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히브리서 개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그리스도와 멜기세덱-히브리서 7장

 

 

 

본 장은 히브리서의 두번째 부분으로, 우월한 제사장 직분에 대해 소개한다. 이 부분에서의 저자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아론이나 땅에서 봉사하던 그의 후계자들의 직분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인데(8:4), 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더 나은 반차(7장)를 따른 것이며, 더 나은 언약 아래서(8장), 더 좋은 성소에서(9장), 더 나은 제물로(10절)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 장의 핵심 인물은 신비로운 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으로서, 그는 구약전체를 통하여 단 두번 나올 뿐이다(창 14:17-20/시 110:4). 바울은 아론을 능가하는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세 가지를 논증한다.

 

 

 

1. 역사적 논증-멜기세덱과 아브라함(7:1-10)

 

 

 

첫째로, 저자는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본다(3, 14절). 그는 제사장인 동시에 왕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역시 그러하시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으로서 보좌에 오른 자는 아무도 없다! 사실상 영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사역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앉지 않았다(히 10:11-14). 더우기 멜기세덱은 살렘(“평강“)의 왕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우리의 평강의 왕이시다.

 

또한 멜기세덱의 이름이, 하나님의 의로운 왕이신 그리스도께 분명하게 적용되는 “의의 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과 직무상으로 볼 때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적절한 표상이다.

 

 

 

그뿐 아니라 저자는 또한 멜기세덱의 근원에서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성경 기록에 관한 한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물론 이것은 멜기세덱이 부모가 없었다거나 죽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구약의 기록은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침묵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처럼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한 것이다.

 

그의 제사장 직분이 자연적인 혈통에 의존되지 않았던 반면, 아론의 제사장들은 계보(系譜)의 기록들을 통해 그들의 직책의 정당성을 변호해야만 했다(느 7:64). 아론을 계승한 모든 대제사장은 다 죽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처럼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머물러 계신다“(8, 16, 24-25절),

 

다음으로 저자는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와 같이 봄으로써 이제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왜냐하면 아론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레위도 축복받고 있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땅에서, 유대인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제사장들은 십일조를 받았다. 그러나, 창세기 14장으로 돌아가 보면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이 낮은 것을 보여 준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오늘날 신자들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아브라함을 본받고 있다. 저자는 십일조가 중단되었다거나 그리스도께 십일조를 바치면 그가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2. 교리적 논증-그리스도와 아론(7:11-25)

 

 

 

바울은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탁월하다는 역사적인 기반을 굳게 세운 후, 이제는 교리적인 관점에서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보여 준다. 여기서 그는 시편 110편 4절을 본 논증의 근거로 인용하며 세 가지 점을 제시한다.

 

 

 

아론은 멜기세덱으로 대치되었다(11-19절)-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제사장 직분을 폐지하시는 것이었다. 신적 제사장 직분이 두 가지로 병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반차를 세우셨다는 사실은 아론의 옛 반차가 연약하고 비효과적인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아론의 기능을 뒷받침해 주었던 율법 역시 폐지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19절).

 

따라서 결론적으로, 제사장 직분도 역시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가 없었으며“(11절), 저들이 드리는 제사로도 온전케 할 수가 없었다(10:1). 물론 히브리어의 “온전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선다“는 뜻으로서, 무죄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단어이다. 아론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에 의해 제사장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16절) 그 기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아론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결코 죽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론은 맹세로 세움받지 않았다(20-22절)-출애굽기 28-30장에 나오는 정교한 의식들을 통하여 아론과 그의 계승자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지만 그들의 제사장 직분을 인치셨다는 신적 맹세에 대한 기록은 없다. 사실상 하나님은 그들의 사역이 어느 날 끝이 날 것임을 아셨기 때문에 맹세로써 그들의 반차를 인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제사장이 되도록 정하셨을 때는 불변하는 맹세로써 그 직분을 확증하셨으며, 이러한사실이 그리스도께서 아론보다 더 우월하심을 입증한다.

