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새벽기도회는 한국 교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한국 교회 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신앙생활의 힘을 공급받게 되었다. 특히 과거 한국의 교역자들은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한상동 목사는 기도 중심 의 목회를 하였는데, 특히 새벽기도회 인도만큼은 부교역자에게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담 당하였다고 한다. 새벽기도회 인도를 마치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도하였는데, 교인들이 다 돌 아가고 난 후에도 해가 솟을 때까지 기도하였다고 한다.82) 그는 1931년 하동 진교에서 개척 교회를 할 때 산 기도와 철야 기도에 힘을 써서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목회 철학은 기도 중심의 목회가 되었다.83) 주남선 목사도 새벽기도에 힘썼는데, 그는 새벽 4시에 교회로 나가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기도 자리는 항상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 마루가 얼룩졌다고 한다.84)
67)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169.68) 길진경, 『靈溪 吉善宙』 (서울: 종로서적, 1980), 121, 183. 여기에서는 길선주 장로가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한 연도가 1905년인지 1906년인지 알 수 없다. 183쪽에 보면, “선생의 1922년 일기책을 보면 친필로 ‘1906년 동기 대사경회 때에 성신 강림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 나 여기의 “1906년 동기 대사경회”가 오늘날 서력으로 1907년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1906년을 의미 하는지 불분명하다. 1907년 1월도 음력으로는 1906년이며 설 이전이기 때문에 1906년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해가 바뀌면 관행상 지난해 연도를 그대로 표기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02), 112에 보면, “새벽기도는 그 가 이미 1905년에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같은 책 193쪽에 보면, 길선주 목사의 장례식에서 한 조객의 조사를 인용하는데 거기에 “先生이 基督敎에 改宗하심에 朝鮮敎會의 基礎가 서고, 先生이 1906년에 새벽기도를 시작하심에 世界에 새벽 祈禱會가 始作되고, ...”라고 하였다(金麟瑞, 韓國敎會 殉敎史와 그 說敎集, pp.74-75).
69) Cf.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1784-1910)』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4), 928f. 각주 19.70) 위 책 같은 곳.71) 김인서(金麟瑞)는 1936년 1월호 『신앙생활』 (평양 신앙생활사 발행), 28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은 자기 혼자만 기도할 뿐 아니라 새벽기도회는 선생이 처음으로 창시하였다. 1906년 가을에 장대현교회 조사 시무할 때에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 남짓에 크게 은혜됨으 로 이를 당회에 청한 지 수차만에 당회 결의로 전 교회가 새벽기도회를 계속할새 교인들이 새벽 종소 리만 들어도 울면서 예배당에 나왔다. 이리하여 시작한 새벽기도가 1907년 대부흥에 준비기도가 되었 던 것이니 전 세계에 새벽기도회는 선생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필자가 현대어로 고침. 여기서 선생 은 길선주 장로/목사를 말함) 또한 위 잡지 같은 호의 “고 영계 선생을 애도함”이란 글에서도(8쪽) 이렇게 말한다. “선생이 나시매 근세조선에 위자(偉者)가 있고 선생이 기독교에 개종하시매 조선교회 의 기초가 서고 선생이 1906년에 새벽기도를 시작하시매 세계에 새벽기도가 시작되고 선생이 1907년 에 성신(聖神)의 불을 들매 천하에 부흥이 일어나고 선생이 목사 되시매 조선에 노회가 조직되었고 선생이 묵시록을 만독(萬讀)하시매 무궁세계의 길이 만세 앞에 밝아지도다.” 따라서 그의 1906년 기록은 오기(誤記)라 보기 어렵다.
72)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사』, 160.73) 정확하게는 새벽 4시 조금 지나서이다. Cf. W. L. Swallen, “A Story of Korean Prayer”, The
Korea Mission Field, V (Seoul, 15th Nov. 1909, No. 11), 182: “These two men with humble trustful faith, thus continued in prayer every morning at a little after four for about two months ...”,
74)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928-29.75) 길진경, 『靈溪 吉善宙』, 121f.76) 물론 당시에 ‘새벽기도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특별한 기회에 ‘저
녁기도회’를 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1907년 1월 2일부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개최된 평양 도사경회 때에 선교사들은 ‘정오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Cf. 옥성득, 『한반도 대부흥』 (서울: 홍성사, 2009), 231 (여기에 사경회 일정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 전에 1906년 연말에 선교사들은 친목 회 대신에 곧 있을 사경회를 위해 ‘저녁기도회’를 가졌다. 1월 2일에 사경회가 시작되지 이 저녁기도 회는 정오기도회로 바뀌어서 계속 열리게 되었으며 평양 대부흥을 예비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Cf.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856.
