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반항

이유 없는 반항

이유 없는 반항

사는 게 투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은 신에게 반항하는 중이다. 이 반항에는 뚜렷한 이유는 없다. 원래부터 인간은 사는데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살아야 될 이유, 먹는 이유, 노는 이유, 일하는 이유, 잠자는 이유, 사랑하는 이유, 미워하는 이유, 그리고 아픈 이유, 죽는 이유 등 아무런 이유도 없다. 인간은 그냥 존재할 뿐이다. 존재할 이유도 없으면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실은 위험스러운 상황이다.

이 위험한 인생은 실은 하나님이 조성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늘 인간에 대해서 점검 중이시다. 마치 컴퓨터 기사가 와서 컴퓨터를 이리저리 살피는 것과 같고, 정비사가 자동차를 이리저리 살치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컴퓨터는 그냥 얌전히 있고 자동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 때, 정비사가 어느 전선에 스파크를 일으키니 자동차는 갑자기 “부르릉”하고 시동이 걸린다. 반응을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왜 사느냐 자체적으로 알 도리가 없다. 정비 중의 차가 시동 걸리는 것을 자동차가 이유를 알 리가 없듯이 인간들은 이유도 모르는 채, 직장에 가고, 등산하고, 잠자고, 그리고 위암에 걸린다. 하나님의 작업 가하면 그냥 반응을 나타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떤 차원을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 작업에 나서시는가? 그것은 인간 내부를 살피신다. 그 안에 악령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반발하는 그 세력자가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반응을 발생시키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빨리 너의 본색을 보여라!”

하나님은 매일같이 내부에다 대고 소리치신다. 그러면 우리는 숨겨진 본심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투정이요 하소연이다. ‘이유를 모르는 반항심’이다. “신이여 저리 가세요. 우리를 힘들게 하시려고 작정하셨죠. 무조건 당신이 싫습니다. 이유 없이 당신이 싫습니다. 저리 가세요”

우리 소리가 아니라 악령의 소리다. 악령은 자립하라고 부추긴다. ‘착함으로’ 신의 요구에 응수하라는 것이다. 개혁주의신학이다. 이 신학을 배우는 교인들은 늘 신에게 화가 나있다. 신께서 말씀으로 압박을 하니 그 등살에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는 말씀 잘 지켜서 응수해주겠다 고 나선다. 그것이 바로 '예수 믿기’, ‘교회 나가기’, ‘말씀대로 살기’이다. “이래도 나를 구박하겠느냐”는 식이다. 복음에 대해서는 ‘복음 잘 믿어주기’로 응수한다. 제발 십자가만은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양새는 실은 하나님이 의도했던 결과다. 그래야 예수님의 죽으심의 정당성이 여전히 확인하고 확보되기 때문이다. 악마의 머리는 치는 무기는 오직 십자가뿐이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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