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차원의 영적기도(3)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제3장 기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채널에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전파를 받을 수 있게 하셨지만, 그 채널에 맞추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오지 않는다.

성령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그 채널이 열리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며, 자기 신념을 강화하는 수단도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하고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 기도가 어려운 이유

 

1) 기도를 잘하려고 하는 것: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에 잡혀서 외형적 모습, 언어의 구사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기도는 언어의 구사가 아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아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2) 특정한 장소를 찾으려고 하는 것:

기도는 교회, 산, 기도원, 새벽기도에서 하는 것이라는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기도를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3) 기도의 본질은 무엇을 비는 것이라는 생각: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의 기도의 개념은 문제없는 사람은 기도의 필요가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져왔다.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영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실상은 그 반대가 되었다.

문제가 하나님을 필요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문제가 해결되게 하라.

 

4) 문제가 생기면 최후수단, 비상대책수단으로 하는 기도:

기도에 관한 이러한 개념이 진정한 기도의 길을 막는다.

산소는 죽을 만 할 때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늘 산소를 섭취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기도하라.

문제가 생긴 다음에 문제 때문에 하는 기도보다 미리미리 하는 공격적인 기도를 하라.

평안함 속에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쌓고 채우는 기도를 하라.

 

5) 의무감으로 하는 기도: 자연스럽고, 즐기는 기도를 하라.

 

6)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는 사고방식:

아버지에게 기도한다는 기본자세를 분명히 하라.

 

7)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

기도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에서 감정을 빼라.

찬양에서도 감정을 빼라.

감정은 될 수 있는 대로 낮추라.

감정으로 확 타오르고, 확 식어버리지 않게 하라.

신앙이 성품과 감정을 다스리게 하라.

감정과 성품이 신앙을 다스리게 하지 말라.

성령님이 역사하는 설교인가 감정이 역사하는 설교인가?

감정이 들끓어 오르는 기도나 찬양을 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와 찬양을 하라.

 

8). 공동으로 모여서 하는 기도의 습관:

이러한 분위기가 아니면 기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좋은 기도의 습관이 아니다.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게 하라.

 

9). 기도의 개념, 동기, 목적을 잘 모르고 무조건 기도하는 것. 기도의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는 무조건 오래하면 좋다는 가르침이 기도를 더욱 못하게 하고 기도를 멀리 하게 한다.

 

 

 

2. 바르게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

 

1)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의식.

2) 그분은 나의 아버지시며, 나의 모든 은밀한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의식:

은밀한 것을 다 풀어 놓으라.

상한 심령, 약한 부분을 드러내라.

사람에게 못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앞에 다 내놓으라.

그래야 치유가 된다.

 

3)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믿음.

신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기도로 하나님의 가까이 함을 얻으라.

 

4) 하나님의 내게 향한 뜻을 알기 위한 자세:

내 뜻을 하나님에게 강요하지 말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내게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리려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추려고 기도하라.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변화하나, 하나님의 마음은 불변하시다.

방송국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추듯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맞추라.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 뜻에 자기 뜻을 맞추는 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사람들 중에서 생활함으로 마음에 묻은 때, 혼탁해 진 것을 씻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기 위한 기도였다.

하나님을 내게 가져오려고 하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로 가져가려고 하라.

기도의 구조조정을 하라.

 

5) 깨어서 기도하라:

영, 즉 마음을 깨우라.

영을 깨우는 훈련을 하라.

잠자는 영을 깨우는 훈련을 하라.

영은 자지 않는다.

우리가 영을 재우고 있다.

영을 재워놓고 있다.

영을 가두어놓고 있다.

그대신 본능과 이성을 깨워놓고 그에 따른다.

영으로 기도하라.

영이 깨어난 상태에서 기도하라.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기도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기도의 양바퀴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반복하라.

이러한 기도로 영이 깨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기뻐하시고, 활동하시고, 따라서 우리 영이 깨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느끼게 된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성령 안에서' 라는 말은 '영으로' 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영은 깨어나기만 하면 나침반의 자석처럼 바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영에는 씨앗처럼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생명력이 들어 있는데,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이 생명력이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신 본능과 이성만을 따르게 된다.

내 영을 깨워야 한다.

크리스챤의 기본적 의무는 먼저 영을 깨우는 것이다.

영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켜있지 않은 TV처럼 공중파는 엄청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이 깨어서 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맥이다.

기도의 맥을 뚫기만 하면 무한한 생수를 파낼 수 있다.

우리의 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영이 깨어나면서 올라오는 에너지는 무한하다.

영에 이르기까지, 영을 깨우기까지 파내려가는 것은 우리가 노력할 일이다.

은혜의 빗물은 거저 주시지만, 속에서 솟아나는 은혜의 맑은 샘물은 땀흘려 샘을 파야한다.

파내서 얻는 샘이야말로 진정 생명수가 된다.

 

 

제4장 기도의 장소

 

1. 마음

 

1) 기도는 마음, 즉 심령에서 나와야 한다.

