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16-20 해산하는 수고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마 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까지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최종태는 십자가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러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계약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 십자가 취지를 확대시켜 나가면서 필히 ‘핍박’이라는 것은 각오해야 합니다. 핍박 안할 사람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복음전파에 있어 욕심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초적으로 복음 소식에 대해서 핍박하고 기피하고 배척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복음전파는 바로 그 핍박의 양상 속에서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미움을 받아가면서 미운 자를 건져내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도 방식입니다. 사도는 자신을 임산부로 비유해서 제시합니다.
“나 안에 또 누구 들어있다”는 겁니다. 본인이 원치 않고, 그 자식이 어떤 성질이 있는지 모르는 가운데 안에 들어있으니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수고를 자신은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십자가 복음 확대’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나에게 이익’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나에게 손해’라는 생각도 전혀 있습니다. 그저 실존으로 자기 몸 안에 자기 말고 다른 몸이 자라나고 있으니 밖으로 온전하게 내놓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5:4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예수님을 잉태했던 마리아의 몸처럼 여기시고, 하늘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자녀를 십자가 복음으로 출산시키려 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도 거기에 뒤따라 동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근심과 기쁨이 교차합니다.(요 16:20-21) 근심하기에 기쁨을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온전한 인간, 즉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은 복음의 인큐베이터 속에서만 출산합니다.
이 복음 속에서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울고 예수님과 같이 웃을 수 있습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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