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누가복음 13:22-27 좁은 문 사람이 가지 못할 길이 있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의 측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아무리 나름대로 노력하고 애쓰고 힘든 인생을 살아도 들어갈 수 없는 세계가 남아 있는 한, 인생을 헛수고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6-27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규정해놓은 원칙에 부합되어야 하는데 그 규

좋은 쪽

◆ 설교 요약 ◆ 2011년 2 월 13일〈 지난 주 설교 요약 〉십자가로 만든 영생은 “다 이루었다”로 주어집니다. 거기에 비해서 자신의 행함으로 만든 영생은 ‘자기 즐거움에 도취된 영생’이라는 기껏 자기 세계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비유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내용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즉 성도는 ‘영원히 강도만난 자’이어야 하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제공하신 ‘영원한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는 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10:38-42 제목 : 좋은 쪽 본문에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에 속한 사람

본문 : 고린도전서 2: 13-16 제목: 육에 속한 사람육에 속한 사람을 어떤 식으로 판별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함’으로 판별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일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 오해해서 저지른 일을 지속적으로 되돌려주는 일이 성령의 일입니다. 그래야지만 육에 속한 사람과 성령의 속한 사람이 구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면 육에 속한 사람이 되기에 사람들은 자칭 ‘성령에 속한 사람으로’ 행세하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가운데 자아를 정립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육에 속한 사람’은 없고 단

질문 드리겠습니다

'복음의 생산'을 읽다가,, 목사님께서는 단일현실과 다중현실로 구분하셨는데요..전 그걸 껌종이로 이해했습니다. 얇은 알미늄막과 종이막이 딱 붙어 있어서 얼핏 구분가지 않지만 불로 태우면 알미늄막만 남는거요...근데 궁금한건, 구약시대엔 왜 그냥 단일현실로 표현되는지요.땅에서 아이 많이 낳고 가축 많은게 신약에서는 곧 영적 축복을 나타낸다고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말한 것처럼요.물론 구약 후반부터는 이게 점점 크랙이 가기 시작하지만.가끔가다 드리는 우둔한 질문에도 늘 명쾌하게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돌아오는 새해에도 자주 목사님을 괴롭혀 드릴거 같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나는 종말

누가복음 21:33-36 신나는 종말만약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생활에 염려가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고 고백한다면 대부분 평생토록 넉넉하게 소비할 재물을 많이 쌓아놓았다고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가진 재산이 많아서 생활의 염려가 사라지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도 생활의 염려가 없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종말을 사랑하는 겁니다. 마치 사병이 제대날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같은 군인이라도 장교는 제대가 근심될 것입니다. 청춘과 목숨과 정성과 마음과 혼신을 힘을 군대에 다 바쳤는데 거기에서 퇴출당한다면 남은 인생을 불안한 가운데 새로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거의 절망적입니다. 따라서 ‘종

회개

누가복음 13:1-5 회개 사람은 위험하지 않는 안정된 자리를 찾습니다. 평생토록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그런 든든한 자리와 직장과 가정을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기만 잘해서는 아니됩니다. 주변의 이웃들도 안정되어야 합니다. 이왕이면 치안이 잡혀있는 나라에 사는 것이 좋고 이왕이면 친절한 성품을 지닌 사회가 좋습니다. 세상이란 함께 움직이는 리듬입니다. 행복은 파장처럼 주위로 퍼지게 마련입니다. 불행의 씨앗이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겠다는 나서는 것도 예수님이 좋은 분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이런 의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는

나는 블랙(괴물) 입니다.

나는 괴물(블랙) 입니다. 날 때부터 두 눈과 두 귀는 [있음]이 아닌 모양 뿐인 [없음] 그 자체 였습니다.그래서 모든 것이 어두움 뿐입니다.블랙입니다.빛을 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조차도 상상할수도 없었고빛이 뭔지도 그래서 어두움이 뭔지도 아예 모릅니다.아픔도 기쁨도 어떻게 소리로 표현할 줄도 모릅니다.그것이 뭔지도 아예 모르는모르는 것 조차도 모르는그렇게 괴물 그 자체로 태어났습니다.짐승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나니어느날나의 괴물과 같은 신체에또라이 선생이 하나 찾아와서몸에 문자를 새겨 박아넣기 시작했습니다.그게 뭔지도 모르는데이상하게 이상하게 슥슥 긋는 것들이나에게는 아무 의미 조차도

목사님..질문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8:3)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목사님."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죄를 삼으셨다"구체적인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항상 거짓말쟁이 그레데 사람

항상 거짓말쟁이 그레데 사람 22011년 7월 5일 화요일 오후 2:20:57 김대식(딛 1:1, 개역)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딛 1:2, 개역)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 1:3, 개역)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4, 개역)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

위에서 온 능력

누가복음 24:44-53 위에서 온 능력위에서는 온 능력은 성경과 관련 있습니다. 45절에 보면,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위에서 온 능력’이 없으면 마음이 열리지도 않을뿐더러 성경도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위에서 온 능력 없이’ 성경을 볼 때에 어떤 식으로 보게 되느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 받지 않고 성경을 풀이한 자들의 주장은 ‘위에서 온 능력’을 입은 사도들을 반대했던 그들의 주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육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비롯되는 필연적 해석은 반드시 예수님