77) W. N. Blair and B. F. Hunt, The Korean Pentecost and The Sufferings Which Followed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7), 71-74; W. 블래어 • B. 헌트, 『한국의 오순절과 그 후의 박해』, 김태곤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5), 85-89.
78) 길진경, 『靈溪 吉善宙』, 232f.79) 길진경, 『靈溪 吉善宙』, 233f.80)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 등의 아침 설교 원고가 전해 내려온다.
81) 길진경, 『靈溪 吉善宙』, 181.82) 심군식 외 5인 공저, 『한상동 목사의 삶과 신학』 (부산: 고신대학교 출판부, 2006), 34f. 83) 앞의 책, 34.84) 심군식, 『해와 같이 빛나리. 주남선 목사 전기』 (서울: 성광문화사, 1976), 420.
2. 통성기도
한국 교회 기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소리 내어 기도하는 통성기도라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겠지만 서양 교회의 기도를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당연하 지 않다. 한국 교회에서 통성기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통성기도는 평양대 부흥운동 이전에는 보기 힘든 매우 낯선 기도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06년 가을에 한국을 방문한 하워드 애그뉴 존슨 박사에 의해서였다. 그는 1906년 웨일즈의 부흥 소식을 전하면서 “웨일스의 부흥회에서는 공적 기도를 인도하는 인도자만 기도하지 않 고,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였다.”고 알려 주었 다.85) 따라서 통성기도는 1907년 이전에 먼저 웨일즈에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초기 한 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도 통성기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열려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1907년 1월 14일 월요일 저녁에 설교 후 기도회를 인도한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가 교 인들 가운데 누구든지 대표로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때 기도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86) 그 다음날 화요일 저녁에는 길선주 장로가 설 교했는데 이때 더욱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회개와 통성기도가 있었다. 박용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통성기도는 존스톤이 1906년 가을에 한국에 와서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에게 웨일즈 부흥운동이 통성기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준 후 시작되었고, 통성기도가 한국 교회에 구체적으로 적용된 것은 평양 대부흥 훈동 때이다.”87) 1907년의 평양 대부흥 때에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를 공중 앞에 고백하였으며 그때 참석자들은 자기의 죄를 뉘우치며 슬퍼하는 통성기도를 하였다. 여기서 ‘통성(痛聲) 기도’라는 말이 나왔으며, 이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었고 생활의 변화가 있는 참된 회개였다.88) 이런 통성기도는 한 국 교회의 하나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다.89)
이와 함께 평양 대부흥 기간 동안에 또한 철야기도가 시작되었다. 저녁 집회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으므로 멀리서 온 교인들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교회에 남아 철야하면서 기도하고, 다음날 새벽기도회에 참석함으로 철야기도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도가 시작된 것이다.90) 이러 한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와 통성기도와 같은 한국 교회의 특징적 모습들은 “기독교가 더 이 상 서양의 종교가 아닌 것으로 묘사될 수 있었다.”고 한다.91)
어쨌든 한국 교회의 기도는 소리 내어 하는 통성기도가 주를 이루게 되었으며 새벽기도회와 함께 한국 교회 경건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것은 성경적 기도의 회복이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이 일에는 당시의 헌신된 선교사들과 소박한 한국 사람들이 사용되었지 만 그 중심인물은 길선주 목사(당시에는 장로이며 조사)였다. 그는 1907년의 대부흥 이전에 박치록 장로와 함께 개인적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고 이어서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였는 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감동과 인도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이에는 또한 당시 선교사들의 간절한 기도와 노고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할 때 대개 조그만 소리로 대화하듯이 기도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큰 소리로 기도하기도 한다. 이럴 때에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방해를 주 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기도 소리를 절제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체질적으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기도회 시간에는 아예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오래 기도하지 못하고 조금 있다가 자리를 뜨게 된다. 그런 교회는 냉랭하게 되고 은혜가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오늘날 함께 기도할 때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음악을 틀어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아마도 1990년대에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혹은 그 전에 이미 한국 교회에서 시도한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기도회 시 음악 사용 은 통성기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이때 사용하 는 음악이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경험에 의 하면 새벽기도회 시에 음악 소리가 조금 클수록 참석자들이 편하게 기도하고 더 열심히, 더 오랫동안 기도한다는 사실이다.
