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 동안 인간은 언어, 이성, 과학, 지식, 기술 그리고 문명 등, 욕구를 해결하는 가능성과 기능의 조합에서 위대함을 찾았다. 이제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간-아님 지성’ 앞에서 기능적 관점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 인간이 존엄한 그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과 보편적 원리를 일치시키기 위해 희망하고 의지하는 존재라서 존엄하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인간(현존재)이 존재 전체의 의미를 조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동양철학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자기 극복(克己)을 선택하기에 인간답다고 설명한다. 내가 나를 극복하기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점에서 인간은 의미 있다. 요컨대 인간다움은 보편 가치를 자율적으로 지향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많은 상담치료에서도 가치, 자유, 책임을 설득력 있게 재구성해 환자로 하여금 긍정적 감정이 생기도록 유도한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치료의 원동력이요 전부다.
오늘 본문은 어떤가? 율법과 십자가 언약 사이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자리 잡는가? 율법에서는 만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깨진 언약의 비석으로 자리 잡는다. 뭘 의미하는가? 은혜에 대한 싫증, 진리에 대한 불신과 배신. 한 마디로 죄의 자리다. 십자가에선 상황이 어떤가? 인간은 옛 언약에서 그나마 제사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선 그 나마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몫이다. 인간의 자리가 원래부터 죄였음을 분명히 한다. 속죄의 피도 짐승의 피 따위론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써만 죄사함이 가능하다. 무슨 의미인가? 인간이 낄 자리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성경에서 인간다움이란 죽어야 하는 존재로서 드러난다. 왜 죽어야 하는가? 심판을 받기 위해서다. 심판자가 다시 오셔서 죽은 인간까지도 모조리 심판받는다. 인간다움은 심판받음에 있다.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용서의 심판이든, 저주의 심판이든 받는다. 심판받는 자,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아름다운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 따윈 성경에 없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묻지 마!’식 심리 조작도 없다. 오직 죄인으로서 심판자 앞에 서서, 용서와 저주를 행하시는 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한 번 스스로 물어보라. 나는 ‘나-다움’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심판받아 마땅한 자, 그것이 나-다움인가?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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