제목 없음

목사님의 말씀이 자유게시판에 기록 된 내용을 자주 보게 되면서 몇 가지를 새로 알게 됐습니다.첫째는 사람과 사람이 같은 시·공간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다고 하여도 결론적으로 각자가 자기의 세계속에갇혀서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전세계에 인구가 약 70억이 있다면, 굳이 따지자면, 지구촌에는 약 70억개의 세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각각의 세계는 동일할 수 없고 고유의 세계이고 독특하며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각자의 세계속에서 해석이 다르겠지요..이런 수많은 세계들을 생각하면서 세가지 특징을 깨닫게 됐습니다.첫째는 그 어느 누구도 다른세계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세계속에서 나올 수 없다.표현

구원에 실패

로마서 11:11-12 구원에 실패 실패함을 통해서 진실은 밝혀집니다. 언제나 그 시점에서는 완전해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차후에 등장된 새로운 사실로 인하여 과거의 그 시점은 결코 완전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집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란 항상 ‘완전’하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완전케 하기 위해 사전에 그런 사건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패와 실패의 덩어리가 곧 성공입니다. 실패를 딛고 성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성립되는 그 현장 자체가 구원에 성공한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실패 없이 성공 없다’가 아니라 ‘실패가 모여야

집안구원=가족구원 (행16:31)이란 것이 있는지?

질문 : 태초부터 진리의 사랑(살후2:10)을 그리스도 예수안에 십자가의 은혜로 받은 자들이 구원과 동시에 그의 집안 전체도 구원과 연결되는지요? 다른 말로 집안구원=가족구원? 질문하게 만든 성경구절 : (행16:31)"이르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바울과 실라가 마게도야 성, 빌립보란 도시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 여러 여자들 중에 특히 두아디라 도시에서 온 자주장사 루디아를 주님께서 마음문 열어 말씀을 듣게 합니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전 가족이 세례 받습니다. 그런 후 똑같은 16장에서 감옥의 간수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과 그의 집안 전체가 세례를

오직 영으로

고린도전서 2:10-12 오직 영으로성령님께서 마지막 때에 오신다는 소식은 이미 이스라엘이 구약 때 망하고 난 뒤부터 줄곧 예고되어 왔습니다. 이 예언의 의미는, 인간의 육으로 천국 백성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내용으로서 들이닥치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 겪었던 그 실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적으로 이해해서 그것을 온전히 지키는 식으로 자기를 구원코자 하는 시도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로 끝나야만 합니다. 이런 결론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이로

존 맥아더 그리고...

제가 보기엔 이목사님의 설교와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가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목사님은 보다 실존주의, 특히 자아 개념에서 접근하시는 것 같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을 아실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목사님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요? 이 영상은 CNN에 나온 영상인데 혹시 못 보셨으면 즐감하시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4gi-391G_L0이것은 말씀해석에 대한 짧은 강의https://www.youtube.com/watch?v=kPVn2PWb-1Q그리고...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듣고 있는데, 인간의 어쩔 수

창세기 1:15절 큰 빛과 작은빛에 관한 질문입니다.

울지 말라

《 설교 요약 》 2010년 7월 25일 이근호목사〈 지난 주 설교 요약 〉사람들은 홀로 살고 싶어합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오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 장교는 자기로부터 자기를 떠나서 예수님에게 일임했습니다. “주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겠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를 관리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나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손을 떼고 떠나버립시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7:11-17 제목 : 울지 말라 인간은 내가 뭘 할 것인가를 기초로 해서 자신을 다시 재정립하게 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고 철석같이 믿습

할례의 수종자

로마서 15:8-13 할례의 수종자 하나님께서는 법을 먼저 정해놓으시고 거기에 부합되도록 일단의 무리들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구원하십니다. 이는 인간들로 하여금 본인들이 천국에 들어 갈만한 법을 자체적으로 제정하는 것을 거부하시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종교행위’라는 것은 인간들이 이성(理性)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가치가 다 담겨 있습니다. 진선미(眞善美)가 바로 그 요소입니다. ‘참되고 바르면 아름답게’를 인간들을 외칩니다.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참되게 일하면 구원이 수반된 현상으로 쳐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가 ‘참되게 사는’ 경우입니까? 사람들

제가 오해를 ‥죄송‥

보내준 메일 읽었습니다· 관리자로 답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비밀글은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섣부른 오해를 하여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독자분들도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빕니다· 염치없지만 ‥좋은하루 되시길 ‥

고소 당하지 않는 자들

로마서 8:31-34 고소 당하지 않는 자들하나님마저 나서서 성도편에서 서서 무죄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인이라고 변호해주신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의 정당함을 위한 근거마저 하나님께서 이미 이 지상에 들여보내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치밀하고 정밀한 작업에 대해서 정작 혜택을 입는 사람들이 이 정성의 깊이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것은 “도대체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누가 나를 고소하고 말고가 있느냐?”라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고소하고 고소 받는 이 영적 환경이 인간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비닐하우스의 사정을 그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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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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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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