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비멜렉의 亂 [9장]기드온이 죽고 난 다음에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첩의 자식이 등장해서 자기 어머니가 세겜출신 여인이니까 거기에 가서 혈연에 호소한다. “당신들과 나는 피가 같지 않소 그러니 당신들은 - 기드온이 남긴 아들이 70명인데 - 그 사람들의 통치를 받겠소, 나 한 사람의 통치를 받겠소”라고 선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세겜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우고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70 아들을 한 반석에서 잡아 죽인다. 요담만 겨우 난을 면해서 도망한다. 아비멜렉이 이처럼 기드온의 아들들을 다 죽이고 핏줄에 호소를 해서 이스라엘의 왕, 교회의 지도자가 된 그 사건이 결국 무얼 의미하는가를 암시하는 하나의 비유를 말하고 있다. 감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등과 같이 열매를 맺는 즉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나무는 한결같이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섬길 뿐이요 사람 위에 군림하기를 오히려 거부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기드온이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 왕되기를 요청한 백성들의 원하던 교회의 지도자 상이 세상에서 군림하는 영웅적인 모습의 지도자상 이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사울에게도 그대로 확인이 된다. 사울을 묘사할 때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로 머리하나 더 컸다고, 곧 장대하고 얼굴이 준수한 영웅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아비멜렉이 혈연에 호소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 스스로 왕되기를 자임하고 나선 아비멜렉의 정권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가를 가시덤불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히 얘기한다. 가시덤불은 불쏘시게 외엔 아무 쓸모가 없다. 남에게 유익하지 않다. 이런 쓸모없는 자를 우리의 왕되기를 원한다. 이와같은 왕권은 철저한 전제주의, 왕에 대한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서는 폭력정치 즉 자기편을 보호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징치하고 숙청하는 그런 정권이다. 이런 비유를 통해서 새로이 들어선 교회의 지도자 정권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그리고 결국 이 정권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서로 망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사실 그대로 이루어졌다. 아비멜렉이 세겜사람을 치는 도중에 마지막에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 죽게된다.사사시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타락해져 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교회로서 존재할 것을,교회란 곳이 어떠해야하며 교회는 이러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모습을 포기 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듣는 것이다. 교회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을 성결케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단번에 가나안 족속을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 자체가 그들을 남겨 두고 두고 두고 그들을 연단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가장 근본 원인은 그들이 전쟁의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와같이 시작된 이스라엘의 타락이 결국 드보라에 와서는 이미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에는 무관심하고 방관적인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교회의 하나됨이 이완되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란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나타난 과정을 추적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기드온 때 오면 백성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교회 지도자상에 대한 오해와 변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에게도 세상 지도자와 같이 번쩍거리는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처럼 교회가 세상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것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7) 입다 사사시대 [11장]그다음 중요한 사사로서는 입다의 출현이다. 이때는 압몬족속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이다. 입다는 길르앗 출신이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땅 므낫세 반지파와 르우벤과 갓지파가 차지하고 있던 그 땅이다. 용사였으나 출신이 미천하다. 미천한 출신이기 때문에 형제들이 자기들 가운데 유업을 주지않고 떠나라고 해서 비류처럼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외침에 의해 위기를 당하게 되자 입다가 용사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장로들이 입다를 청해서 그들의 방백이 되어서 암몬 자손들과 싸워 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이 청을 들으면 길르앗 거민의 우두머리로 삼을 것을 약속하자 입다가 이를 수락한다.그러나 이런 모든 일의 진행 과정 자체가 과연 얼만큼 타당한 것인가, 물론 나중에 입다가 정작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지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를 사용하셨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전혀 하자가 없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별히 암몬 자손과의 전쟁을 앞두고 만일 여호와께서 이번 전쟁을 승리하게 하시면 나를 맞으러 나오는 자를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이기고 돌아 왔더니 자기를 맞은 사람이 무남독녀 딸이었다. 