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보속 (Penance)
카톨릭은 죄를 완전히 씻고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돈을 내고 보속을 받으라고 권장합니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은 완전한 영적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해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이라고 부른다. (제2편 p.534)
카톨릭 교인들은 자신의 죄값을 치루고,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보속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성경에 근거 없고, 면죄부와 같이 카톨릭의 또 다른 돈 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 죄를 대신한 대속(代贖, expiation)과, 죄인된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 사신 구속(球贖, redemption)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히브리서 10/17~18 또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음이라.
이제 이것들을 용서하신 곳에는 더 이상 속죄제가 없느니라.
성령께서는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한 후에는 우리의 크고 작은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완전히 용서받았으므로 더 이상 속죄제나 다른 형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보속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묘사합니다.
보속은 기도일 수도 있고, 헌금 자선행위, 자발적인 절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인내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다.
보속을 헌금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너무 속 보이니까 기도, 선행, 절제, 희생, 고난 등도 함께 제시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선한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될 수 없음이라.
사도 바울은 사람이 율법이나 의식적인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구속을 믿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 기준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으나,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32. 그리스도를 자칭하는 천주교인 (Catholics represent themselves christ)
카톨릭은 신자가 스스로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립니다.(제1편 p.309)
그리스도인이 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맞으나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그리스도 자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적 사고방식입니다.
마태 24/5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께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전권을 위임 받은)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문이 되시며, 지옥과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자신도 구원 못하고 늙어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은 감히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라 함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33. 세례 - 천국의 보증수표
카톨릭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세례라는 형식을 통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유혹하지만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마가 7/9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는 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자신들이 만든 유전과 전통을 더 따르는 유대 지도자를 비판했습니다. 세례는 구원 받은 다음 행하는 기념식이지,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습니다.
요한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요한 1/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마태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시니라.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거듭남'입니다.
온전히 거듭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언제 죽어도 천국행이 보장됩니다.
거듭나서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거듭나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형제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4. 화해 (Reconciliation)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카톨릭 신자는 동시에 카톨릭 교회와도 화해하게 된다고 교리문답서는 주장합니다.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과 화해할 뿐 아니라 교회와도 화해한다. (제2편 p.535)
이러한 주장은 역으로 교회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게 됨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해만 강조하지 교회와의 화해는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 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라.
화해란 안 좋았던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좋게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 보혈로 죄를 깨끗이 사함 받음으로써 죄로써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져 화해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라. 그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과적인 역사를 따라 각 마디를 통하여 공급을 받아 알맞게 결합되고 체격이 형성되어 몸을 성장시키며 사랑 안에서 몸 자체를 세워 가느니라.
에베소서 2/19~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이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
성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구절은 없습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거듭난 성도의 연합이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입니다.
신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성령님은 나의 조력자이십니다.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믿음과 죄사함과 거듭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5. 독신생활(Celibacy)
카톨릭은 사제와 수녀의 독신생활을 강요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카톨릭의 전통일까요?
종신부제들을 제외하고 라틴 교회의 서품 받은 모든 봉사 직무자는 원칙적으로 독신으로 살고, 또 하늘나라 때문에 독신생활을 계속할 의지를 가진 남성 신자들 가운데서 선발한다.
독신생활은 교회의 봉사 직무자가 봉사하도록 축성된 새로운 삶의 표징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독신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찬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제3편 p.573)
카톨릭은 사제의 독신생활을 의무요, 축복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독신이 의무화된 직분은 없었습니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여,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직분 중 하나인 감독(Bishops)이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당시 결혼을 금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
집사(Deacons) 또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권고합니다.
히브리서 13/4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사도 바울은 결혼이 천하지 않고 존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합니다.
물론 성직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결혼을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사제의 독신 생활을 강요함으로써 미국에서는 사제의 어린이 성추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스페인과 멕시코의 수녀원에서는 사제들과의 관계로 태어난 아기가 버려져 유기된 지하무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순리를 억지로 거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가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었으므로 사람들이 곧 그녀에 관하여 그 분께 아뢰매
천주교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사도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으로 성경에 장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면 결국은 폐해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36 마지막 의례 : 노자성사 (Last Rites)
마지막으로 살펴 볼 천주교의 교리는 죽기 전 천주교인이 행하는 노자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성사로서 성체는 언제나 지상 순례 길의 마지막 성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자(路資)성사가 되어야 한다. (제2편 p.552)
마지막 의식은 죽어 가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노자성사가 생명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 중 한사람도 노자성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마태 15/9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는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전통대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내 버리고, 사람이 만든 교리와 의식과 전통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이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를 더 확실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천주교에 계신 분은 교리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여 온전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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