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친히 목회하시는 교회

예수님이 친히 목회하시는 교회


예수님이 친히 목회하시는 교회

2010-05-11 11:47:18   이름 : 이근호
 

하나님과 마주친다는 것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다가 차가 차끼리 정면충돌하는 그 이상의 충격을 제공합니다. 복음 증거자의 마음 자세란 늘 이처럼 세상이 질주하는 방향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향으로 마주 대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그쪽으로 가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가면 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쪽은 어떤 양상이고 인간 쪽은 어떤 양상입니까? 이 세상은 힘으로 짜여진 세상입니다. 각 개인은 힘 속에 놓여있습니다. 인간의 몸부터 시작해서 그 정신도 힘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힘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육의 힘’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몸에서 발생된 힘을 가지고 ‘영의 힘’이라고 합니다. 육의 힘의 원천은 인간의 육, 즉 몸에서 나온 힘을 말합니다.

손톱에 가시가 들어가면 아픔을 느낍니다. 그것은 다른 힘에 의해서 몸 전체에 깔려있는 신경조직이 눌러서 생긴 현상입니다. 나를 구성하는 몸은 외부의 힘에 대해서 내부의 힘으로 마주하면서 대항하고 대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손가락으로 가시를 빼므로서 외부의 합력을 제거하게 됩니다.

여기에, 눈과 코, 입, 귀, 두뇌, 심정 등 모든 몸의 요소들이 다 동원됩니다. 그래서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각적인 차원들이 한데 집합해서 보다 높은 이미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정신’이라는 겁니다. 미움, 증오, 사랑, 자애심, 이해심, 믿음, 소망 이런 것들이 기본 감각을 바탕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손가락을 잃었던 사람들은, 손가락이 다시 예전처럼 건강하게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이것이 자기 정신의 일부를 담당합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던 예쁜 여인상을 모델로 해서 자신의 신부감을 은근히 염두에 두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상한 모델상에 근접한 여인이 등장하면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게 됩니다. 이것도 정신의 활동의 일부입니다. .

정신은 진, 선, 미에 대한 나름대로 정립된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옳은 것과 옳지 않는 것, 착한 것과 악한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등에 대한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은 형편 따라 수시로 달라집니다. 본인이 기준을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새로 작용하는 환경에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발생된 기준입니다.

즉 사람이란 자신이 이런 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요, 어떤 환경을 갖고 싶다고 해서 그 환경을 얻을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에 태어나고 싶어서 일본에 태어난 것도 아니요 아프리카에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아프리카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째서 인간은 지금의 형편과 환경을 지니게 되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인간은 인간 이전에 지배하는 힘의 구조 안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진, 선, 미를 갖고서 정신적 활동을 해도 그 정신활동조차 이미 인간을 지배하는 힘에 눌려서 활동하는 정신 활동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감각을 맛본다 할지라도 그 감각조차 자신의 정신 활동으로 재해석을 하게 되고 그 정신 활동조차 그를 지배하는 힘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교회를 나오는 경우를 봅시다. 유아실에서 자기 아이가 자빠져서 우는데 그것을 보고 자신은 설교에 집중하면 안 될까요? 안됩니다. 왜냐하면 손톱에 가시가 박혀있을 때, 내가 알아서 빼야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 넘어진 아이는 남의 육이 낳은 아이가 아니라 나의 육이 낳은 아이입니다. 따라서 그 어린 아이는 곧 내 몸의 연장입니다. 내 몸에서 난 내 손톱의 가시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

나의 몸의 일부입니다. 내 몸의 일부가 자빠졌는데 자신은 딴청 피면서 설교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글쎄요, 부모가 정신병 환자라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정신 가진 부모라면 아이가 넘어졌을 때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 집중이라는 것도 항상 육에서 올라오는 육적 조건 안에서 조립된 정신입니다. 정신이란 이 몸의 감각이 종합적으로 뭉쳐서 더 높은 이미지를 형성한 것입니다.

같은 예로서, 가족은 교회 안 다니는데 홀로 교회 온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비록 자신의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자기 가족이 집에 남아 있다면 거기에 신경 쓰여서 설교에 집중에 안 됩니다. 언젠가는 가족이 다 함께 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복음 듣기를 원합니다. 옆에 부부끼리 나란히 교회 나온 것을 본다면 부럽습니다. 이처럼 이미 혼인을 했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벌써 자신의 몸이라는 범위가 확장되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정신도 가족 중심으로 형성된 정신으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효도라는 것이 성립됩니다. 그리고 이 혈연중심의 가족들이 모이면 민족이 되고 국가에 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 ‘내 나라에 죽도록 충성’이라는 이미지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곧 국가의 자존심이 나의 자존심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이러한 구조를 ‘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3-7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즉 지금 육의 구조에서 출발한 정신을 갖고 있는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들어가는 길을 소개하는 교회의 설교에서는 이 육의 구조 전부를 무참하게 박살내는 설교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미 육의 구조 자체가 저주스럽고 단정하고 들어가야 하고, 죽어 마땅하다고 들어가야 합니다.