이미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해서 크게 슬퍼하는 가운데 그 딸이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스스로 죽겠다고 한다. 얼마간 기간을 주어서 처녀로 죽음을 슬퍼하게 해 달라고 한 다음에 기록 된 대로 그렇게 하였다.* 인신제사가 의미하는바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많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생각하면 참 곤혹스러워 한다. 기생 소생이었고 비류 출신이었고, 그런 사람으로 끝났다고 하면 별난 사람이었구나 라고 치부해 버릴텐데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큰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다는 말씀 다음에, 전쟁에 임하면서 입다가 이런 서원을 했다는 것이다. 입다가 이런 서원을 했다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에도 설왕설래가 있고 그리고 서원을 행한 것이 잘한 것이냐 잘못한 것이냐 등등, 일단 하나님께 약속을 했으니 무슨일이든 무조건해야 된다. 즉 잘한 것이다 하는 이도 있고 잘못한 것이다 라는 이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뭔가 되긴 된것 같은데 끝말이 명백하지가 않다. 번제로 드렸는가? 사람을 잡아서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너무 엄청난 일이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딸을 성소에 보내서 평생을 성소에서 지내면서 처녀로 늙어 죽게 했다고 해석을 하는 이도 많이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어려움을 느껴서 이런저런 해석을 하는 것인데, 우선 맨 마지막에 처녀로 죽음을 슬퍼했다고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보면 이스라엘 중에 해마다 입다의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규례가 생겨났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성소에 가서 처녀로 늙어 죽은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해마다 슬퍼했을까?(시집 못간것 때문에) 그것은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서원을 행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 분명히 입다는 번제로 드리겠다고 했다. 어떤 이는 번제를 영적으로 해석을 해서 하나님께 헌신한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사람을 잡아죽이는 번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하면 문제가 됐다는 것 자체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그 정도 가지고 슬퍼 할 것은 못되기 때문이다.분명히 입다가 서원한 것은 율법이 금하고 있는 인신제사를 서원했었고 돌아와서 자기 딸이 바로 그 대상으로 지목이 되었고 그리고 죽었다. 결국 죽었다는 것이 그 뒤에 나오는 내용으로 봐서 맞는 것 같다. 단순히 성소에서 독신으로 늙어 죽었다는 말만 가지고는 그 후에 이스라엘의 반응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입다의 딸 자신이 몇 달동안 슬퍼했다는 것 등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실제로 있었으니까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문제는 입다의 서원자체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것이냐, 그것은 아니다. 서원 자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그렇다고 하면 이렇게 서원을 하는 것이 잘못 됐다고 하는 것이 이런 것에 의해서도 암시가 되고있다. 결국 그가 돌아왔을 때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이 딸이었다는 것은 입다의 서원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것이고 잘못 되었는가? 하는 것을 것인가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서원에 얽메어서 딸을 죽였는데 이런 것은 사사시대의 사사들,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구원을 일으킨 그런 사람들을 너무 완벽한 사람들로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할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 때 까지 흘러온 사사기의 전체 흐름을 볼 때 또 사사기 초두에서 얘기한 대로 세월이 갈수록 이전 시대보다 그 다음 시대가 더욱 부패했다는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이것은 결국 교회의 지도자로 세운 사람들 조차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했고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긴 했으나 다른 한편 얼마나 그들이 영적으로 무지했고, 상식 있는자 곧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자라고 하면 분명히 이것이 어긋난 일이라는 것을 알 만한 데도 무모한 짓을 행한 불상사였다고 생각한다.주변국가에서는 아주 후에 일이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모압을 칠때 거의 성이 함락될 위경에 처했을 때 모압 왕이 자기의 황태자를 잡아서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주변국가에서는 위경에 처했을 때 사람을 죽여 제사하는 일이 있었다. 만일 이런 배경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하면 입다가 이스라엘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 나가면서 그와 같은 서원을 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세상의, 이방의 타락한 종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었는가 알 수 있다. 기드온시대 이후로 이스라엘의 타락의 도가 얼마나 심화 되었는가를 암시하고 있다.