85)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2판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7), 234.86) 김영재, 『되돌아보는 한국 기독교』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08), 98.
87)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1』, 865 각주 30. 여기의 ‘존스톤’은 ‘존슨’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김인수 교수의 책에 그의 이름은 H. A. Johnson로 되어 있다(『韓國基督敎會史』, 168). 김영재 교수의 책에 는 Rev. Howard Agnew Johnson이라고 되어 있다. 김영재, 『한국 교회사』, 개정3판 (수원: 합동신 학대학원 출판부, 2009), 145. 앞에서 소개한 The Korean Pentecost and The Sufferings Which Followed, 68에는 Dr Howard Agnew Johnson이라고 되어 있다.
88) 이에 대해 김양선(金良善)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 때의 회개는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하는 것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고 남에게 손해 끼친 것을 모두 보상해 주어 회개를 행동으로 표시하였다. 이러한 회개운동은 뒤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교회에 퍼져 신도들과 선교사들은 평화•사랑•기쁨•능 력의 사람으로 변하였다. 길선주 목사의 증언과 같이 만일 이러한 부흥이 없었더라면 한국 교회는 양 적 팽창은 있었어도 질적 향상은 없었을 것이다.”(『한국기독교사연구』, 서울: 기독교문사, 1971, 87f.) 곽안전 박사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개는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 라, 남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들은 그 손해를 배상함으로써 피차 화목을 이루게 되었다. 사람들은 각 기 성 안의 자기가 일찌기 손해를 끼친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상처를 내준 사람들에게는 사과 를 하고 과거에 남의 재물이나 돈을 훔친 사람들은 그것을 갚아 주었는데 그것은 비단 교인들에게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다. 그렇게 되니 온 성 안은 소문이 자자하였다. 이 때에 어느 중 국 상인은 어떤 교인이 과거에 옳지 못하게 받은 돈이라고 하면서 많은 돈을 갖다 주는 것을 받으면 서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놀랬다는 말도 있다.”(『한국교회사』, 개정증보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3, 128)
89) 김인수, 『韓國基督敎會史』, 177f.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흥운동은 이렇게 통성기도라는 한국 특유 의 기도방법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어 새벽기도와 함께 부흥운동의 결과로 남아 오늘까지 한국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주요 기도방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178)
90) 김인수, 『韓國基督敎會史』, 178.91) K. M. Wells, New God, New Nation, Protestants and Self-Reconstruction Nationalism in Korea, 1896-1937 (Hononulu: University of Hawaii, 1990), 37 (김인수, 『韓國基督敎會史』, 178 에서 재인용).
3. 즉흥기도
한국 교회의 기도의 주요한 특징 하나를 더 지적하자면 기도문에 의한 기도가 아니라 즉흥 기도란 점이다.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의 기도는 기도문에 의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즉흥기도였다. 예수님 당시 유대 회당에서의 기도도 정해진 의식문이 없이 즉석으로 하는 기도였다 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도 즉흥기도였고 사도 바울의 기도도 즉흥 기도였다. 한국 교회의 기도도 대부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유롭게 하는 즉흥기도였다.
물론 공예배 시간에 대표기도 할 때 문장을 적어서 할 수도 있다. 그럴 때의 장점은 중언부 언하지 않고 필요한 요점을 깔끔하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라기보다도 인간적인 독백처럼 들릴 수 있으며 간절성과 생동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피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기도 제목을 적은 메모 용지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 또는 기도문을 적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라는 점을 생각해 서 그런 기도의 언어로 적을 것과 또 적은 후에 많이 읽어서 거의 외워서 하는 것이다.
1625년에 나온 Synopsis에서는 사람이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기도할 때 기도의식문 (gebedsformulieren)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Synopsis는 그것은 단지 허용될 뿐만 아니라 또한 매우 유익하다고 답한다.92) 그러면서 구약 에서 제사장들의 축복문(민 6:24)과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기도(마 27:46)를 예로 든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축복문을 기도의식문의 하나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것은 물론 시편 22:1의 인용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 씀을 기도 시에 사용한 것이고 기도의식문을 따라 기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Synopsis 는 또 주기도를 예로 드는데, 물론 주기도가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의 모범인 것은 사실이 지만 우리가 항상 이 기도문을 따라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기도하라고 하셨지 ‘이것을’ 기도하라고 하시지는 않으셨다.93) 따라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때로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항상’ 이것대로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 이 그렇게 기도하지 아니하셨고 시간과 장소와 형편에 따라 그에 맞는 기도를 자유롭게 하셨 다(요 17장; 12:27-28; 마 11:25-30; 26:39, 42; 눅 23:34, 46). 이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이 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였다(행 4:24-30; 7:60; 엡 1:17-19; 빌 1:9-11; 살전 3:11-13; 요삼 2절 등).