타협이나 협상이라는 것이 일체 없습니다. 무슨 협상을 살아계신 하나님이 죽은 시체하고 협상하겠습니까? 협상의 상대자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인자’라는 분입니다. 협상불가! 에스겔 37:3-5에 보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나님은 다른 구조를 들고 나서십니다. 그것은 바로 ‘영의 구조’입니다. ‘영의 구조’란 딴 게 아니라 인자되시는, 다른 말로 하면 의논 상대자가 되시고 협상상대자가 되시고 언약 상대자가 되시는 유일한 분, 곧 예수님의 몸으로 형성되는 구조를 들고 나서십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분의 정신, 곧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타락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다른 악한 영의 권력에 눌러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영의 권력과 육의 권력이 충돌해서 마주치는 곳이 이 땅입니다.

영의 구조와 육의 구조를 지배하는 각각의 힘과 권력은 오직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약속을 구현하기 위한 환경으로서 조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운다는 겁니다. 결코 인간과 악마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미 악마와 한통속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몸의 감각에서 조성된 진, 선, 미의 모든 기준들은 악마의 권력 밑에서 피어나게 됩니다. 악마를 위한 진이요 악마를 위한 선이요 악마를 위한 미로서 움직입니다. 인간의 정신이 주장하는 지향점은 이미 고정되어 있습니다. 즉 “나도 신이다”입니다. “나는 나에게 봉사하고, 나를 위해 존재하며, 나의 영광과 이름을 널리 빛내기 위해 움직인다”라는 교리가 악마에 의해서 제공되어져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사람을 천국에 넣을 수 있습니까? 목회의 난처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되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복음 증거자에게 맡긴 것입니다. 이사야 6:9-10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되는 일, 곧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라고 이 땅에 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14-16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 교회란 자기 신앙 자랑하려 나온 겁니다.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섬기고, 자기 자신에게만 봉사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자신의 육적인 정신을 넓히고 그것을 지배하기 위해서 사는 겁니다. 크게 넓힌 것이 소위 홍익사상이요 인류애 사상입니다. 악마가 노린 바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이 직접 대화 상대자로 나서서 자기 할 말을 하게끔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악마의 도발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악마는 항상 육적인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참된 교회는 망한다고!” 맞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참된 교회, 주님이 살아있는 교회를 원치 않습니다. 오로지 사람들만이 살아있는 교회만이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교회임을 경험상 너무나도 잘 알고 있ㅅ브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존심들만 인정해주는 친목단체로서의 교회만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직도 자신을 꺾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자를 밟고 또 밟아도 계속 돋아납니다. 이것은 ‘영적 구조’가 그 사람에게 덮여졌기 때문입니다. 즉 악마의 힘 말고 성령님의 힘이 그 사람에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구조에 작용하는 성령의 힘은 인간의 힘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에서만 나오는 힘이 작용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정신적인 모든 힘, 곧 진, 선, 미를 저주해야 될 죄라고 규정해버리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이 작용이 일어납니다. 육적 감각으로부터 출발하는 우리들의 정신 구조는 이러한 성령님의 정죄에 반발합니다. 바로 이 반발 가운데서 ‘주체’라는 것이 발생되는 겁니다. 즉 저항이 없는 곳에는 주체가 나타나지 않는 법입니다. 악마로부터 지시받고 움직이는 반발입니다. 반발이 극심할수록 자기 생각은 돈독해집니다. 저항이란 이질적인 외부 힘이 나타났다는 신호와 더불어 반응이 시작합니다. 이처럼 복음과 마주치지 아니하면 악마의 배후 모습도 드러나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사람 좋고, 인간성 좋고, 살림 잘하고, 싹싹하고, 늘 남 배려 잘해도 복음만 전하면 그 악마성이 샅샅이 드러납니다.

참된 교회는, 육적으로 망해야 합니다. 날마다 육적으로 망하고 영으로 다시 사는 교회입니다. 당회장 목사는 교회 망하는 것이 기겁을 하고 날마다 좌절하지만 머리되시는 예수님께서 오히려 그런 쪽으로 목회하십니다.

그래서 자꾸만 경계선 너머의 세계만 소개하게 하십니다. 육의 인간들이 들어오게 하시고, 육의 인간들이 더 이상 예배 참석 못하게 하십니다. 마치 거울 속으로 들어가 버린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기웃거리며 호기심에서 육적 인간들이 관찰들은 할 수 있으나 이 영의 세계로 직접 들어오지는 못하는 교회가 바로 예수님이 친히 목회하시는 교회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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