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8 한 맺힘과 기도
예수님, 곧 인자(人子)라고 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또 올 것이다”고 하십니다. 왜 두 번씩으로 이 세상을 방문하실까요? 처음 오셨을 때 모든 일을 마무리 지는 것이 아닐까요? 보통 방문이란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허락을 득한 후에 방문하는 것이 예의에 합당합니다. 들락달락 하는 경우는 방문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라 여길 때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다는 뜻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품고 있는 그 분노를 같이 가질 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뜻이 반영이 안되면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너무나 미약하고 세상은 너무나 강력하다는 사실을 몇 번 안되는 시도를 통해서도 금방 눈치 챌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 있다할지라도 상대가 너무 강하다면 알아서 굴복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처럼 여기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어디까지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방문한 적이 없을 경우에나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예수님께서 코 앞에 나타났다면 생각을 다시 가져가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의 위치나, 분통을 터트려야 하는 불쌍한 과부의 위치가 갖는 의의를 새삼 지정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억울한 것을 그냥 속으로 삭이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마당에서는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불의한 재판관이 마냥 자신이 해야 될 재판 업무를 보류할 수 없도록 예수님이 나서서 조치를 취하는 식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도에게 있어 기도란 무엇입니까? 성도가 하는 기도는, 성도가 놓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게 하는 기도가 됩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자리입니다.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억울함을 갖는 것이 성도의 신세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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