 

 

 

아론과 그의 계승자들은 죽었으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다(23-24절)-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하였으나 육체의 약함으로 인하여 제한을 받고 있었다. 아론은 죽었으며, 그를 뒤이은 자손들도 죽었다. 제사장 직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더이상 죽지 않으시며 살아 계신다. 그는 불변하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시는데, 이는 그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히 살아 계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중재하시며 이로 말미암아 그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가 있으시다. 대체로 25절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적용시키지만 사실상 그것은 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매일 중재하시고 계신다."

 

 

 

 

 

3. 실천적인 논증-그리스도와 신자(7:26-28)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라는 말은 우리에게 알맞으며,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며, 우리의 환경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아론의 어떤 후손도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께 주어진 묘사에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론 자신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이끌어갔으며, 또한 엘리의 아들들도 탐식과 부도덕의 죄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완전한 대제사장이 계신다. 그는 지상의 어떤 제사장보다 거룩하시며 하나님의 존전의 하늘 장막에서 섬기는 그 어떤 직분보다 높으시다.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먼저 자신들을 위해, 다음으로는 백성들을 위해서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기에 자기 죄를 위하여 속죄하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가 드린 단번의 제사가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염소와 황소의 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는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런 저런 종류의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모든 죄와 연약함으로부터 자유하신 분이다.

 

 

 

이제는 멜기세덱의 반차가 아론의 반차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레위보다 멜기세덱을 더 높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입증되었고, 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을 변역하심으로 율법도 변역하셨다고 명확히 언급하는 것으로서 교리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대제사장이 되는 자격을 지닐 수 없기 때문에 실천적으로 입증되었다. 다른 식으로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며,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신다."

 

 

 

 

 

 

 

▣ 아론보다 더 위대하신 그리스도-히브리서 8장

 

 

 

저자는 그리스도의 하늘 제사장직이 더 나은 반차에 속하는 것임을 입증한 후, 이제 이 직분이 더 나은 언약을 통하여 수행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행한 모든 일이란 시내산에서 그 민족과 체결하셨던 옛 언약에 입각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소개하심으로써 그것을 “옛 언약“이라고 부르신 사실은 옛 레위 계통 제사장 직분이 이 십자가로 폐하여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서신을 읽는 독자들이 아론에게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옛 언약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대치되었으며(본 장에서), 저자는 새 언약이 더 나은 것임을 입증하였다. 그렇다면 새 언약은 어떻게 옛 언약보다 더 나은 것인가?

 

 

 

1. 더 나은 제사장이 사역함(8:1)

 

 

 

이 구절은 이전에 제시된 논증들의 “종합“이다. “이러한 대제사장(7:26-28 에 묘사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는 말로써 아론보다 더 우월한 대제사장이 있음은 이미 입증되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었기에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러나, 아론 계통의 제사장은 어느 누구도 보좌에 앉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레위 계통의 그 어떤 제사장도 보좌에 앉은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영광 중에 계신 우리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시다. 그리고 더 나은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더 나은 언약으로 우리를 중재하신다. 그가 하늘에서 옛언약을 수행하지 않으실 것은 분명하다. 새 대제사장은 새롭고 더 나은 언약을 요구하신다."

 

 

 

 

 

2. 더 나은 장소에서 사역함(8:2-5)

 

 

 

그리스도께서 만일 땅에 계시다면 그는 제사장으로 사역하실 수 없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서 나셨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성전 뜰에 계신 것은 보았지만 성소나 지성소에 계신 것은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오직 새 언약의 우월성을 입증한다. 새 언약은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수행되는 것이다.바울은 또 다른 논증을 덧붙인다. 즉, 하늘의 장막이 본래적인 것이며, 세상의 장막(성전)은 모사일 뿐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산에서 그에게 계시하신 본을 좇아 장막을 지었다(출 25:9/출 25:40).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전과 기구들과 의식들을 존중하였으나 이러한 것들은 다만 그림자들인 것이다. 실체는 하늘에 있었다. 옛 언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땅에 있는 모형들을 위해 하늘에 있는 실체들을 버린다는 뜻이다.