오늘날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찬송가 책 뒤에 보면 특별한 경우에 드리는 기도문이 더러 제 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의식문을 따라 기도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주일예배 시에는 대개 목사가 종이에 적어 와서 기도하고 또는 즉석에서 자유롭게 기도하는 경우 도 있다. 그러나 일반 회중이 예배 중에 스스로 기도 드리는 기회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성도들은 주로 가정에서 식탁기도와 개인기도를 하며 교회 예배 시에는 잠깐 침묵기도 시간만 주어질 따름이다.
92) Doekes, “Het gebed,” 60.
93) 이에 대해서는 변종길, 『산상보훈』 (대구: 말씀사, 2011), 216을 보라.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서양 교회에서의 기도와 한국 교회에서의 기도를 성경의 기도와의 관점에서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다.
서양 교회의 기도는 개혁 교회를 포함하여 조용히 기도하는 전통이 있으며 때로는 침묵기도를 하며 또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모습이 아니며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분히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육체를 부정하게 여기는 영지주의의 영향 을 받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칼빈 이후의 개혁 교회는 물론 많은 부분에서 성경적으로 돌아 오고 기도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실제 기도생활에서는 이러한 서양 철학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하나의 예가 침묵기도이다.
이에 비해 한국 교회는 1907년의 대부흥을 거치면서 성경적 기도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새벽기도회와 통성기도와 철야기도와 즉흥기도 등은 한국 교회의 특징적 모습을 이루게 되었으며, 초대 교회의 기도생활을 회복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서양 교회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간헐적으로 조금 있기는 하였으나 한국 교회에서처럼 교회적으로, 집단적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은 한국 교회의 초석을 놓은 사건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양 교회의 출발을 알리는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1907년 이전에도 한국의 여기저기서 성령의 임재와 부흥의 역사가 있었다.94)
이런 성령의 역사가 1907년 1월 평양에서 강력하게 분출하여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엇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많은 세월이 지나면 세계 교회사는 1907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1907년 평양 대부흥은 근 2천년 가까이 잊혀져 왔던 성경 적 경건과 초대 교회의 신앙을 회복한 사건이요 동양 교회의 출발을 온 세상에 알리는 사건이 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한국 교회의 오순절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양 교회의 오순절이라 고도 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과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저 서양 교회를 좇고 개혁 교회를 그대로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은 한국 교회를 해치는 것이다. 그 중의 한 예가 침묵기도를 가장 경건한 기도인 것처럼 생각하고 기도 시간에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 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소리 내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그리하여 자기도 기도하 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다른 사람도 막고 있다.
물론 소리만 크게 낸다고 올바른 기도는 아니다. 참된 기도는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확실 히 믿고(마 21:21-22; 막 11:23; 약 1:6-8; 5:15 등),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며(마 6:14; 18:25; 막 11:25),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의롭게 살며(약 5:16; 요 15:7; 잠 15:29), 하나님 의 뜻에 맞게(요일 5:14; 요 14:14),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눅 18:1; 11:8) 기도해야 한다. 대개는 대화하듯이 조용한 소리로 기도하지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는 모세와 다윗처럼 하 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시 50:15; 18:3, 6; 출 15:25; 17:14; 행 4:24 등).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입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헬라 철학과 영지주의에서는 인 간의 육체를 부정(不淨)하게 보고서 우리의 입으로 기도하는 것을 부적절하게 보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의 입은 하나님의 지으신 것이며 원래는 선한 것이다. 아담이 죄를 지어 타락했을 때에는 육체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가 함께 전 인간이 타락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시고 의롭다고 해 주 셨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실제로는’ 허물과 죄가 많지만 ‘법적으로’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고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입으로 드리는 찬송과 기도를 하나 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깨끗케 하신 입으로 하나님께 기 도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입술의 열매’이며(히 13:15), 마땅히 해야 할 성도의 ‘의무’이며 ‘특권’인 것이다(마 7:7-11).
94) 1907년 이전의 한국 교회 부흥에 대해서는 박용규, 『평양 대부흥 운동』, 148-218을 보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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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길(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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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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