*교회의분열(주도권쟁탈)입다에게 와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했는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일을 행했는가 사람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를 만큼 무지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다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가장 아픈 교회의 분열이 일어난다. 이는 기드온 때 어느 정도 표면화 됐었다.길르앗 사람은 요단 동편 사람들이고 그외 나머지 지파들은 요단강 서편에 기업을 얻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길르앗 사람이고 대체로 그때 전쟁을 수행한 사람은 요단강 동편 지역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들을 통해 놀라운 구원을 베푸시자 이제는 에브라임 사람이 들고 일어난다.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정작 필요할 때 일찍 달려와서 도와 주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터인데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와서는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로서의 위신, 권위 이런 것들을 세우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도자의 허세다. 일종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다.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는 기드온이 겸손하여서 나는 당신 발치에도 못미치는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에 일이 무마가 되었다. 그런데 입다의 경우는 따지고 든다. 우리가 당신들을 불렀지 않느냐, 당신들이 오지 않고선 이제 와서 딴 소리냐 하고서는 싸움이 붙어서 큰 전쟁이 나는데 에브라임 사람이 패한다. 길르앗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터를 지키고 서서 요즘도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방에 따라 말이 다르듯이 에브라임 사람들이 잘 하지 못하는 ‘씹볼렛’ 발음을 하게 해서 잘 하지 못하면 잡아 죽이는 불상사가 생겨났다. 요단강을 중심으로 교회가 동서로 분열했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이러한 교회 분열의 심각성을 암시하는 일이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정복전쟁이 거의 마무리가 되고 여호수아는, 이 때 까지 자기들의 가족과 모든 소유를 요단강 동편에 남겨두고 요단강을 건너와서 자기 형제들을 앞장서서 전쟁을 수행하던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의 용사들을 다시 고향에 돌려 보낸다. 돌아 가면서 이들이 요단강 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이 소식을 듣고 여호수아가 노발대발하고 온 이스라엘이 들고 일어나서 쳐 없애 버려야 한다고 얘기를 한다. 그래서 제사장을 시켜서 진상을 확인하는데 확인하는 과정에서, 너희들이 왜 이런 제단을 여기에 세웠느냐?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곳까지 예배 드리러 와야 하지 않느냐? 너희들이 그 땅이 싫으면 이리로 건너오면 얼마든지 땅을 주겠다고 얘기를 한다. 이 말 속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는가 하면 성소가 두개 생기게 되면 결국 교회가 둘로 분열되고 만다. 그 성소를 중심으로 섬기는 제사장이 서게 될 것이고 결국 교회가 분열되고 마는 것이다. 오직 한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신 그 뜻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그 중에 아주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의 영적 통일성 곧 교회의 하나됨을 유지하기 위한 뜻이 그 속에 분명히 있었다. 따라서 요단강 동편에 또 하나의 제단을 쌓았다고 했을 때 온 이스라엘이 들고 일어난 이유는 결국 무엇에 대한 분개인가하면 물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명령의 참 뜻이 이스라엘에 영적으로 하나의 구심점이 있게 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것은 교회 분열에 대한 분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은 해석이 타당한 것은 그 후에 이 일이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때 그쪽 사람들이 얘기 하기를 이런 제단을 우리가 만든 것은 여기에서 제사를 드리고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요단강 서편에 동일한 제단을 쌓아 둠으로서 너희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세웠다고 얘기를 하니까 수긍하고 돌아가고 만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속한, 이스라엘과 하나인 것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증거로 쌓은 하나의 제단이다, 한 교회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어떤 조처였다고 얘기를 하자 납득하고 돌아간 일이 있다.이런 사건을 살펴 보면 초기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스라엘의 분열을 얼마나 심각한 것으로 생각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염려하던 그 일이 여기 입다때 와서 교회 내의 주도권 쟁탈 즉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 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교회가 갈라서고 만다. 이 때 까지는 적어도 이스라엘 내에서 서로 싸우는 일은 별로 없었다.(소규모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집단적으로 큰 규모로 서로 죽이는 일은 본격적으로 여기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이때까지는 교회의 대적이 교회 바깥에 있었으나 이제 여기서는 그 대적이 내부에도 있게 된다.그것은 교회의 분열의 모습이다.기드온 시대에서 부터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이 본격화 되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좀 소극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이제 부터는 적극적인 변질이 시작되었다. 