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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선물
에베소서 2:8 하나님의 선물 ‘선물’이란 누가 주어지기까지는 여기에 없는 겁니다. 이는 ‘내가 노력해서 내가 발생시킨 것’이 아닌 것에 해당됩니다. 문제는 선물이 나에게 오기 전에는 ‘선물’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물이 선물답게 되기 위해서는 선물 받아주는 사람이 새로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미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이 선물답게 되기 위해서는 그 선물을 받을 자의 본질이 선물을 주시는 분 내부 안에서 먼저 갖추어지게 됩니다. 즉 “선물 줄 자인 나는 나의 선물을 선물답게 받을 자를 이런 식으로 만들겠어”라는 마음으로 이 땅의 삶을 보내신 겁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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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 계통
히브리서 7:8-10 십일조 계통이스라엘 내에는 지상에서 열심히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특이함으로 차별나게 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레위인들입니다. 다른 이들은 스스로에게 먹일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지만 레위인들은 그것도 정반대되는 일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죽어도 좋아”라는 식의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에 인간들의 죽음의 근원과 관련되어 가장 근접성을 지닌 일임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게 하셨습니다. 즉 레위지파는 이 세상에서 그 어느 인간보다 가장 위험한 극한 직업이 되게 하십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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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은사
고린도전서 13:1-3 사랑의 은사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아닌’ 항목을 사랑과 견주면서 나열합니다. 사랑이 빠져 버린 은사는 은사라고 말할 수 없다 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는 성도가 사모하거나 흠모할 대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성도는 고유한 자립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사랑의 은사에 억매여 살아가야 될 운명자입니다. 사랑의 은사의 특징은 강렬하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죽음이 인간의 모든 것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처럼 사랑도 그러합니다. 구약 아가 8:6에 보면,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랑을 죽음에 비유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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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통속
고린도후서 4:12-15 한 통속개인구원이란 성립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인간들이 개인 구원쪽으로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집어넣은 단체 구원도 ‘확장된 개인구원’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이 참 위험한 곳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떼로 동의한다고 해서 거기서 하나님의 뜻이 도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37:36에 나오는 무려 185,000명의 앗수르 대군은 하루 밤 만에 집단으로 시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만 해도 그 집단은 오로지 하나의 뜻으로 다져지고 결집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집단적으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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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태
갈라디아서 4:27-29 잉태 후손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잉태, 곧 임신은 필수적입니다. 후손의 등장은 선조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만약에 자식이 없다면 이는 그것으로 선조의 성격이 이 지상에서 소멸되어야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자식을 임신하고 후손을 갖는다는 것은 곧 본인들이 ‘소멸 대상’이 아님을 반증한다고 믿게 마련입니다. 사무엘상 1: 5-6에 보면,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즉 평소 일상 생활에서 남들 보기에 참으로 경건하고 바르게 산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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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분
히브리서 7:4-7 높은 분 높은 곳은 하늘이요 낮은 곳은 땅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 인간은 저주를 받기 위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생명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접근을 차단하면서 인간 사는 동네는 ‘낮은 곳’이 됩니다. 이때부터 ‘낮은 곳’은 철저하게 ‘낮은 곳 다움’의 대우를 받습니다. 전쟁과 갈등과 불만족과 미흡함으로 몸 둘바를 모릅니다. 이로서 인간은 자신의 육신이 ‘마저 채워질 수 없는 그릇’으로서 하늘의 것이 빠진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다는 저주의 실내용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겁니다. 그 시작과 끝을 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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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일
빌립보서 1:3-6 착한 일 ‘착한 일’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신 겁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7-18) 즉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방식은 자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방식 외에는 아버지의 계명을 준수할 수 없는 걸까요? 계명은 말씀하시는 바는, ‘인간은 착하지 않아서 착한 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밝혀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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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가신 예수님
히브리서 6:19-20 앞서 가신 예수님 이곳에서 어디로 간다는 것은 이곳이 최종 머물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 입장에서 이곳 말고 달리 살 곳도 없고 또 딴 곳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먼저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신 곳에 바로 휘장 안입니다. 휘장이란 성막 혹은 성전 안을 두고 말합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는 장소로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전달된 사항입니다. 이 성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에 관해서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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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하지 않은 일
히브리서 8:1-2 사람이 하지 않은 일성소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서 일방적으로 거하시는 곳입니다. 이 일방성으로 인해 인간은 위기입니다. 조금이라는 성소를 더럽히는 경우가 생기면 성소를 정결하게 청소할 것을 요구받게 됩니다. 드려진 속제죄 제물의 피로 번제단을 바르고 붓는 것도 청소하는 행위에 속합니다.(레 4:25, 30)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서 살아온 그 장소가 자기의 삶을 위한 공간이라고 여깁니다. 이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소 다툼이 발생됩니다. 서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사장의 존재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자신을 철저하게 부셔져야 함을 나타내기 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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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골로새서 3:3-4 생명생명이 있는 사람은 미래를 계획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시간이 마감된 그 열매로서만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29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지상에는 여전히 시간이 가동되는 영역입니다. 포도나무에서 축출된 음료수를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표현하십니다. 이를 때 필히 시간의 한계도 아울러 알려주시는 겁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들은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명 표현도 시간에 갇힌 형식을 취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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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 안의 화목
