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사라진 후-김혜선 성도님의 글

절망이 사라진 후-김혜선 성도님의 글

절망은 인간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 넣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케 하고 육체적으로도 무너지게 만들고 결국은 정신과 육체를 무너트리며 해체시키는 결과를 갖게 만든다.

인간들이 절망을 두려워하는 것은 곧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동서남북을 보나 하늘을 바라보나 길이 없는 것이다. 손을 내밀 곳이나 내민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버텨나갈 힘을 상실한 것이 희망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간증들은 그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서 소망을 갖게 되어서 이제는 절망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믿고 평안을 얻고 기쁨을 찾았다고들 한다. 정말로 그런 것인가?

절망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희망을 찾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벗어날 방법은 없고 죽음만이 절망의 고통을 해결할 유일한 수단인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어 자신의 절망을 그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신다는 게 믿는 것이고 그래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절망으로 빠트렸던 불가능한 자신의 희망을 이루어 줄 힘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얼마를 못 가는 것이다. 자기 기만이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자신의 속임에 처한 것임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그 절망을 결코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

주님께서 절망을 해결하시는 방법은 마지막 희망을 갖게 만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부터의 해방, 마지막 남은 하늘로부터의 도우심 마저 거절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없다. 절망 속의 절망이다.

이제는 어떤 선택도 어떤 방법도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 소망인 주님의 도우심 마저 거절당한 상태인 가련한 존재인 것이다. 자살할 것인가 아니면 더 버티어 볼 것인가 하는 마지막 결단의 순간이다.

주님의 방법은 자신을 철저히 볼 수 있는 자리로 내 모신다. 절망에서 절망으로.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가련한 죄인이며 이 세상에서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필경은 죽을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존재임을(창3:15-19). 저주 받은 존재가 무슨, 이 세상에서 희망과 기쁨과 즐거움이 가당키 나 하단 말인가?

저주받은 존재는 당연히 저주받아야 하고 그래서 고통과 괴로움은 기본이며 인간 본래의 자리이다. 지렁이 같은 존재(사41:14)이며 메뚜기 같은 존재로서 홍수에 쓸려나가야 할(시90) 존재가 하나님께 감히 무엇을 간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인간들이 구더기나 바퀴벌레 보듯 진멸하여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보신다.

인간들이 구더기나 바퀴벌레들을 볼 때 무엇을 생각하는가? 어떻게 하면 저 더러운 것들을 없애는가 이다. 방법은 물로 쓸어버리던가 아니면 불 질러 버리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이래 말씀 밖으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신다. 인간들이 상상한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간의 마음 속에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활개치고 있다.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영생을 약속한다. 그럴 능력도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바라던 기적이 나타나는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후에 절망도 사라진다. 인간은 구더기이며 구더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하는 죄짓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멸의 대상일 뿐이다.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가 거짓 희망을 버리게 만들고 인간 본래의 자리로 환원시킨다. 고통이 사라진 후 우주에서처럼 마음의 무중력 상태가 된다. 이 세상은 허상이며(히11) 그동안 허상 속에서 허상을 바라보며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고 살아왔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거짓에 속아서 거짓의 희망을 품고 하나님의 홍해가 갈라졌던 기적을 꿈꾸며. 인간은 결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허상을 바라보며 그 허상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든 하나님이든 이용하기만 한다. 믿음이라는 포장으로.

이 마음의 무중력 상태가 나를 없애고 세상을 없애는 주님의 방법이다. 세상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고 나는 세상에서 죽은 존재이며 나의 일도 나의 존재도 없고 주체가 내가 아니다. 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홍수에 쓸려나갈. 그 홍수에서 건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하신다.

생명이 피에 있나니(레2),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만 생명이 있고 건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몫이다.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믿고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건짐 받고 못 받고는 인간이 간여할 수 없는 주님의 창세전의 예정하심이다.

*이 무중력 상태와 비슷한 상황의 전개가 나치 독일군과 소련군과의 스탈린그라드의 전투에서 나타난다.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 소련군에 포위되어 물자와 무기가 떨어지고 굶주림으로 죽기 직전의 독일군들에게서 나타난다. 본국으로부터의 어떤 도움이나 구원의 희망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에서 절망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마음의 평화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죽어 갔다.

마음의 무중력 상태를 느끼는 것이 주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그 결과로 자기포기가 일어나고 절망이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독일군처럼 자연인에게도 일어나는 인간의 일반적인 상태인지는 모른다. 주님만이 아신다.

믿음이 좋아서 모든 것을 주님께서 인간을 위해 베푸신 결과로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성경의 말씀으로 짜 마추는 것이다. 주인은 주님이 아니라 바로 인간(나)인 것이다. 영원히.

노병은 다만 사라질 뿐이다가 아니라 인간은 다만 쓸려 내려 갈뿐이다. 건지심을 받은 자만이 기름을 준비한 자가 되고 양들의 자리에 않는 자들이 되며 누구도 자신의 믿음으로 기름을 준비할 수 없으며 양들의 자리에 않을 수 없다.

Sunday, September 2, 2012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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