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빌립보서 개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빌립보서

1. 빌립보 교회

 

 

 

행16:12-40에 의하면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 마게도냐 지방에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다. 빌립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왕이 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 주전 42년 이후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 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많지 않아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고 따라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의 방해도 없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빌립보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여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처음으로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믿게 된 사람은 두아디라 성 출신 자주 장사인 루디아라는 여성과 그의 가족이었다. 빌립보 교회에는 바울이 "나와 함께 힘 쓰던 저 부녀들"(빌4:3)이라고 부른 바울의 여성 동역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의 첫 번째 바울의 체재 기간은 그리 길지 못하였으며, 그가 전도한 사람은 루디아의 가족 외에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밖에 빌립보서에는 에바브로디도, 유오디아, 순두게, 클레멘트와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나타난다. 빌립보 교회와 바울은 계속하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빌립보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물질적으로 바울의 선교 활동을 도왔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가이사랴에 억류되었다가 로마로 호송되기 전에 빌립보 교회를 두 번 내지 세 번 더 방문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바울이 세운 교회 중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으며, 그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람을 보내어 위문하는 뜨거운 애정을 나타내기까지 하였다.

 

2. 저작 연대와 장소

 

일반적으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본 서는 옥중서신이라고 불린다. 빌립보서가 감옥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어떤 감옥인지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바울은 빌립보(행16:23), 예루살렘(행21:33), 가이사랴(행23:25), 로마(행28:16)의 감옥에 투옥된 적이 있다. 그런데 빌립보와 예루살렘 감옥에서는 불과 하루내지 이틀동안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편 고후6:5, 11:23,24에 근거하여 바울이 에베소에도 감금되었으며 여기서 한두 편의 서신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적으로 빌립보서의 저작 장소에 관하여 로마 기록설, 가이사랴 기록설, 에베소 기록설로 견해가 나누어진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의 전통적 입장은 로마 기록설을 따르고 있다. 한편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했다고 간주한다면 그 시기는 대략 주후 61년경이 된다.

 

3. 저작 경위와 목적

바울과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던 빌립보 교회는 옥중에서 고통당하는 바울을 위로하고 돕기 위하여 금품을 모아 에바브로디도를 대표로 보냈다(빌2:25 빌4:14,18). 그러나 오히려 바울을 시중들려고 온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다.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위로와 안심을 주기 위하여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돌려 보내게 되었다. 바울은 그를 보내면서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 준 사랑과 후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편지 가운데 바울은 그 동안 빌립보 교회로부터 들려온 문제들에 대하여 권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두 여인의 다툼으로 야기된 분란을 극복하고 연합과 일치를 이룰 것을 부탁한 것이며, 또한 빌립보 교인들을 미혹하는 행악자들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에 대한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본 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확신과 기쁨으로 인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사랑과 감사를 드러내고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가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면서 자기 대신에 가장 신뢰하는 동역자인 디모데를 보내어 그들을 위하여 영적 사역을 감당케 하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4. 기록 장소

빌립보서는 바울서신 중에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일반적으로 옥중서신이라 불리워진다. 바울은 본 서신이 기록될 당시 투옥되어 있었으나 그 장소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본 서신이 기록된 장소에 대해서는 네 가지의 견해가 있다.

 

①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전통적인 입장

② 가이사랴에서 기록되었다는 견해

③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는 설

④ 혼합된 가설로서 네 서신을 두 부류로 구분한다. 즉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에베소서는 가이사랴에서 기록되었으나 빌립보서는 로마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 서신은 에베소에서 쓰여지고 빌립보서는 로마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네 서신(옥중서신) 전체가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견해를 취한다. 그 이유는 로마와 빌립보간의 거리는 에베소와 빌립보간의 거리보다 더 먼 것이었다. 그리고 빌1:13에서 '시위대', 즉 로마의 황제에게 할당된 로마 군대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바울이 심문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으로 보아 그는 로마에서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빌1:20).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감금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곳에서는 그 사건의 최종적인 판결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고전15:2에 근거하여 에베소를 기록 장소로 제안하기도 하나 그 구절에서 투옥되었다는 분명한 언급이 없다.

 

5. 본 서의 특징

바울의 개인적 신앙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본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서신 전체에서 '기뻐하다'는 동사를 9번, '기쁨'이라는 명사를 5번 사용하고 있으며, 4장에서만 '기뻐하다'는 말을 6번 쓰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서 넘쳐나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어서 빌립보의 성도들에게도 기뻐하라고 재차 반복하여 권면한다. 빌3:12-16에서 바울은 그의 신앙 자세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위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상을 받기 위하여 전심으로 달려가는 그의 간절한 소망과 열정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삶의 경험을 통하여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만족함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깨달았다. 즉 비천함을 당할 때나 풍부함을 누릴 때나 외적 환경에 좌우됨이 없이 그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체험을 얻었던 것이다. 본 서신은 바울의 개인적 간증을 통한 권면이라는 뚜렷한 특성을 띠고 있다.