심령에서 나와서 말로 표현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심령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장시간 기도해도 사실은 기도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2) 기도는 은총이다.

누구나 우상에게 기도할 수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는 은총이다.

은총 속에서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가 바른 기도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한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서 기도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됨은 진정 은총이다.

기도는 은총이나 기도자의 노력이 은총과 합해져야 한다.

구원은 거져 주시지만, 은혜와 은총을 거져가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찾아야 한다.

거져 주신 은혜는 저절로 묻힌다.

이 은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깊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지성소인 영혼(마음)에 하나님이 계신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은 무한한 크기와 능력을 가진다.

우주보다 더 크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절대절명의 명제이다.

마음은 하나님이 계신 영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소이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모세처럼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이처럼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3) 마음은 감정, 기분, 지성, 애정을 느끼는 기관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의 궁극적 기반이며 근원이 되는 곳이다.

깊은 곳에 영을 담는 장소이다.

마음은 지정의를 느끼는 곳이나, 육신보다 더 깊이 있기에 이것을 실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4) 보통 이 깊은 마음은 일상 생활에서 활동하지 않고 지-정-의의 행위 아래 마비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지-정-의라는 이성과 육신의 본능으로만 영위하고 마음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이 퇴화되었다.

감정과 육신, 생각은 무리할 만큼 혹사시키지만, 마음은 잠재우고 있다.

그러므로 깊은 기도를 할 수 없다.

기도는 지정의와 본능의 활동아래에서 잠자는 마음, 즉 영을 깨워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말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기도이다.

육체, 본능, 동물적인 기능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육체가 나와 또 다른 인격체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인격체이다.

마음이 굳어져 있으므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해야 할 역할까지 이성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이성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마음, 영성은 단순한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마음을 깨우는 것이다.

순수함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깨어나서, 마음으로 살고, 생각하고 느끼게 될 때, 진정 크리스챤의 삶이며,

이러한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이 세상 사람과 다르게 된다.

더 깊고, 더 굳건하고, 더 멀리보고,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음은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 잠들어 있음으로 삶이 방향과 목적과 의의를 잃고 헤매는 것이다.

영을 깨우라.

마음을 깨우라.

영이 살아나야 한다.

마음을 깨뜨려서 내속에 있는 하나님을 느끼라.

하나님의 은혜가 솟아오르게 하라.

마음속에 파묻혀 있는 깊은 보물을 찾아내라. 파내라.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도, 얼굴도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을 보살피고 꽃밭을 가꾸듯 가꾸라.

그 속에 엄청난 보화와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

겔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굳은 마음이란 성령님이 역사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부드러운 마음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마음이다.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대신에 새 마음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은혜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자꾸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우리의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막는다.

부드러운 마음은 초청해야 생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이다.

행16:14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마음을 열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라. 영을 열라.

기도가 피어오르게 하라.

기도는 영을 여는 것이다.

영을 열어야 하나님을 만난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지상최고의 축복이며, 목표이며 모든 것이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 오시기 위하여, 우리 속에 거하시기 위하여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인 마음속으로 들어가라.

그 부분을 귀중히 여기라.

예수의 보혈로 이미 휘장이 활짝 열렸다.

하나님을 만나리라는 믿음생활의 목표를 가지라.

이러한 끈질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 되라. 내 영혼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라.

그리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라.

그러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전이 된 의의가 있다.

진정한 기도의 장소는 내 마음이라는 지성소이다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은 참으로 귀하게 오시고 역사하셨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게 잠깐씩 오시고, 그것도 금방 떠나셨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우신다.

대접받고, 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하여!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세상의 영은 이제 우리에게 없고 하나님의 영이 계실 뿐이다.

단지 전의 습관, 성품이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성품인 조급함, 음란, 미움 등등이 안에 있으면 아무리 도덕을 강조해도 안 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이제 이러한 세상의 영은 없고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

그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은혜와 은총이 자꾸 올라오게 하라.

그리할 때, 우리의 성품이 변하게 된다.

세상의 영은 우리 중심에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나 밖에서 육신의 안목과 정욕, 습관과 성품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중심에 계신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습관, 성품을 훈련하여야 한다.

성령님과 만나려고 하라.

노력하라.

그리할 때, 은총이 그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에게 있다.

성령님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께 자꾸 나감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깊은 속에서 올라오게 하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기도와 찬미를 영으로 하라.

얼마나 깊이에서 기도하고 찬미하고 있는가?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영-혼-육은 각각 서로 다른 인격체이다.

그러면서 한 인격체이다.

하나님은 이 3부분이 다 잘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영이 주도권을 쥐어야만 가능하다.

영이 잘되어야 혼과 몸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육성-이성-영성중에서 이성과 육성을 약화시키고 영성을 강화시키라.

육신이나 세상에 대해서 좀 덜 민감해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민감해지라.