우선 교회 지도자에 대한 상이 변해졌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온 세계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나 특별한 의미에서) 영역이요 하나님께서 왕이시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라고 하는 그것을 빼고 나면 교회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바로 그 교회를 다스리는 그것이 무엇이냐 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가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것이다. 세상처럼 좀 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적으로 세상의 지도자와 비슷한 교회 지도자상을 원하게 된것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완전히 표면화된 것이 첩의 소생 아비멜렉을 통해서 나타난다.이스라엘내 교회 지도자상과 관련해서 어떤 변질이 일어났는가? 그것이 사건으로 돌출된 것이 아비멜렉 사건이라 볼 수 있다. 내 편이 되라 그러면 잘 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이런 모습은 결코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없다. 이것은 교회 본질 자체의 변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입다에게 와서는 사람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무지막지한 일로 나타나게 되었고, 더우기 교회의 헤게모니 쟁탈로 인해서 교회가 동서로 분열되는 참담한 현실을 초래하게 되었다.(8) 입산과 엘론의 사사시대(통혼이 의미하는 바) [12장]두 사람의 사사가 짤막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즉 입산과 엘론이 나타난다.이 사람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가 없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짤막한 언급이 있다. 딸 서른과 아들 서른이 있는데 모두 바깥 사람들과 결혼 시켰다고 되어 있다. 바깥 사람 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당시 각각 자기 지파대로 살고 있었으니까 자기 지파외에 다른 지파들과 통혼한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해석을 한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지파 간에 혼인이 금해진 것도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아들없이 딸만 두었을 때 그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기업이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처로서, 같은 지파 내 사람들과 결혼하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이스라엘 내에서 서로 통혼 하는 것이 결코 금지된 적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바깥으로 시집 보내고 며느리로 맞아 들였다는 이 표현은, 여기서 바깥이라는 것은 분명히 이방인들과의 통혼이라고 생각된다. 왜 통혼을 했는지 모르겠으나(일종의 외교수단으로 정략결혼 즉 평화적인 관계를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 의도가 무엇인지간에 초래된 결과라고 하는것은 혈통이 뒤섞이는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는 교회의 외적인 형태가 혈통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구약에서는 혈연이 중요했다.지금은 교회가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교회의 일원이 된다. 물론 이 원리가 구약에는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원칙적으로 있었지만, 그러나 구약에서는 외적으로는 적어도 아브라함의 육적 혈통을 타고 나면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에 속하게 되어있다. 이런 구약적 특성을 감안한다고 하면 혈통의 뒤섞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세상과 교회간의 구분을 완전히 철폐해 버리는,세상과 구별되는 존재로서의 교회존재를 포기해 버리는 행위다.이것도 이스라엘의 한 일각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교회 지도자가 솔선수범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사압돈엘론그 다음 스불론인 엘론이 10년을 치리했고 압돈이 8년을 치리했다고 되어있다. 이 사람에게는 아들 40,손자 30이 노새 70필을 타는 자였다고 되어있다.이 뜻이 무엇일까? 드보라의 노래에도 잠깐 언급이 됐었는데,나귀 타는자(노새타는자)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지도급 인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노새라고 하는 것은 귀인들이 타는 것 곧 신분의 상징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아들 40,손자 30이 노새 70필을 탔다라는 것은 자기 아들과 손자들을 이스라엘의 요직에 다 앉혔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를 가리켜 족벌정치주의라고 한다. 기드온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성격을 급속도로 상실해간다.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변질이 일어나고 영적무지, 무모함, 주도권 쟁탈로 인한 교회분열, 세상과의 통혼을 통한 공존,세상과의 구별을 상실하고 혈연에 의한 권력구조 형성등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다.(9)삼손사사시대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삼손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보면 이스라엘이 타락했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사사가 죽고 나면 또 타락하고 또 부르짖고 구원하는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또 동시에 하나의 큰 흐름은 악화일로로 치닫는 흐름을 관찰 할 수 있다. 지도자로부터 시작해서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갈수록 나타나는 양상이 하나님이 다스려 가시고자 하시는 교회의 본질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들로 나타난다. 