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정통교회 안에 만연한 기복주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정작 예수님이 보상한 것은?지금 예수님에겐 점심을 건너뛴 제자들은 뒷전이었다. 이미 소명자로 따로 불려나온 당신의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인데 스스로 먹고 마실 것의 보상부터 간구할 수는 없다. 주님도 그들이 먹고 마실 것에 초연한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보이라고 일부러라도 그것을 우선적으로는 채워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목회자들이 지금 거룩한 것만 바치면 하나님이 먹고 마실 것을 풍성히 채워준다고 가르치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가르침이지 않는가? 무슨 일이든 결과가 그 일의 성격을 말해준다. 먹고 마시는 것의 풍성함을 위해 신앙 생활하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다 뿐이지 결과는 동일하다. 물질을 목적으로 삼지 않은 것 같지만 바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실은 물질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보다 유대인 무리를 먼저 가르친 더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기록한 그대로다. 바로 목자 없는 양떼 같아서다. “목자 없는” 양 떼라고 했지, “먹지 못해 배고픈” 양 떼라고 말하지 않았다. 삯군이 아닌 참 목자라면 양 떼가 먹고 마시는 것은 다 해결해준다. 제자들에겐 이미 목자가 있었지만 유대인들에게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참 목자였다. 양은 먹고 마시는 것만 채워지면 갈급함이 없다. 인간은 다르다. 아무리 먹고 마시는 것이 풍족해도 여전히 공허하고 갈급하다. 인간의 진짜 갈함은 다른 곳에서의 부족함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갈함이다. 육신의 궁핍이 아니다. 주님이 유대인더러 목자 없는 양 떼 같다고 말한 것은 인간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것이다. 인간을 지으시고 또 계속해서 감찰하셨고 택한 백성인 그들의 역사 속에 항상 함께 하셨던 하나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 전에 말씀으로 가르친 내용이 도덕적 종교적 훈계로 그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를테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같은 말씀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온 것은  인간이라면 하나 같이 목자가 없었기에 당신이 목자가 되어주려는 뜻이었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전부를 인간에게 주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골고다로 가시기 전까지는 천국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지금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참 목자나 포도나무 비유 등을 통해 당신의 목자 됨을 설명해주었을 것이다. 또 당신이 그 목자임을 반드시 증명해 보여야 했다. 가르침에 증험이 따르지 않으면 단순히 도덕 종교 선생에 불과하지 양 떼를 먹이고 치는 목자가 아니지 않는가?  요한 사도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신 목적을 무엇이라고 설명했는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여 영생을 주려는 것이라고 한다. 목자로서 당신의 전부를 주어야 하기에 당신이 참 목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것이다. 다른 말로 오병이어 기적에서 소년과 제자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받은 떡은 단순히 배불리 먹는 떡이 아니었다. 예수님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깨닫게 만드는 뜻이었다. 오병이어 기적을 누린 사람들이 어떻게 고백했는가?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요6:14)다른 말로 그들은 바로 예수님 당신을 받아먹은 셈이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오병이어 기적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풀어서 설명해주신 말씀이다. 신자는 더 받을 것이 없다.현대만큼 먹고 마시는 것에 풍부한 적은 인류 역사상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행복한가?  갈하지 않고 충족해졌는가? 오히려 그 정반대다. 육신적으로는 많이 편리해졌는지 몰라도 정신적, 영적으로 지금처럼 황폐해진 적이 없다. 이천년 전의 유대인들은 그래도 자기들에게 목자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현실 세계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측면이 자기 속에 공허하게 남아있다는 점은 인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서 찾으려 시도는 했다. 현대인들은 목자가 없다는 것은 물론 자기가 갈급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인간이라면 정말로 보고 들어야 할 대상에 눈과 귀가 완전히 다 막혔다. 목회자가 할 일은 바로 그것을 보고 듣게 해주어야 한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 그들로 먹고 마시게끔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와 목사에게?) 거룩한 것을 바치기만 하면 먹고 마시는 것은 충족하게 채워준다는 사탕발림은 남발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먹고 마시는 것으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음을 가르쳐야 하는데 거꾸로 더 갈급하게 만드는 셈이다. 틈만 나면 창고에 쌓을 것이 없도록 오병이어 같은 복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준다. 그런 기도를 듣는 신자들로선 평생 가도 실제로 그런 기적을 경험한 적이 없다. 목사의 공허한 독백으로 흘려듣던지, 평생토록 복권 당첨되는 것만 기다리듯 아무 열매 없는 빈껍데기 종교 생활에 지치게 만들고 있다.  오병이어 기적에서 소년이 어떤 경위에서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 일은 분명 선했다. 그러나 누차 말하지만 주님이 갖고 오라고 해서 바친 것이다. 모든 것을 먼저 바치면 크게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가르치는 기적이 결코 아니다. 신자는 십자가로 구원 받는 것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받았다. 더 이상 받을 다른 것은 없다. 목자이신 그분을 떡으로 받아먹었지 않는가? 또 그분이 구원 이후의 신자의 모든 삶과 인생을 거룩하게 주관해주지시 않는가? 골고다의 주님만 생각하면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와야 한다. 진심으로 그분을 묵상하면 아무리 힘든 환난이나 주위여건이라도 그분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막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박 신 목사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