골로새서 1:20 성도 안의 화목‘화목’이 되기 이전에는 원수지간이었음을 전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화목의 가치에 눈이 뜨려면 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출생은 ‘버림받은 지역’에서의 출생입니다. 이는 출생과 동시에 운명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8:21에 보면, “사람이 어릴 때부터 계획하던 바가 악함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개선하려는 의지마저 악한데서 나온 아이디어가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은 인간 입장에서 기대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버림의 대상이 된다할지라도 할 말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을 위해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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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것
고린도전서 13:8-11 온전한 것현재에 와서 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게는 미흡한 점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모두 조금씩 미-온전한 것들입니다. 시간이란 늘 가만히 있지 않고 온전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점차 추가적으로 밝혀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지금이 온전하다고 주장해서는 아니됩니다. 현재는 미래를 위하여 완벽한 온전함을 양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장래의 온전함이 지금은 부분적으로 이미 현재에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도 상관없습니다. 즉 지금의 미흡함으로 인하여 신앙에 절망을 가져서는 아니된다 는 말입니다. 부분적 은사라고 할지라도 장래에 나타날 온전함과 연관성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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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적
데살로니가전서 2:14-16 대적 유대인이 유대인을 핍박함으로서 ‘복음의 대적’의 실체가 밝혀집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이방인(헬라인)이 이방인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면서 ‘복음의 대적’이 확산됩니다. 같은 종족, 같은 편끼리라도 사정봐주지 않고 대적(對敵)관계를 유발한 것은 다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 이러한 사태를 낳는 요소가 있습니다. 우선 세상적으로 상호 적이 되는 사이는 자신의 존엄성을 모독할 때입니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적이 됩니다.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말은 ‘너는 죽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네가 죽으나 사나 나와는 무관하다’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예수님의 대적’이란 “예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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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책의 현실성
빌립보서 4:2-3 생명책의 현실성사도 바울을 돕던 자들을 사도 바울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말할 것같으면, 사도행전 19:15에 나오는 말씀대로 악마의 세계에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이는 곧 사도 바울을 돕는 것이 예수님 나라에 돕는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유오디오라는 여인과 순두게라는 여인은 빌립보 교회 때에 사도 바울을 도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을 품기란 어렵습니다. 기초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기 때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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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언약
갈라디아서 4:24-26 두 언약 ‘두 언약’으로 세상의 진실을 일거에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진리’나 ‘진실’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거론하고 인간과 그 하나님과의 연결시킬 수 있는 갖은 고상한 개념과 거룩한 이념들을 총동원하게 마련입니다. 혹은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선’, ‘단일성’, ‘단순함’, ‘아름다움’, ‘理性(이성)’, ‘知性(지성)’, ‘존재’, ‘실체’, ‘위상’, ‘연속성’ ‘포괄성’, ‘절대성’, ‘조화’, ‘무한’ 같은 개념들을 가지고 인간들은 신과 엮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쪽에서 이 세상에 내민 개념은 참으로 간결하고 확고합니다. ‘언약’입니다. 곧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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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은 형제
에베소서 6:21-24 사랑받은 형제형제란 ‘주 안에서만’ 형제입니다. 아무리 혈육적인 가족, 일가, 친척이라도 주 안에 있지 아니하면 형제라 할 수 없습니다. 최종적인 상황에 도달했을 때, 누가 천국에 합류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집안이라고 해서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주 밖에서 사는 자들은 신랄하게 이 선물에 대해서 갖은 모욕을 가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조롱을 퍼붓습니다. 실속 없는 선물이라고 무시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선물이라고 짓밟아버립니다. 마태복음 7:6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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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와 성도의 삶
에베소서 4:28-29 윤리와 성도의 삶윤리란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복음이 이 땅에 등장하기 전에도 각 종족마다 윤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윤리의 목적과 의미는 ‘종족 보존’에 있습니다. 즉 각 인간에게는 존재해야 될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손 번식을 퍼뜨리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자연으로부터 오는 힘든 삶의 조건과 부딪혀야 했습니다. 땅 위에서 살기 위해서 땅의 본성과 싸워야 했습니다. 제 몸 하나 부지하는데 자연은 수월하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발이 필요하고 이 개발에 인간이 육체적 노고가 개입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잘 가꾸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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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을 삼키다
고린도전서 15: 54-56 사망을 삼키다사람들에게 주변에서 일상적인 죽음을 대하게 됩니다. 주로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신 분의 죽음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망 그 자체가 아니라 조금 전까지 사셨던 분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망이 인간을 삼킨 것이 되고, 그 인간은 사망 안으로 사라졌고, 동시에 죽음 만에 생생한 승자로 인식되게 됩니다. 죽음의 세력에서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점이 실제상황으로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사망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자는 없습니다. 결투를 신청할 상대자가 아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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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는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8 심는 대로 거두리라 심는 대로 거두지 지지 않습니다. 누가 심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선을 심어도 악이 거두어지고 악을 심었는데 선이 거두어지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무엇을 심든지 허망하고 허무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전 2:20-21) 즉 내가 선을 했음에도 악이 행하는 자가 나의 선한 수고의 열매가 가져가는 것이 이 세상의 사정이다 는 겁니다. 따라서 내가 심었으니 내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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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02 오늘의 양식
7월 2일 •수요일영광에서 영광으로성경읽기 : 욥기 22-24; 사도행전 11새찬송가 : 187(통171)오늘의 성경말씀 : 고린도후서 3:7-18우리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고린도후서 3:18)바닷가 마을에 사는 발레리는 그곳의 따뜻한 날씨와 야생동물 사진 촬영, 그리고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나갔습니다. 흐린 날씨, 또는 타지로 여행할 때를 감안하더라도 발레리는 매년 300번 이상의 일출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일출 감상은, 조금도 지겹지 않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