자기 완력으로 폭력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될려고 한 아비멜렉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영적으로 우둔하고 무지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면서도 알지못하는 무지한 지도자도 있고 교회 주도권을 쥐기위해 교회를 갈라 쪼갠 일도 있었고 교회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서 교회의 거룩한 경계를 파괴해서 세상과 마찬가지로 만들어 버린 일도 있고 족벌주의 즉 교회에 자기 친족들을 다 중직에 앉혀서 족벌정치를 하는 현상들도 나타났다. 이것은 한국교회 뿐 만 아니라 교회사에서 얼마든지 있어왔고 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하면 대개 이런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가 어디서 변질되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되는가를 한번 돌이켜 보고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특히 삼손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한 사람도 없었다. 놀라운 힘을 개인에게 주신 일이 전무후무하다. 처음에는 하나님에게서 부터 도모(지혜)가 생겨나서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 것 처럼 해서 블레셋을 친다. 그런데 나중에는 거꾸로 삼손이 당한다. 들릴라라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있는데 블레셋이 그 여인을 이용해서 삼손을 타락시키고 그의 능력을 제거시킨다. 여자 때문에 망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시대 교회나 나타난 것은 다 나타난 것 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삼손이 마지막에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해서 다시 한번 힘을 얻고 다곤신전을 무너뜨리니 그 때 죽은 자가 삼손이 이전에 죽였던 자보다 많았다고 큰 승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삼손은 매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그가 회개한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사사기 전체흐름,타락일로와 결말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은 갈수록 타락일로를 걸었고 삼손에 있어서는 특히 매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사사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10) 두가지 사건 [17장-21장]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연대적 순서인가는 확실하게 말 할 수 없다. 그 두가지는 단 지파의 이주와 우상(신상)만드는 사건 그리고 또 하나는 레위족 첩 강간사건이다. 이것은 사사시대를 통해 나타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단적으로 요약 총괄해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에브라임선지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건의 경위를 본문을 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어머니에게서 은 천백을 취하니 어미가 저주를 하고 또 취한 은을 다시 어미에게 돌려주자 어미가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또 이 은을 성별하여 신상 곧 우상을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부패 영적무지등을 암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다. 이렇게 해서 미가라는 한 개인에게 속한 하나님의집, 개인성소가 존재하게 된다. 드라빔과 에봇을 만들고 그 아들중 하나를 제사장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한 평가를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제 눈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영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미 갈갈이 찢어져서 전혀 영적 결속감이 없이, 전혀 질서가 없이 각기 제 눈에 옳은 대로 소견대로 행했다. 그래서 전혀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서 제각기 제 마음대로 행한다.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그렇다고 이 사람이 전혀 하나님의 규례를 모르는 사람은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레위인 소년이 들리니까 그 사람을 잡아놓고 제사장을 하라고 했으니까 제사장은 본래 레위인 그것도 아론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개인차원에서의 신앙의 변질 곧 하나님의 섬김, 예배의식과 관련해서 생겨난 하나의 변질이라고 하면 여기에는 묘한 요소가 하나 덧붙게 된다.단 지파는 앞서 얘기했지만 아모리 족속을 정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쫓겨났다.유업을 얻지못하고 빙빙 돌아다니다가 결국 여기 이르러서 미가라는 사람의 집에 있는 개인성소를 지키는 레위인 제사장 소년을 만나게 된다.(17:13절 참조)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는 하나의 성소 밖에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를 납치하여 이 때에 이미 단 지파에는 독립된 성소를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섬김의 도리에 있어서, 의식영역에 있어서 특히 성소와 관련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지하고 타락했는가를 알 수 있다. 훤히 율법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도리에 벗어난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또 한가지는 레위 족속인데 여기에도 꼭 같은 말로 시작된다. 당시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제 눈에 좋은대로 행했다. 레위 사람이 첩이 음행을 해서 쫓아 보냈는데, 다시 연연해서 쫓아가서 데리고 오다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밝을때) 이방인들이 사는 마을에 가서 자면 될 텐데 그래도 하나님 백성(교인)집에 가야 된다고 해서 찿아갔는데 아무도 맞아 주는 사람이 없다. 그 때 한 노인이 맞아 주어서 들어간다. 그런데 같은 교인들이 맞아 주기는 커녕 비류들이 찾아와서 남자를 내어 놓으라고 한다(homo-sex). 