 

하늘의 성소에서 섬기시는 하늘의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이 어찌 위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행하게도 오늘날 선의의 그리스도인조차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서로 혼합하며 지상적인 것 때문에 천상적인 것을 버리며, 그림자로 인해서 본체를 버리는 일이 있다. 촛대, 분향, 의복, 제단, 세상의 제사장들 등은 모두 옛 언약에 속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천상 사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3. 더 좋은 약속 위에 세워짐(8:6-13)

 

 

 

새 언약의 약속들이 옛 언약의 약속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본 장의 핵심적인 논거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더 좋은 언약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더 나은 제사장 직분임에 틀림없다. 사실 그러하다! 먼저 예레미야 31장 31-34절을 읽고 더 나은 약속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은혜의 약속(6-9절)-8-13절에서 여섯 번이나 하나님은 “내가... 하리라!“(I will)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옛 언약은 백성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종의 멍에였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하실 바를 강조하는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바를 강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옛 언약에서 무슨 잘못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으신다는 점에 주의하자.

 

율법은 신령한 것이나 사람들은 육신에 속한다. 로마서 7장 14절은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말하며, 로마서 8장 3절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졌다“고 분명히 밝힌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의 실패는 옛 언약의 연약함때문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연약함 때문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은혜가 개입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율법이 할 수 없는 바를 십자가를 통하여 행하셨다!

 

 

 

내적 변화의 약속(10절)-새 언약에 속한 약속을 알아보기 위하여 예레미야 31장 31절을 읽고, 여기에 마음의 내적 변화가 포함된다는 것에 유의하자.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이 놀라운 주제에 관하여 부인하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옛 언약은 돌비에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인 것이지만, 새 언약은 인간의 마음과 그 정신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록되었다!

 

외형적인 율법은 결코 인간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만일 율법이 사람의 행위를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그것은 속 사람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신 6:6-9 참조). 이것이 로마서 8장 4절이 뜻하는 바이다. “율법의 요구(의)가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물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한없는 축복의 약속(11절)-개인 전도가 필요없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는 왕국의 설립을 기다린다. “다 나를 앎이니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는 반복된 약속과 유사하다. 여기에는 유대인처럼 이방인도 이 지식을 갖게 되리라는 뜻이 들어 있다.

 

 

 

사죄의 약속(12절)-히브리서 10장을 보면, 옛 언약 하에서는 죄를 생각하게 하였을 뿐 죄를 없게 하지는 못했다고 한 것을 볼 것이다. 염소와 수소의 피가 죄를 덮어 가리울 수는 있었으나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만이 “세상 죄를 지고 갈“ 수 있었다(요 1:29). 새 언약은 짐진 죄인에게 참으로 놀라운 약속을 주신다! 그의 죄가 용서되며 잊혀진 바되는 것이다!

 

 

 

영원한 축복의 약속(13절)-하나님께서 “새 언약“이라고 부르신 사실 자체가 옛 언약은 쇠하고 지나가 버릴 것임을 뜻한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즈음에는 로마의 군대가 주후 70년에 팔레스틴을 침략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없어져가는 것이니라“는 구절은 잠깐만 지나면 성전과 제사장의 활동이 영원히 멈추게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처럼 영원히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새 언약의 백성을 다루심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이 새 언약은 언제 들어오게 되었는가? 누가복음 22장 20절 이하와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은 새 언약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세워졌다고 명백히 말씀한다. 히브리서 12장 24절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오늘날 새언약의 중보이시다.

 

 

 

그러나, 예레미야 31장 31절 이하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고 언급한다! 우리는 이 언약을 교회에 적용시켜야 할 무슨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그 대답은 사도행전의 경륜적인 특성에 놓여 있다.

 

당신은 사도행전 1-7장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왕국을 제공하시는 내용임을 회상할 것이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신자들 안에 거하시려고 강림하셨을 때 새 언약은 강력히 이행되었다. 만일 이 민족이 그리스도를 못박은 죄를 회개하고 그를 메시야로 영접하였다면 새 언약의 모든 축복들과 약속들의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멧세지를 거절하였고 성령을 거스렸다. 그리하여이 민족은 제외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새 언약에로 인도하셨으며, 믿음을 가진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된 놀라운 새 일,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룩하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새 언약에 참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장래의 어느 날 “저들이 찌른 자를 보게 될 것이며“, 왕국이 설립되면 이와 같은 동일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The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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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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