한다. 그들은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왕과 다윗왕 그리고 솔로몬왕의 번영을 뒤로하고 남북으로 나뉜다. 10개 부족의 북이스라엘과 2개 부족의 남유다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북은 BC 722년 아시리아에, 남은 BC 586년에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한다. 그 후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유다족 중심으로 뭉쳤던 그들은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먼저 페르시아 통치하의 유대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루살렘 멸망 직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 주변, 그리고 이집트와 바벨론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된다. 이 현상을 크게 나누어보면 예루살렘 중심지와 Diaspora에 산재한 여러 중심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대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으면서 당시 바벨론에서 임명한 그달리야 총독을 살해했고 그 후 이집트로 많은 사람들이 도망한다. 당시 유대에 남아있던 자들 중 일부는 바벨론의 신을 섬기거나 가나안 원주민의 바알신을 숭배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또한 그들 중 조상의 하나님에게 여전히 충성하는 자들도 없지는 않았었다.

한편 갈릴리와 사마리아 주변에 남아 있던 자들 중에서도 새로 정착된 이방의 이민들과 결혼하는 자들이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요인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랑민 집단이었다. 이들은 정착한 곳에서 조건적 자유를 누리며 대부분 농사를 지었던 것 같다. 그들은 재산을 모으고, 서로 화합할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유대 땅에 남아 있던 자들과 서신을 교환하며 가정과 지파별로 이루어진 집단 거주에서도 그들의 본래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바벨론이 BC 538년에 페르시아의 왕 사이러스의 손에 들어가면서 사이러스왕은 1년 후에 유대의 유랑민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허락한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을 위해 느브갓네살에 의해 BC 605년, BC 597년, BC 587년에 강제로 이주하면서 수세기 동안 유대 땅에만 집중되었던 상태에서 근동과 중동, 소아시아, 유럽에까지 확산된 하나의 종교적인 시기가 되는 것이다.

포로 기간을 포함한 페르시아의 통치 기간 동안 북왕조는 타민족과 완전히 합류하고 남왕조는 국제결혼을 거부하고 유대교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들의 공동체는 지도자인 장로와 율법, 그리고 회당으로 이루어져 발전되며 이 기간동안 사이러스의 화해 정책에 따라 고국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율법의 교육과 전수에 집중하며 안식일을 지키고 제사를 준행하며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하고 이미 얻어진 이방인 아내들은 돌려보낸다.

결국 이 시대의 유대의 역사는 양극성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중심지와  Diaspora에 산재한 여러 중심지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140년 넘게 세계를 제패했던 페르시아 치하에서 유대는 BC 400년까지 138년간 페르시아에 예속된 하나의 주(province)였으며 이때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128개주 전역에 분산되어 그들 나름대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제한적이지만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된다.

그 다음 알렉산더 대제하의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면 마케도냐의 립포스왕은 상호분쟁으로 힘을 잃은 그리스의 주변 도시국가들을 하나 둘 정복하면서 그 두각을 나타내다가 페르시아 제국까지 정복하려는 꿈을 실현 시키지도 못하고 암살당한다.

그 뒤를 이어 20세에 왕위에 오른 자가 바로 알렉산더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벌써 군사원정에 참여해 공을 세우기도 하고 용맹성과 부하 사랑을 몸소 보이면서 지도자로서 탁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부왕이 전쟁에 나갔을 때 부왕을 대신해 국정을 수행하기도 했다. 어려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정치, 철학,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걸쳐 지도자적 소양을 쌓았다. 부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는 주변 국가들을 정리한 후 BC 334년 세계정복에 나선다.

당시 서남아시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던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에 비해 알렉산더가 일으킨 정복군은 수적으로 열세였다. 즉 보병 3만 명에 기병이 5천명이었다. 보병 수에 비해 기병이 많았고 그들의 반은 마케도니아인이었고 그 나머지는 그리스의 동맹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로 진군해 Granicus강에서 페르시아군과 최초의 접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고 이어 다리우스가 직접 지휘하는 페르시아 대군을 Issus에서 맞아 또다시 대파했다. 다리우스 3세는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주했으나 그의 아내와 딸들은 포로로 잡힌다.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가족들에게 그가 살아 있음을 전하고 그들을 보호하며 왕족으로 대우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는 등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알렉산더의 군대는 승승장구하여 에베소, 밀레도, 시돈, 두로, 가사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 당시 대제사장이던 야두아가 나아가 절을 하며 다니엘서의 예언을 해석하며 그를 맞이한다. 예언의 해석인즉 알렉산더가 그리스 최초의 왕이 되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벌하여 대제국의 맹주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알렉산더는 무혈입성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친구가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아주 호의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BC 322년 이집트을 공격하던 그에게 자신들의 지배자인 페르시아를 증오하던 이집트인들은 그를 대대적인 환영한다. 이 때 그곳 승려들은 알렉산더를 그들이 섬기는 암몬신의 아들이라고 찬양까지 한다.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도시를 설립하여 그리스 문명을 이식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자유롭게 이주하며 살 수 있는 특권도 부여한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는 후한 조건으로 평화를 제의해 왔으나 이를 단호히 거절한 알렉산더는 동북진하여 Gaugamela 전투에서 승리하고 바벨론을 점령한 후 동진하여 페르시아를 거쳐 박트리아를 점령한다. 알렉산더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동서양 융합을 시도하며 진군로를 따라 70개 이상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우면서 도시마다 원주민과 자신의 군대간에 통혼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마케도니아 군인과 아시아 여인간에 결혼을 명령하게 되고 자신이 앞장서 수사궁의 공주와 다리우스의 딸 공주, 그리고 페르시아의 공주와 결혼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식물 교합을 시도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려던 그는 BC 323년 33세의 나이로 열병으로 죽고 만다.

그가 죽은 후부터 로마가 그리스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시기까지의 약 300년을 헬레니즘 시대라 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정복의 결과로 이루어진 그리스와 동방의 여러 요소들이 혼합된 문명이 형성되었는데 이 문명을 고전적인 그리스문화와 구별하여 헬레니즘 문화라고 부른다. 알렉산더는 불과 10여년 만에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고 통합한 위대한 왕이었다.

그의 정복과 꿈의 실현은 정치 군사적인 의미를 넘어 문화사상 큰 의미를 남겼으며 훗날 기독교의 태동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즉, 그에 의해 이루어진 그리스와 Orient 세계의 통합, 그리고 동서융합 정책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두 문화권의 융합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나의 문명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의 세계정신은 이 지역의 통치권을 이어 받은 로마에 의해 계승되어 지중해를 내해로 한 하나의 세계를 형성케 했다. 또한 그의 원정과 통치를 계기로 이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사용되기 시작한 그리스어는 이 지역의 여러 민족이 사용하는 당시의 세계어가 되었다. 결국, 알렉산더의 정복은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제국의 막대한 보화를 소유한 후 도덕적 타락과 동양의 사치 풍조에 물들어 나약해진 단점을 가져왔으나 그리스인과 이방인들 간의 구별을 완화시키고 헬라어가 문화어로 세계 공용어가 되게 함과 동시에 유럽에서 인도에 이르는 해로를 발견케 하는 기여를 하게 된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그가 건설한 도시 어느 곳에서나 많은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호의를 베풀었다. 바벨론 포로에 의한 유대인들의 강제 이주와 페르시아 치하에서의 128개 주에 이르는 자유로운 거주 이전의 호의와 알렉산더 대왕의 유대인에 대한 주거의 자유로운 배려는 훗날 기독교의 신속한 전파에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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