그럴 때 노인이 자기 딸을 주겠다고 해도 안된다고 해서 결국 레위 자손의 그 첩을 내어 놓는데 그들은 그 첩을 밤새 괴롭혀 죽게 한다. 그러자 그 시체를 12조각 내어서 12지파에게 돌리고 온 이스라엘은 분노한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이 들고 일어난다.이 내용이 소돔 고모라 시대와 흡사하다. 사건의 구체적 내용까지 거의 흡사하다.소돔 고모라사건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모든 선악간에 심판을 하시겠지만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너무 극악해서 특별히 역사속에 개입하셔서 불로 심판하심으로서 불의와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어떤가 표본적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타락의 상징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다.이스라엘이 그와 동일한 죄를 범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깊이 타락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는 교회가 주도권 쟁탈로 인해서 분열되고 또 지도층이 권력욕에 사로 잡혀 족벌정치를 한다든지 통혼을 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가장 극악한 두 개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타락의 정도가 얼마나 깊었는가 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두 사건을 기록하고 마지막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서 이런 악을 행한 베냐민 사람의 처리를 하나님께 묻는다. 유다 지파가 선두에 서고 그 일을 처리하는데 너무 분개해서 베냐민 지파의 600명만 남기고 다 죽여 버린다.죽여 놓고 선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가 궐이 났다고 통곡을 한다. 남자만 600명 남아서 광야로 도망쳤는데 이 사람들을 짝지을 일이 걱정이다. 그리고 또 길르앗 야베스 사람은 이번 전쟁에 오지 않았으니까 멸하자 해서 다 죽여버리고 남은 과부를 짝지어 주고 그것도 모자라니까 실로에가서 축제 때 무조건 잡아 오라는 등 되어가는 꼴이 전혀 교회답지가 않다. 한마디로 제 눈에 옳은대로 행했다. 완전히 질서가 붕괴된 교회 모습을 사사기는 그리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왕이 없었으므로라는 말씀을 덧붙임으로서 지도자,목자없는 회중에 닥치는 여러가지 어려움,확실한 리더쉽이 없는 교회가 겪는 붕괴과정을 말씀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떤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것인가를 간접적으로 암시하기도한다.참된 왕 다윗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 그가 이러한 상태에서 소망임을 말씀하는 것으로 사사기는 끝이 난다. 그래서 그 다음 성경(곧 룻기, 사무엘상,하)은 바로 사사시대가 대망하던 강력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아 바로 그 통치권이 확립되는 과정을 그리고있다.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사사기는 뚜렷한 교회 지도자없이(인간 지도자 없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이상적인 상태에서 출발한 역사라고 보지 않고 오히려 뚜렷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시대를 통해서 요셉 지파에서 부터 유다 지파에로 지도권이 넘어가는 이행기간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분명히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좁은 시각에서 보면 분명히 리더쉽이 없어서 발생한 일이다. 그 후에 일어난 여러가지 타락의 악순환 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보내셨지만 간헐적인 사사들의 출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왕조의 필요성 왕권확립의 필요성과 메시아 출현에 대한 기대를 암시하고있다.이렇게 보면 사사기는 통상적인 이해와는 달리 교회에 있어서의 리더쉽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가장 강조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 리더쉽의 본질과 성격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를 통해서 실제로 그 교회를 다스리시는 그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아비멜렉과 같이 강력한 통치를 행사하려고 했으나 그가 행사한 통치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와 거리가 멀 때는 교회를 패괴케 하는 촉진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사기를 통해서 교회가 타락 붕괴 와해되어가는 과정이 어떠했는가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떤 현상들이 수반되었고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되었는가 한번쯤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 개 교회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고 교단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고 나라마다 교회사정이 다르겠으나 각 교회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 정상 수준에 있는지 타락해 가는 과정에 있는지 타락하고 있다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사기의 사건들이 그 당시에만 의미있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면 성경으로 남겨 둘 필요가 없다. 기록한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함이요 후세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의 경고로 기록하신 만큼 이러한 일들을 깊이 상고하고 우리도 이런 결말로 교회가 끝장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힘을 떨치고 일어나서 일을 벌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경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성수 교수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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