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산에 올랐습니다. 어떤 등산 동아리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놓고 행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문득 아내가 질문을 하더군요.
"현수막은 왜 걸지?"
그 이유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현수막에는 인간들의 행위를 문자로 고정하여 전달, 보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음을 문자로 고정함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버려지는 자신의 행동을 고스란히 담고자 하는 것이죠. 사실 현수막이 없다면, 등산모임 사진이나, 강의 사진들은 거의 비슷합니다. 의미가 희석됩니다. 그 사진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담고 있는지를......
현수막 하나 걸어 놓으면 내가 누구이고, 지금 이 시간과 이 장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전달을 통해서 동일한 욕구가 유통되고 권유 혹은 자발적인 동참을 통해서 "나"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수막을 아무리 멋있고 크게 걸어도 시간은 가고 그것에 떠밀려 산에서 내려오고 맙니다. 나는 둥둥 떠다니고 있는 신세이지, 이 땅에서 정착하여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문자! 성경에서 의문이라고 하는 율법은 현수막처럼 인간의 행위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한다고 인간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그 주머니 속에 나의 행동을 밀어 넣습니다. 내가 아무리 거짓말하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칭찬받지 못하는 이유는 거짓말 하지 않기를 선한 것으로 고정해준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이라는 선한 존재가 명령한 것이 문자로 고정되어 있는 한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나의 거짓말 하지 않기라는 행동을 넣어 둘 고정된 선한 행동 적립 통장이 생긴 것입니다.
십자가! 그러나 십자가가 그 율법의 그릇을 깨버립니다. 그 깨버림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더 온전히 세웁니다. 율법을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적립하는 통장이 아니었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의 주님으로 오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선명히 그려주고 있는 사망통지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십자가라는 현수막이 벌겋게 걸려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커다란 건물들 속으로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와, 인간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욕망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령받아 그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공통 욕망, 즉 구원욕망을 기념촬영합니다. 십자가를 현수막처럼 걸고 말이죠.
고린도전서 2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위와 같이 말한 사람의 작정은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합니다. 계속 그렇게 주장하면 도대체 나의 존재 의미를 어디서 찾느냐고 합니다. 창세전에 예정된 성도인 귀한 나의 고정됨을 어디서 확보하느냐고 합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나라는 현수막 하나만을 걸어 놓고 장사하면서 온 세상의 진리와 하나님의 죽음마저 상품진열대에 올려놓은 저주의 땅입니다.
골로새서 3장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밖에 걸어 놓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져 있는 성도의 생명이 육의 죽음 속에서 날마다 새롭습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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