 

5)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의 활동보다는 이성에 의한 육체의 활동만 하고 있으며,

마음과 이성 사이에는 두터운 벽이 있어서 분리시켜놓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능이 약해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이성과 육신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이성과 육신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한다.

대부분의 결정을 마음이 아니라, 이성으로 내린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무관한 결정이 되고 만다.

마음이 깨어서 마음으로 하는 결정이 하나님과 유관한 결정이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 롯은 이성의 결정이고, 아브라함은 마음의 결정, 영적인 결정을 하였다.

이성의 결정은 하나님과 무관하고, 사단과 유관한 결정이 된다.

 

2. 인간의 정서

 

인간의 정서는 영과는 다르지만, 외부의 자극에 대한 상대적인 반응을 하는 깊이를 말한다.

인간은 정서로 반응한다.

행동, 즉 반응의 근원이 되는 반응의 깊이가 정서이다.

정서가 반응을 만들어 낸다.

 

불안정한 정서: 불안정한 습관, 성품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정서를 가진 사람, 이정도 깊이에서 반응하는 사람은 늘 밖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성령님을 의지하라.

안으로 들어가라.

 

안정한 정서: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육신적정서: 육신적, 감정적, 이기적, 공격적 반응을 나타낸다.

이 시대는 동물적 정서시대이다.

 

이성적정서: 이성적 반응을 나타낸다.

논리, 전통, 법, 경험, 충고, 교육, 문화, 감정에 의한 반응을 나타낸다.

 

혼적 정서: 도덕, 윤리, 규범, 양심, 경우에 따르는 반응을 나타낸다.

 

영적 정서: 영적 반응을 나타낸다.

신앙, 성경, 성령의 지배, 하나님의 마음으로 반응한다.

깊은 곳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영적정서로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받을 때, 우리에게 생명력이 생기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생긴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영적정서에서 나오는 것이다.

 

 

3. 마음과 이성, 영과 혼을 분리하는 벽

 

1) 우리의 삶의 모든 반응이 얕은 정서에서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

깊은 정서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벽이다.

 

2) 얕은 벽: 염려, 근심, 걱정, 산만함, 무질서 등이다.

이러한 벽들이 우리의 삶의 모든 반응이 얕은 수준, 육신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것들, 이러한 벽들을 깨뜨리고 해결하고 잠을 자야한다.

이를 위해 잠들기 전에 시간을 가지고 성령님에게 치료를 의뢰하라.

 

3) 두꺼운 벽: 미움, 교만, 분노, 질투, 복수심, 중독 등 기도와 은사로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두꺼운 벽을 깨뜨리라.

성령님의 치유로 쳐내어 버리라.

그래야 하나님의 은총이 마음속에 채워진다.

벽이 두터울수록 우리의 삶이 마음이나 양심의 통제를 받지 못하며, 자신을 보거나 깨닫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과도 단절된 상태이며, 기도를 많이 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이다.

벽을 헐라.

그러면 간단히 간구해도 하나님의 공급이 풍성해진다.

본능과 마음사이에는 두터운 벽을 쌓으라.

 그 사이를 막으라.

그러나 영과 마음사이에는 벽을 헐라.

용서함으로 풀라.

회개함으로 풀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풀라.

그러면 아주 간단한 것, 지나치는 소리 한마디, 자연속의 새소리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막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들어도 깨닫지 못함은 예수님의 설교가 둔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들 마음속의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마음을 깨우려고 노력하라.

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두터우면 말로 감동받지 못한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도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벽을 허는데 관심을 가지라.

마음이 깨어 있게 하라.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 하나만으로도 깨어지고 은혜받았다.

사도요한의 '사랑하라'는 말 한마디로 은혜가 넘쳤다.

주일예배를 설교중심의 예배보다, 찬양과 말씀.. 찬양과 말씀.. 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예배가 되게 하라.

벽을 허는 예배가 되게 하라.

성도들이 영에 감동을 받게 하라.

성령님의 움직임에 우리의 영이 감동받게 하라.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게 해야 한다.

예배속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육신의 눈은 볼 수 없고 육성이나 이성은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영이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벽을 깨고, 영을 깨워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죄를 씻고, 치료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예배는 참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이다.

막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들을 귀란 영과 연결된 귀를 말한다.

영이 열린 사람의 귀이다.

욥12:1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영의 말인지, 사람의 말인지, 분별하는 귀가 영이 열린 귀이다.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음이 둔해짐'이란 영이 둔해짐을 말한다. 세

상의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 죄악이 우리의 영을 잠재우는 것이다.

 

4) 자신의 마음의 활동을 활성화시켜서 영적인 정서가 자신의 삶, 정신, 신앙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해야 한다.

5)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고, 마음과 의식, 마음과 이성을 차단시킨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상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벽은 두터워진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며, 섬기려 하며, 가까이 하려 할 때 그 벽은 무너진다.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끈기있게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가 벽을 깨뜨리려고 이러한 노력을 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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