[연구1] 그리스도의 생명(1장)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이 감옥에 매여 있음으로 해서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상황에 대한 설명과 격려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복음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음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성도의 교재(빌1:1-11)

이 서신의 서두는 전형적인 바울서신의 서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수신자와 발신자가 분명히 밝혀져 있고 또 감사와 기도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디모데를 발신자에게 포함한 이유는 무엇인가? '감독'이란 의미는 카톨릭과 감리교에서 말하는 감독의 의미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 '종'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간구는 무엇인가? 여기에 나타난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1) 바울의 감사와 간구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부터 디모데는 바울의 사역에 함께 하였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와 오랜 교제를 가져온 디모데에 대한 언급은 빌립보 교회가 이 편지를 읽을 때 더 친근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공동 발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라는 일인칭 주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바울 홀로 쓴 것이다. 단지 디모데는 소식을 전한 사자에 불과하다. 종이란 노예를 의미한다.즉 철저히 그리스도에 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충성의 표현이다. 감독이란 의미는 오늘날 가톨릭과 감리교에서 말하는 감독의 의미와는 다르다. 만약 교회 직계가 발전되어 생긴 '감독'의 의미라고 본다면 이 편지는 몇몇 학자의 주장대로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라 후대에 바울의 이름을 빌어 쓴 위조 편지이다. 이 편지가 바울이 쓴 편지임에 틀림없을진대, 그 때는 아직 교회의 제도가 발달되지 못하였으므로 감독이라는 직분은 집사와는 구별되나 목사, 장로의 역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울의 감사와 간구를 보면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감사와 간구를 보면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목자가 양을 품듯이 간구하여 감사하며(빌1:3,4,8) 복음으로 인하여 함께 동고동락하며(빌1:7), 빌립보교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장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2) 바울의 서신 내용

그리스도인의 서신 왕래는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특히 어렵고 힘든 ?일수록 그 의미는 크다. 비록 현대 사회가 편지 외에 의사를 전할 수 있는 매개물이 많다 하더라도 편지는 아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바울의 서신이 서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감사하는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2. 오직 복음을 위하여(빌1:12-26)

비록 바울이 확신에 차 기쁨으로 이 편지를 썼다 하더라도 그는 옥에 갇힌 자이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의 사역과 바울의 신변에 대해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한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변증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는가? 바울은 진정 무엇으로 기뻐하는가?

 

1) 복음의 진보

이 모든 상황의 목적을 '복음의 진보'로 보고 있다. 사실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을 전하다 죄수의 몸이 된 바울의 형편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또 자신들도 같은 형편에 처할까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시위대, 즉 간수들과 병정들 더 나아가서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것으로 만족해 하고 있으며, 또한 로마의 성도들은 성도대로 고난을 받으나 꿋꿋한 바울의 모습에 큰 용기를 얻어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빌1:14). 또 다른 차원의 복음의 진보로 첫째, 착한 뜻으로 전파하는 이들로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둘째로,투기와 분쟁으로 전파하는 이들로 핸드릭슨(W.Hendriksen)은 명예, 존경의 높은 지위를 탐하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바울은 복음의 진보만을 기쁘게 생각하였다.그리고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은 구원을 얻게 된다(빌1:25). 이를 통해 양무리들이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바울이 감옥에서 갇힌 바 되어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위 3가지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였다. 자신은 죽든지 살든지 간에 다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을 알았으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염려하였다. 빨리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으나 한편으로 빌립보 교인들이 아직 영적으로 미약하였기 때문에 살아 있어야 할 당위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2) 양 떼를 위한 기도

바울의 믿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이런 고난을 받지만 믿음 가운데 꿋꿋하였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하고 짜증을 낸다.더욱이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바울은 목자로서의 예정을 양 떼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자신을 위해 양 떼들이 기도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3.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빌1:27-30)

 이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는 무슨 의미인가?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무엇을 뜻하는가? 빌1:28의 대적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같은 싸움'은 무엇인가?

 

1) 함께하라

 

'생활하라'의 의미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로마의 시민으로서 또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또 바울은 공동의 적을 대항하여 복음을 위하여 함께 싸울 것을 독려하고 있다(빌1:27). 대적자들이란 빌립보의 경우 유대인들이 드물었으므로 유대인들의 대적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로마 정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유대인, 이방인 등 모든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빌3:2). '같은 싸움'이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과 핍박으로 빌립보 교인들도 이미 같은 종류의 고난을 받고 있었으므로 바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2) 복음으로 인한 고난

 

그리스도 인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며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 복음을 인하여 고난을 받아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울은 빌고 감옥에 매여 있는 자였지만 그의 삶 전체는 복음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오직 복음의 진보만을 생각하는 바울은 자신의 대적자들조차도 복음의 진보에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그들로 인하여 기뻐하였다.

 

[연구2] 성도의 생활태도(2장)

 

 바울은 본문에서 빌립보 교인들이 살아야 할 삶의 모습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다. 복음 안에서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겸비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나 영광을 얻으셨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관한 개인적인 관심을 적고 있다.

  

1. 한마음 한사랑으로(빌2:1-5)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하나될 것을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어떤 근거에서 하나될 것을 권면하는가? 어떠한 때 바울의 기쁨은 충만한가? 무엇이 하나됨을 막고 방해하는가?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하는가?

 

1) 하나되기 위한 근거

 하나되기 위한 근거는 첫째, 빌2:1에 나온대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됨은 필수이며 권면이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사랑에 바탕을 둔 위로이며, 셋째는 성령에 바탕을 둔 교제 그리고 넷째로는 긍휼과 자비가 하나되기 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위의 네 가지를 바탕으로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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