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감독,기독인은 화평케 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서로에게 마음을 넓히고 다른 점들을 용납하는 태도를 가짐이 마땅하다.같은 것 중심으로 일치연합을 도모함이 옳다.그러나 그 다른 것이 기독교의 본질에 속하고,근본진리에 해당하는 것이면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옳다.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더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느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랴”(고후 6:14-15)고 말한다.
나는 2010년에 WCC의 위험성을 12가지로 간추려 발표했다. 이 성명은 WCC가 기독교 복음 전파에 역행하고 교회 건설 사명을 방해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을 약화시키는 반성경적, 비기독교적 단체라는 말로 시작한다. 복음적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의 구성원으로 WCC의 위험을 지적한다.
① WCC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최종적 규범이라는 것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② WCC는 성경의 기본 교리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치를 추구하며, 이단과 적그리스도와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규제하지 않고, 교회의 변증적 사명을 무시한다.
③ WCC는 개신교회의 토대인 전통적인 구원관, 특히 이신칭의의 신앙을 약화시키거나 상대화 하며, 인간해방과 혁명을 구원 행위로 본다.
④ WCC는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다고 하며,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한다. 결과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할 당위성을 포기하였다.
⑤ WCC는 성령을 정령(精靈)과 동일시하는 초혼제(招魂祭)를 용납하고, 성령을 물활론(物活論)적으로 해석하는 비기독교적 사상을 방조하였다.
⑥ WCC는 ‘하나님의 선교’(misso Dei)라는 개념을 선교에 도입하여 인간화, 화해, 사회참여 등을 선교의 지상과제로 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전도의 긴박성과 구령사업을 저해한다.
⑦ WCC는 ‘통전적 선교’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빈곤퇴치와 사회활동과 구조악 철폐 등에 치우친 선교를 하고 있다.
⑧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를 추구하고 정교회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선교 유예(moratorium)를 시행하도록 하여 성경적 복음 진리 전파를 방해한다.
⑨ WCC는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과 궤를 같이하는 좌파 성향의 용공주의 태도를 지녀왔고, 공산권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 생명박탈, 신앙의 억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⑩ WCC는 ‘교회’의 연합체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성찬 중심의 교제 단체이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실상 교회의 본질인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포기하였다.
⑪ WCC는 신학적 다원주의와 신앙무차별주의(indifferentism)을 지향하며, ‘교리는 분열시킨다’고 하면서 기독교 교리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교회의 생명력을 쇠퇴시킨다.
⑫ WCC의 외형적 기구 일치운동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진리 안에서 일치된 신앙고백공동체, 곧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분열시킨다.
이것들은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 지상주의, 용공주의, 개종전도 금지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교회 일치주의, 신앙고백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로 정리된다. 나는 10가지 항목의 글을 담은 <에큐메니칼 아이덴티티>(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0)을 출간했다. 어느 그룹이 이 책을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채 위 성명문을 담아 무엇이 문제인가?>(서울: 총회출판국, 2010)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나는앞서 저술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이어 WCC의 신학과 특징들을 세밀히 연구한 <신학충돌>, <신학충돌 II>, <교황 신드롬>을 출간했다. 모두 이 단체의 신학적 정체성을 규명한 책들이다.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의 차이는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인가?아니면 성별(聖別)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가?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은 융합할 수 없는 두 지평을 달라고 있다. 중심축이 다르다. 왼쪽으로 도는 팔랑개비와 오른쪽으로 도는 팔랑개비의 방향이 다르듯이 다르게 돌아간다. 지구의 북반부 욕탕 배수구 방향과 남반부의 방향이 다른 것과 같다.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신학이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다. 영지주의와 정통 기독교가 다르듯이,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4. 진리 패러다임의 차이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신학은 규범신학에 해당한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인 규범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담인 영원한 진리라고 믿는다.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과 에반젤리칼 진영의 가장 큰 차이는 진리 패러다임의 차이이다. 전자는 이성주의, 합리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 칸트의 인식론, 그리고 이 인식론이 가져온 진리상대주의, 주관주의, 나아가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직결되어 있다. 성경적 진리에는 등을 돌리고 탈기독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진리는 불변하는 것인가 가변적인 것인가? 상황, 맥락에 따라 바뀌는가 고정되어 있는가? 어제 진리이면 오늘도 진리이고 내일도 진리인가? 하나의 진리가 단수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다수 또는 복수로 존재하는가? 진리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인가?
진보계 신학자들, 에큐메니칼 신학은 진리를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고 가변적이라고 이해한다. 진리의 불가변성(immutability)를 거부한다. 진리는 단수(one)가 아니라 복수(plural)로 존재하고, 절대적이거나 고정되어 않으며,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고 맥락에 따라 변한다고 본다.
에반젤리칼 사고는 진리는 불변하고 하나이며, 객관적이리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하다고 믿는다.
에반젤리칼 그룹은 역사적 기독교 전통을 따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이 하나님이 영원한 진리를 인간의 이해 채널에 맞게 계시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특별 계시라는 채널을 거쳐 우리에게 준 진리는 상대적이거나 주관적이거나 가변적이지 않으며, 절대적이며 불변하며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영원하다고 믿는다.
에큐메니칼 신학과 에반젤리칼 신학은 조화, 융합될 수 없는 서로 다른 지평을 달리고 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서로 다르다. 조화, 융합, 병합, 일치할 수 없는 가장 큰 까달은 서로 다른 진리 패러다임이다. 성경에 토대를 둔 ‘규범신학’과 다수가 동의하는 것(integrally)을 진리로 여기는 ‘정합신학’은 융합, 일치할 수 없는 지평을 유지하고 있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BREAD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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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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